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4년 4월 평양에서 김일성상을 수상한 노길남씨 (왼쪽 첫 번째). |
로스앤젤레스 = 종북(從北)이나 친북(親北) 활동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한 이가 있다. 북한을 근 70차례 방문하고 작년에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가 수여하는 최고영예(?)의 ‘김일성상’을 수상한 자칭 재미 통일운동가 노길남 씨 얘기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의하면 종북은 ‘북한의 체제를 흠모하고 그에 따르는 태도’로, 친북은 ‘북한과 친하게 지냄’으로 정의된다.)
미국에 40여 년간 살면서 그러한 사고방식을 변함없이 유지 전파하고 있는 노길남 씨의 생각과 생활방식, 뇌구조(속내) 등이 궁금했다. 그는 자신이 1999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매체 ‘민족통신’을 통해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 피의자 김기종에 대해 ‘윤봉길 안중근과 같은 열렬 애국자’라고 칭찬하기도 했고 통진당을 해산시킨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공식행사에서 ‘국제×녀’라는 막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유해사이트로 차단돼 볼 수 없는 민족통신의 최근 글의 제목은 ‘사드배치 위협을 연석회의로 풀자’ ‘7·27(정전협정 체결일)은 조선의 전승절이다’ 등이다.
지난 7월 미국 캘리포니아 LA지역에서 노길남 씨와 만남을 시도했다. 글렌데일에 소재한 그의 사무실 겸 집으로 찾아갔으나 그는 끝내 취재진을 피했고, 이에 그가 수십 년간 활동해온 한인 교포사회 내 인사들과 전직 직장동료 등을 통해 그가 처한 상황과 속마음을 엿볼 수밖에 없었다.
▲ 미국 LA 인근 글렌데일에 있는 노길남씨 자택. 취재진이 직간접으로 인터뷰를 수차례 요청했으나 노씨는 만남을 거부했다. |
북한 당국이 주요 방문자들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미인계’를 쓴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북한을 방문했던 모 목사가 ‘나 좀 봐 달라, 나 좀 살려 달라’며 거의 알몸으로 숙소 문을 두드리는 북한 여성을 향해 ‘나도 좀 살자’며 끝내 문을 열지 않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수십 차례 북한을 드나든 노길남 씨는 북한에서 비슷한 일이 없었을까? 혹시 그러한 일 때문에 코가 꿰어 본심에서 벗어나 자타 공인 ‘종북’ 인사가 된 것은 아닐까? 한 지인은 똑같은 질문을 노 씨에게 던졌었다고 한다.
“사람 사는 곳이 어딜 가든 다 똑같지요.” 노길남 씨의 대답이었다.
친북 활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미묘한 경쟁의식이 감지되기도 한다. 누가 더 활발하고 더 선명한 친북 활동을 펼쳐서 그 공을 북한에서 인정받는지, 누가 더 북한체제 핵심과 가깝고 높은 서열에 위치하는지를 서로 경쟁하는 것이다. 과거 운동권 핵심지도부에서 조선노동당 입당증이 최고 지위를 보장하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북한을 언제든 제집처럼 드나들며 2008년 김일성대학에서 박사학위, 2015년 김일성상 수상 등 ‘화려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는 노길남 씨에게는 신은미 등 다른 친북인사들은 모두 피라미로 보이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그도 먹고 살고자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1944년생 노길남 씨는 1973년 미국으로 이민했다. 한국에서는 연세대 행정학과 64학번 출신으로, 이른바 민주화운동에 일찍이 뛰어들었다. 미국에 건너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중앙위원, 민주화 운동협의회 총무, 범민족대회 미주대표, 6·15공동위 미국위원회 공동위원장, LA 한국일보 기자 등으로 활동했다.
▲ 노길남씨가 대표로 있는 친북매체<민족통신>의 페이스북 화면 캡처. 민족 통신은 주한미군 철수 등 북한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파하고 있다. |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한국을 오가며 고위 정부 인사들과 사진을 찍는 등 친분을 과시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나름 고급 정보에 접하고 이를 북한에 전달할 여지도 충분한데 간첩 혐의는 없는 걸까. 미국 당국은 그런 노 씨의 활동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사실상 2중 간첩으로 봐야죠. 미국 FBI도 예의주시하고 있는데, 나름 쓸모가 있으니 아직은 가만히 놔두는 것일 테고. 노길남 씨도 바보가 아니니까 선을 넘지 않고 룰 안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거겠죠.”
노 씨를 개인적으로 잘 아는 재미 원로 언론인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그의 진심, 속내는 무엇일까. 미국이라는 자유민주사회의 중산층으로 처자를 거느리고 살고 있으며, 수없이 북한을 드나들며 그 실체를 보면서도 정신장애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인민을 억압하고 굶겨 죽이는 세습독재 전체주의 체제를 찬양하는 활동에 매진할 수 있을까.
그것이 북한에 대한 그의 진심일까, 혹은 새빨간 거짓말 조차도 전문 직업정신의 발로이며 돌이킬 수 없는 나름 처절하고 슬픈 그만의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는건 아닐까.
“그건 아무도 모르죠. 자기 부인에게 조차도 절대 말하지 못할 테고. 뭐 결국 다들 먹고 살고자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의 오랜 지인의 말이다. 최근 노길남 씨가 올린 북한을 향한 그의 애달픈(?) 찬가를 소개한다.
“1990년 북부 조국을 방문할 수 있는 행운이 내게 찾아왔다. 처음 방문한 그곳은 모든 것이 새롭고 감동적이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누구나 근심걱정 모르고 사는 북녘동포의 밝은 모습은 나의 상상을 뒤집어 놓았다...
나도 많은 나라를 다녀봤지만 이러한 나라는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김정은 영도자의 품은 당의 품, 어머님의 품…이를 떠올리면 가슴이 찡해온다…김정은 영도자께서 강조하시는 인민 중시, 인민 사랑…지구상에 나라는 많아도 진정한 인민의 나라는 오직 북 뿐이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 이 노래의 내용을 직접 실천하고 실현하려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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