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에 아브라함 카이퍼 같은 지도자는 없는가
오늘 한국에 아브라함 카이퍼 같은 지도자는 없는가
  • 이종윤 미래한국 상임고문
  • 승인 2016.08.28 10: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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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길]

“열개의 머리와 백개의 손을 가진 자”라는 칭송을 받았던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는 다방면에 천부적 재능을 가졌으며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의 신학을 세계화시키는 일에 그의 전 생애를 바쳤다. 

19세기 네덜란드가 낳은 카이퍼는 위대한 신학자요 교회 개혁가며 정치가, 교육가, 언론인이었다. 그는 불을 토해내는 대설교가였고 네덜란드 개혁교회를 세웠고, A.R.F. 정당의 당 총재가 되어 하원의원, 종신 상원의원을 거쳐 수상이 되어 칼빈주의적 정치를 실현했다.

인본주의적이고 무신론적 국립대학에 대항하여 성경적, 신본주의적 칼빈 사상을 가진 네덜란드 자유대학을 설립하고 교수로 총장직을 수행했다. 자유대학을 개교하면서 영역주권 사상을 제창함으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다. 

그는 일간지인 ‘스탠다드’지를 창간해 편집인이 되었고, 주간지 ‘헤라누드’지를 창간해 45년간 편집장으로 일했다. 1862년 그의 서거 때까지 한평생 223권의 크고 작은 책을 저술했다.

그중에는 신학, 정치, 사회, 문화, 예술, 과학, 교육 등 손대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다방면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논리가이자 실천자로서 감성, 지성, 영성뿐 아니라 의지력, 호소력, 리더십을 한꺼번에 갖춘 걸출한 인물이었다. 

카이퍼는 비전의 사람이었고 동시에 논쟁가였다. 그는 자신이 확신하고 있는 칼빈주의적 세계관을 사수하기 위해 한치의 양보도 없이 반대자들을 굴복시켰다. 카이퍼는 예술적 감성도 많이 갖고 있었다. 상상력이 풍부했고 감상적이기도 했다. 지성, 영성, 감성을 한꺼번에 소유한 보기 드문 인물로서 시간을 쪼개 성경 명상록을 썼다. 

카이퍼는 26세 때 목사가 되었고 그의 첫 목회지에 가서 두 번째 회심을 체험하고 개혁주의 신학자와 목회자로 거듭나게 된다. 카이퍼의 회심으로 그의 영적인 변화 뿐 아니라 그의 학문, 사상, 세계관 전부가 변했다. 

카이퍼는 위대한 기독교 정치가였다. 그의 신학의 핵심 주장 중 하나는 일반은총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세상을 변화시켜야 되고 잘못된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64세 때 수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자 철도 대파업 문제를 해결했고, 고등교육법안을 개정 통과시켰고 금주법과 사회보장법을 만들었다. 

신학자로서 정치가로서 교육가로서 그의 평가는 그가 살아 있을 때보다 하나님 면전(Coram Deo)에서 그가 행함같이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칼빈주의관 관점을 전 세계가 기독교정치의 표준으로 삼고 있다. 

오늘의 한국에 카이퍼 같은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세우고 우리 삶의 전 영역에 불꽃처럼 타오르게 할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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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Bang 2018-11-15 07:32:28
사진은 아브라함 카이퍼가 아니고, 헤르만 바빙크의 사진이네요...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