김정은의 불법 은닉재산 색출하라
김정은의 불법 은닉재산 색출하라
  • 박상봉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6.07.28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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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통일준비 프로그램①

미 CIA, 2000년 기준으로 김정일이 43억 달러의 비자금 스위스 은행에 은닉한 것으로 파악

독재자의 삶은 호화롭다. 특히 지구상 최빈국(最貧國)에 속하는 북한의 김정일에 이은 김정은의 생활도 호화판이다. 소위 ‘고난의 행군’을 지나며 200만~300만 인민이 아사(餓死)했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 천문학적 재정을 투입해 인민의 삶이 피폐해졌지만 스위스 산(産) 치즈와 와인을 즐겨먹는 김정은의 몸무게는 130kg에 육박한다. 불면증과 불안감도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 박상봉 독일통일정보연구소 대표·미래한국 편집위원

북한은 독일의 명차 메르세데스 벤츠의 VIP 고객이다.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도 벤츠를 선물로 받았다. 시대의 아이러니요, 사회주의의 마지막 보루임을 자찬하는 북한이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상표에 대한 매니아인 것도 우스꽝스럽다.

이렇듯 인민을 우롱하고 사상적 토대를 왜곡하고 있으면서도 독재 권력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배후에 존재하고 있던 비밀 외화벌이 조직 때문이었다. 과거 동독의 호네커는 이런 비자금으로 자신의 입맛에 따라 남미, 폴란드 등에 수천만 DM(도이치마르크)를 지원해 줬다.

동독의 외화벌이: 코코(KoKo) 

호네커 동독 총서기의 막강한 권력 배후에는 코코(KoKo)라는 비밀회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코코는 동독의 외화벌이를 총괄하는 기구였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관으로, 정상적인 무역이나 대외거래를 통하지 않고 국가가 필요로 하는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만든 비밀조직이었다.

코코의 대표는 알렉산더 샬크-골로드코프스키였다. 그는 동독이 몰락했던 1989년까지 평생을 외화벌이 사업에 투신했던 인물이다. 비밀안전기획부 슈타지에서 에리히 밀케의 지도를 받아 박사 과정을 마쳤고 ‘적(敵)의 경제력 활용’이라는 주제가 그의 전공이었다.

그는 서독 등 서방 자본주의 국가의 부(富)를 갈취하는 방안을 광범위하게 연구했다. 특히 서독 사회의 경제적 부는 코코의 주요 타깃이었다. 그는 외화벌이꾼들이 그렇듯이 동독 사회주의 국가에 살면서도 서방의 막강한 자본가가 누리는 모든 혜택을 누린 인물이었다.

코코는 산하에 220개 회사를 거느리고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했다. 동독 몰락 후 코코의 지하실에는 동독 국립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금괴의 5배에 달하는 21톤의 금괴가 저장되어 있었음으로 미뤄 코코의 규모를 유추할 수 있다.

코코는 1000개 이상의 비밀계좌를 보유하고 있었고, 서독의 도이치 한델스 뱅크에 개설했던 계좌번호 0628은 호네커의 개인 계좌였다. 정치범을 석방한 대가로 서독 정부와 교회로부터 받은 총 34억 마르크(DM)의 돈도 이 계좌로 입금된 것으로 드러났다.

분단 시절 서독은 동독 내 정치범들을 1인당 평균 9만 마르크를 동독 정권에 지불하여 석방시켰는데, 1963년부터 1989년 동독이 몰락할 때까지 총 3만 3755명에게 자유를 되찾아 줬다.

호네커는 이러한 불법 비자금을 수단으로 독재 권력을 유지해왔다. 측근들을 위해 고급 장식품, 화장품 및 고급 양주, 샴페인들을 사들여 선물했고, 국민의 동의도 없이 수천만 마르크를 남미나 폴란드에 지원해주기도 했다.

코코는 외화벌이가 되는 것은 무슨 일이든 감행했다. 국제사회가 이전을 제한한 기술들을 비밀리에 제3국에 이전해 거액을 챙겼고, 양심수도 외화벌이로 이용했다. 코코 산하의 무역회사였던 IMES는 국제적으로 무기를 밀거래해 외화를 벌어들였던 회사였다.

이런 식으로 코코가 벌어들인 외화는 총 500억 마르크에 달했다. 이 중 적지 않은 자금이 해외에 은닉되었던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호네커 몰락 후 해외자금 회수에 나섰지만 성공할 수 없었다. 통일 직후 바이겔 재무장관이 코코와 공산당의 은닉재산을 찾기 위해 500만 마르크의 현상금을 걸기도 했다.

노동당 39호실 

노동당 39호실은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의 개인 자금을 관리하고 있다. 북한의 모든 기관과 재외 공관이 벌어들이는 외화는 모두 이곳으로 흘러들어간다. 북한의 대외 거래를 담당하는 조선대성총국과 산하 120개에 이르는 무역회사는 물론, 핵과 미사일 거래 결제와 관련된 업무를 하는 조선대성은행도 모두 39호실 소속이다.

