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참봉이 지켜낸 녹색의 보고 - 광릉 국립수목원
능참봉이 지켜낸 녹색의 보고 - 광릉 국립수목원
  • 미래한국
  • 승인 2003.05.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우익의 국토기행 (27)
저들은 천성이 곧은 것인가, 사철 하늘보고 자라느라고 절로 곧아진 것인가. 그 빽빽한 어울림을 뚫고 들어온 햇살이 발 아래 아무렇게나 퍼진 잡목들의 잎새 위로 쏟아진다. 그래, 서둘러 피어야지. 더 울창해지면 아랫것들은 빛보기가 어려울 테니까.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싶소?” 라는 물음에 접하여 당황한 적이 몇 번 있다. 그에 비하면 “선생님은 지리학이 아니라면 무엇을 전공하시겠습니까?” 라는 학생들의 질문은 좀 편하게 받을 수 있다. 대답이 “글쎄”로 시작되는 것은 현재의 직업 내지 전공에 대한 의리 때문이라기보다 그런 생각을 심각하게 해보지 않은 탓일 것이다. 그런 상황 설정이 단지 공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왠가 하면 결국 자기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뒤집어 드러내게 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식물학자나 임학자가 되어도 좋았을 것이라고 대답해 오고 있다. 가상의 세계를 마련해주어도 결국 학계, 그것도 인접 학문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나의 모험심이나 상상력도 어지간히 빈곤한가 보다. 거꾸로 현재 하고 있는 일에 크게 불만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 감사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명저 ‘땅의 윤리(A Sand County Almanac)’를 쓴 레오폴드(Aldo Leopold)는 산림관리인이었다. 그는 일생 산림을 지키고 관리하는 소임의 일부로 숲의 생태를 관찰하고 기록하다가 마침내 환경윤리의 서장을 여는 불후의 명작을 썼다. 자신의 일을 즐겁게 하는 가운데 보람을 얻고 인류를 위해, 아니 지구 생태계 전체를 위해, 커다란 기여를 해낸 것이다. 그리하여 영원히 숲속에 사는 이로 남았으니, 얼마나 축복 받은 삶인가?산이야 일년 열두 달이 다 아름답지만, 나는 특별히 5월의 산을 좋아한다. 이맘때면 땅바닥에 엎딘 작은 풀에서부터 큰키나무까지 고루 꽃과 잎을 피우기 때문이다. 대지는 훈기를 받아 촉촉이 젖어 있고 하늘은 아래서 받치는 녹색의 코러스로 드높고 푸르다. “사람의 마음이 5월의 하늘만 같았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서울 간 열여덟 살 아들에게 아버지는 그렇게 시작한 편지로 5월을 보내주고 가셨다.어버이날을 하루 지낸 다음날, 5월의 그 푸른 하늘을 보러 숲을 찾았다. 비온 다음이라 천지가 깨끗하고 만물이 녹색 춤을 추는 숲속에서 나는 한없이 생각에 빠져들고 있었다. 제자 셋이 동행하였지만, 각기 생각을 좇게 두려면 나부터 많은 말을 않는 게 낫다. 예전 소요학파는 걸으면서 대화를 하였다지만, 오늘 하루 우리는 서거나 걷거나 제맘대로 생각하기를 즐기기로 하였다. 어리든 늙든, 나무들이 각기 제자리에서 볕과 물을 나누며 어울려 숲을 이루듯이.침엽수원으로 먼저 갔다. 전나무, 잣나무, 소나무가 촘촘히 쭉쭉 뻗어 하늘을 찌른다. 저들은 천성이 곧은 것인가, 사철 하늘 보고 자라느라고 절로 곧아진 것인가. 그 빽빽한 어울림을 뚫고 들어온 햇살이 발 아래 아무렇게나 퍼진 잡목들의 잎새 위로 쏟아진다. 그래, 서둘러 피어야지. 더 울창해지면 아랫것들은 빛보기가 어려울 테니까. 줄기를 감고 오르는 저 넝쿨들은 무슨 수로 꼭대기까지 오르나. 그래도, 감아야 한치라도 하늘에 가까이 가니까, 감는 것 자체로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지.독일가문비나무가 반가우니 고향을 스쳐간 것도 인연인가. 레드우드파크의 자이언트 세콰이어는 83m가 넘는 키에 몸통 둘레만 24m가 더 된다고 했는데, 저기 메타세콰이어의 원산지를 중국이라고 써 논 것은 맞는 건가? 산책로는 숲길이 좁아 한결 아늑하다. 도랑 건너 언덕에 오르니 글자 그대로 숲속의 호수(育林湖)에는 물 속까지 숲과 그늘이 가득 잠겼다. 길이 엇갈리는 것에 개의치 않고 경사가 높은 쪽을 택해 걷는다. 문득 앞이 열리면서 몇 개의 층으로 뚜렷이 구분된 숲이 가로막아 선다. 멀리 높다랗게 검푸른 것이 필경 솔숲이요, 그 뒤 위쪽으로 활엽수림처럼 보이는 것이 아마도 자작나무 숲일 거라. 그나저나 ‘섬잣나무’와 ‘스트로브잣나무’ 앞에 금빛 드레스도 화려하게 나선 저 친구는 누구인가. ‘황금실화백’이라는 표지판까지 당당한데, 그 옆으로 또 ‘황금서양측백’이다. 자리하고 이름을 보자 하니 너도 요새 미움께나 받겠구나.물푸레봉 쪽으로 올라가는 길을 막아놓은 것은 이해가 가는 대로 유감이었다. 세조대왕의 무덤이 있는 광릉의 부속림으로 시작되어 임업연구소와 광릉수목원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으니, 530여 년을 잘 지켜온 천연림이다. 서울에서 한 시간이면 이르는 거리에 3,000종의 식물과 그 비슷한 수의 동물종을 가진 자연 그대로의 울창한 숲이 있으니, 오죽 많은 사람이 찾을까. 한때 연간 방문객이 125만에 이르렀다니, ‘5일전 예약제’와 ‘일일입장 제한제’를 실시한 것은 숲을 보전하기 위해 불가피했을 ?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