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사랑을 실천하는 최초의 민영 교도소
법과 사랑을 실천하는 최초의 민영 교도소
  • 이근미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6.08.22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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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법조계-황교안 김승규 안창호 심동섭 검사, 교계-이종윤 주명수 김삼환 목사 등이 주도

국내 최초의 민영교도소인 소망교도소가 지난해 12월 1일로 개소 5주년을 맞았다. 5주년 기념 예배 때 수용자 78명이 세례를 받았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 삶을 살겠다고 서약한 수용자들은 모두 251명이다. 

수용 인원 300여 명인 소망교도소에서 5주년 기준으로 510명이 출소했고, 재복역률은 3.36%로 나타났다. 일반 교도소의 재복역률은 22.2%이다. 현행 일반 교도소의 재복역률은 초범이 9.0%로 가장 낮고, 5범 이상이 50.5%다.

출발할 때 재범률 4%대의 브라질의 휴마이타교도소 등 해외 민영교도소 등을 참고했던 소망교도소에 지금은 해외에서 운영 상황을 배우려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바비큐 파티를 준비하는 소망교도소 수형자들(사진=소망교도소)

소망교도소는 1995년 10월 16일 기독교교도소설립추진위원회를 발족한 이래 2010년 12월에 개소하기까지 15년이라는 기간이 걸렸다. 애초에 기독교교도소 설립을 추진한 인물은 이종윤 서울교회 원로목사이다. 이사장을 맡아서 5년 여 동안 동분서주할 때 우리 사회 곳곳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민영교도소 운영의 기틀을 마련했다. 

1996년 3월과 10월, 기독교 교도소 설립 추진을 위한 세미나와 워크숍이 ‘형벌과 교정에 관한 성서적 이해’라는 주제로 열렸을 때 이종윤 목사, 강사문 교수(장신대 구약학), 주명수 목사(변호사)가 나서서 기독교 교도소에 관한 성경적 근거를 제시했다. 

이어서 이종윤 목사는 가장 중요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각종 자료를 수집했다.  엄청난 양의 자료를 모았을 때 김승규 검사장(전 국정원장)과 안창호 부장검사(현 헌법재판관) 등 여러 검사가 좋은 취지에 공감해 법률안 검토와 교도소 설립의 정당성을 설득하는 문안을 작성했다. 

1998년 5월, 3당이 민영교도소 설립을 입법추진하기로 합의했고 그해 12월 28일 ‘민영교도소 등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교도소 건립 자금 모금이 시작되면서 한 편에서는 교도소 운영 방안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교도소 운영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이기 시작했는데 황교안 검사(국무총리), 심동섭 검사(소망교도소장)를 비롯해 기독교계·법조계·학계·교육계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 10여 명이 모였다.

전문위원들은 법률안을 만들고, 수용자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과 자원봉사자 활용 방안 등 전반적인 운영안을 논의했다. 

전문위원들은 한 달에 1~2회 토요일에 모여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해 민영교도소 출범을 도왔다. 모금이 지지부진해 교도소 설립 자체가 불투명할 때 잠시 위축되기도 했으나 전문위원들은 10여 년 동안 운영에 관한 세부 사항을 구축하면서 소망교도소 설립을 도왔다. 

‘특혜 의혹’ 트집잡기 논란

법무부 장관 재직 시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되었을 때 모 신문에서 황교안 총리에 대한 ‘소망교도소 설립 및 특혜 의혹’을 보도했다. 이에 소망교도소 측은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가 재단법인 아가페 이사로 소망교도소 설립에 관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독교계·법조계·학계·교육계 등 다방면의 전문가들도 참여했기 때문에 황 후보자가 설립을 주도했다는 것은 과장’이라고 해명했다. 

소망교도소는 대형교회들의 헌금에서부터 일반인들의 성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으로 완공되었다. 초창기에 수용자들의 새로운 삶을 위해 기초를 닦고 이론을 만든 전문가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민영 교도소의 재범률은 국가 교도소에 비해 매우 낮다. 사진은 소망교도소 봉사단 발대식.

민영 교도소란…

교도소의 본래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교화이다. 이러한 생각은 ‘인간이 인간을 처벌할 수 없다’는 천부인권 사상에 입각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운영하는 교도시설에서 실질적인 교화가 일어나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미국을 비롯 유럽에서 민간 교화시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민영 교도소는 1972년 브라질 변호사 마리오 오토보니가 가톨릭모임 ‘범죄자 보호·지원협회(APAC·아빠끼)’를 만들었던 것이 시초다. 1984년 휴마이타 교도소 운영권을 정부로부터 넘겨받은 뒤 75%에 이르던 출소자 재범률은 종교적, 인성적 교화 덕택에 4% 아래로 떨어졌다. 이곳을 거쳐간 520명 중 다시 교도소에 들어온 사람은 20명밖에 안 됐다. 

미국에서는 1997년 텍사스를 시작으로 아이오와·캔자스·미네소타 등에서 ‘속 사람의 변화, 자유의 첫걸음’(Inner Change, Freedom Initiative·IFI)이라는 교도소 내 종교 교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뉴질랜드·노르웨이·영국도 뒤를 따랐다.

한국의 경우 개신교계가 1995년부터 추진해온 ‘아가페 민영교도소’와 ‘소망 교도소’ 등이 있다. 이들은 신앙 훈련, 상담, 문화·예술 치유, 직업 훈련을 받는다. 출소 후엔 멘토와 직장·가정·교회가 힘을 합해 재활을 돕는다. 

민간 교도소는 급증하는 재소자와 재범률을 국가가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랑으로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인간적 교화행정으로 재범률이 국가 교도소보다 월등히 낫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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