북한 내 17개 금광, 평양의 고려호텔과 외국인 상점, 그리고 해외 식당 경영과 충성의 외화벌이 사업 등도 모두 39호실에서 관리하고 있다. 39호실이 주도하는 무기판매, 위조화폐와 마약밀매, 가짜 담배 거래, 금은 밀수 등은 불법적인 외화벌이로 이미 여러 차례 국제사회에서 적발된 바 있다.

북한이 2005년 마카오의 방코델타 아시아 은행에 예치한 2500만 달러가 불법자금세탁 혐의로 미국의 경제 제재를 받은 이유도 당시 그 자금이 39호실이 해외에서 불법행위로 벌어들인 외화를 세탁하기 위해 사용했던 계좌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39호실의 불법자금 중 일부는 마카오와 스위스 등 외국 은행에 분산돼 숨겨져 있다. 미 CIA는 2000년 기준으로 43억 달러의 김정일 비자금이 스위스 은행에 예치돼 있다고 추정한 바 있다.

미국 정부는 2010년 8월 북한의 불법 외화벌이를 차단하기 위해 행정명령 13551호를 발동해 노동당 39호실을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유럽연합(EU)도 2010년 12월 당시 전일춘 노동당 39호 실장에 대해 비자발급 금지 및 자산동결 제재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노동당 39호실은 그동안 외화벌이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러자 노동당 39호실은 미국과 EU 등의 제재 조치를 피하기 위해 외국 기업들과 합작(合作)회사를 설립하는 등 은밀하게 외화벌이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동당 39호실과 홍콩의 투자회사 퀸스웨이 그룹이 합작해 설립한 KKG라는 기업이다. KKG가 택시 운행권을 확보해 평양을 방문한 관광객이나 외교관, 교포 등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작년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노동당 39호실이 홍콩 퀸스웨이 그룹과 합작해 외화벌이 사업에 나서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노동당 39호실은 KKG를 활용해 해외자금을 관리하고, 그 대가로 북한의 지하자원과 같은 이권을 제공하고 있다. FT에 따르면, KKG는 평양 시내의 택시 운행이나 공항버스 사업, 부동산 개발, 원유 탐사에 이르기까지 사업 영역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KKG에는 홍콩의 거부 쉬징화(徐京華)도 연관이 있다. 그는 퀸스웨이 그룹의 수장으로 중국공산당과 재계 고위층, 국유기업 등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쉬징화는 2003년께부터 홍콩에서 석유와 지하자원 개발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김정은은 퀸스웨이를 앞세워 국제무대에서 외화벌이 사업을 벌이고 있다. 앙골라의 유전 개발부터 짐바브웨의 다이아몬드 채굴 사업은 물론, 미국 맨해튼의 부동산 투자 사업에도 개입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규모가 수십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파악된다.

결국 KKG는 쉬징화를 앞세워 국제무대에서 외화벌이를 모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노동당 39호실은 홍콩은 물론 중국 내 영향력 있는 인물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노동당 39호실이 실제 KKG의 대주주이고, 쉬징화나 퀸스웨이 그룹은 얼굴마담이나 페이퍼 컴퍼니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 김정은과 노동당의 불법 은닉재산은 통일 후 북한 재건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지만 해당국의 협조 없이는 색출하기 쉽지 않다. 사진은 북한이 2005년 불법 자금세탁을 한 혐의로 미국의 경제 제재를 받았던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 은행.

동독 공산당 불법재산 색출과 시사점 

통일 후 헬무트 콜 정권은 동독 재건에 착수했다. 재건에는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야 했다.  독일통일기금, 연대협약, 연대세, 재건기금 등은 물론 동독 공산당 조직의 불법재산도 색출해 통일비용에 충당해야 했다. 하지만 동독 공산정권이 곳곳에 은닉한 재산을 색출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과거 공산당은 재산 형성에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았다. 자료를 제출할 일도, 회계감사를 받을 일도 없었다. 동독에 민주혁명이 일어나고 1990년 3월 18일 자유선거가 치러진 후에야 관련 정당법이 개정되어 감독을 받게 되었다.

드메지어 동독 총리는 ‘정당 및 산하기구 재산평가위원회(UKPV)’를 구성해 검찰수사권을 부여하는 등 본격 활동에 착수했다. 모든 정당은 재산평가위원회에 1945년 이후 재산 형성과 변동 상황을 보고하고 1989년 10월 7일 현재 보유한 재산 현황을 제출해야 했다.

이와 같은 공산당 재산과 관련한 규정은 1990년 10월 3일 통일과 함께 재검토되었다. 콜 총리는 위원회를 내무부 산하에 편입시키고 한스 파이어 위원장을 선임해 본격적인 활동에 착수했다.

드메지어 정권은 동독 최초의 자유선거에 의해 선출된 정권이었지만 과거 동독 공산정권과의 인맥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불법재산을 파악하고 처리하는 데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새로 구성된 위원회는 트로이한트(동독 재산관리와 사유화를 담당했던 기관)와 공조를 통해 업무의 효율을 극대화했다. 위원회는 위원장과 16명의 각계 전문가로 구성되었고, 65명 규모의 사무국도 새롭게 설치해 다음과 같은 일들을 처리하게 되었다. 위원회의 임기는 1990년 6월 1일부터 2006년 12월 15일로 이후 2007년부터 관련 업무는 트로이한트의 후속 기구인 특수재산청(BvS)이 담당하게 되었다.

첫째, 동독 정당 및 단체들이 은닉한 불법재산에 대한 회수. 
둘째, 해외도피 재산을 조사하고 압수하는 일. 
셋째, 불법재산을 환원하기 위한 법적 조치. 
넷째, 통일 관련 특수업무청과 협조해 상기 재산을 관리하고 처분하는 일. 
다섯째, 불법재산이 동독정당과 연루되었다는 증거를 확보하는 일. 
여섯째, 연방의회에 관련 자료를 제출하는 일 등.

정당, 산하기구 및 단체들이 불법으로 조성한 재산은 압수해 피해자가 있는 경우 반환하고 나머지 재산은 동독 재건을 위해 사용했다. 동독 5개주는 인구 비례에 따라 자금을 분배받았다.

지구촌 곳곳에 비자금 은닉 

통일 전 동독 정당은 사통당을 비롯해 후신 민사당, 동독 기민련, 독일 민주농민당, 독일 자민당, 독일 국민당 등이 활동했다.

또 산하 조직 및 단체로는 자유독일노조연맹, 자유독일청년, 독일 민주여성동맹, 동독 문화연맹, 동독 평화협의회, 독소 우호협회, 스포츠 기술협회, 독소 우호협회, 동독 반파쇼투쟁 위원회, 인권위원회, 동독 유엔동맹, 동독 국제우호동맹, 동독 민족전선협회, 동독 단결위원회, 학술정보확산회, 동독 자유사색가협회, 저널리스트 협회, 농부상조회, 동독 청소년서약 중앙위원회 등이었다.

이들 정당과 단체가 국내외에 은닉해 놓은 불법재산을 파악하고 색출하는 작업은 의외로 어려웠다. 그것은 1989년 동독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사통당의 후신인 민사당(SED/PDS)의 간부들이 공산당이 소유하고 있는 불법재산을 여러 방법으로 은닉했기 때문이다.

사통당의 후신인 민사당을 창당한 그레고르 기지가 이 시기에 모스크바를 비롯해 유럽 전 지역을 여행한 것도 이 일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호네커가 칠레로 망명할 때 수백만 달러를 송금할 수 있었던 것도 은닉재산의 일부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재산평가위는 2005년 12월 31일자 다음과 같은 불법재산을 색출해 발표한 바 있다. 물론 그 규모는 통일범죄 중앙수사대나 베를린 지방검찰청이 추정한 액수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당시 중앙수사대(ZERV)의 키틀라우스 대표는 은닉재산 규모를 대략 260억 DM(약 13조 원)로 추정했고, 검찰청은 약 90억 DM(약 4조 2000억 원)로 추정한 바 있다.

첫째, 불법재산은 총 31.5억 DM(16억450만 유로)로 사통당/민사당 12억 유로, 자유노조연맹 등 단체 3.7억 유로, 위성정당 0.3억 유로 등이었다. 
둘째, 건물·토지 등 6129건의 부동산을 색출했다.   
셋째, 62억 DM의 현금재산과 3.2억 DM 해외 재산을 색출해 국고에 환수시켰다.

이 밖에도 불법 은닉재산에 대한 여러 경로와 건수가 밝혀지고 있는데 불법재산의 주역은 당 소속 기업들이었다. 2002년 2월 29일 튀링겐에서 발행되는 ‘튀링겐란데스 짜이퉁’지는 당시 동독의 혼란기에 총 150개 법인에 아무런 담보도 없이 인맥을 이용해 총 2억 3930만 DM를 대출했던 것도 재산 도피의 한 형태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위원회가 가장 큰 한계를 드러낸 것은 과거 동독 공산정권과 단체들의 해외재산을 파악하는 일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스위스, 헝가리, 리히텐슈타인, 룩셈부르크 등과 같은 나라에 집중해 색출해 냈지만 해당 국가의 은행이 스스로 주는 정보에만 의존하는 한계를 보였다. 즉 얼마나 많은 규모의 재산이 해외에 은닉되어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을 성공하지 못했다.

해외 은닉재산, 해당국 협조 없이는 찾기 어려워 

북한의 경우 2000년 미국 CIA에 따르면 김정일이 43억 달러의 비자금을 스위스 은행에 은닉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외에도 펀드나 투자금 형태로 세계 곳곳에 김정은 비자금이 은닉되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더욱이 북한은 동독에 비해 더 많은 불법재산을 은닉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시사하고 있다. 하나는 노동당의 은닉재산은 북한 재건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지만, 다른 하나는 은닉한 재산을 색출해 내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동독의 사례에서 보듯이 해외에 은닉한 재원은 해당국의 협조가 없이는 색출이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통준위나 통일부는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신기루에서 헤어나 이제 진정한 통일 대비에 최선을 다해야 할 시점이다. 통일이 다가오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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