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투자 규모는 세계 최고 경쟁력은 중위권, 왜?
R&D 투자 규모는 세계 최고 경쟁력은 중위권, 왜?
  • 정재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6.08.30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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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점검] 과학기술 R&D 지원 체계

정부의 단기적인 안목의 과학기술 개발 지원 계획이 장기적 원천기술 개발을 막고 있다. 우리 과학자들 손에 믿고 맡겨야  

미래창조과학부가 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GDP 대비 과학기술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은 4.29%로 세계 1위, 투자 규모는 605억 달러로 미국·일본·중국·독일·프랑스에 이어 세계 6위로 나타났다. 정부도 올해 예산의 5.03%인 19조 원을 R&D에 투입하고 있다. 금액으로만 보면 작지 않은 규모다. 

반면 우리나라의 R&D 경쟁력은 투자 규모에 비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 민간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술 경쟁력(기술 수용성·혁신 경쟁력)은 최근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세계 7위였던 기술 수용성은 지난해 27위까지 떨어졌고, 혁신 경쟁력 순위도 같은 기간 8위에서 19위로 급락했다. 여기에는 우리 기업들의 최근 R&D 투자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전환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R&D에 투입되는 막대한 돈이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일관성 없이 단기적인 성과 내기에 급급한 탓에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투자가 요구되는 원천기술 개발이 어렵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더 나아가서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대한 정부의 관리·통제의 역할 자체가 시효 기간이 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의 역사에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같은 해에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도 수립함으로써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대한 지원을 국가발전 계획의 핵심으로 삼았다.

이때의 정부 지원이 현재의 과학기술 발전에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는 게 과학기술계의 중론이다. 이 시기에 과학기술진흥법 제정,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과학기술처 등이 신설됐고 굵직굵직한 연구 성과도 나왔다. 1978년 국방과학연구소가 내놓은 국내 최초 탄도미사일인 ‘백곰’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에는 국내 휴대전화 기술을 선도한 디지털 이동통신 기술인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방식)가 정부 주도 연구개발의 결과물이다. CDMA 기술은 정부 연구소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미국 퀄컴과 제휴해 개발했다.

정부가 오히려 과학기술 발전에 독(毒)? 

그런데 지금은 정부가 오히려 과학기술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게 과학기술계의 시각이다. 대표적인 문제가 대통령의 임기인 5년마다 바뀌는 정부의 과학기술 슬로건이다. 정부의 주력 과학기술 정책이 대통령마다 바뀜으로써 기존의 연구 성과는 버려지고 새로운 과제가 주어지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장기적인 기술 축적은 어렵게 된다. 예컨대 이명박 정부가 기치를 내걸었던 녹색 성장과 관련된 과학기술 투자는 창조경제를 주창하는 현 정부에선 유명무실해졌다. 

정권이 기치로 내건 과제가 아닌 기타 과학기술에 대한 지원도 시류에 영합하거나 단기 성과 위주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지난 3월 인공지능인 알파고가 국내 대표적인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에 승리했을 때 정부가 내놓은 인공지능 지원 계획이 그런 예다.

당시 미래창조과학부는 알파고와 이 9단이 첫 대결을 벌인 지 1주일 만에 1조원 규모의 한국형 알파고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미래 우리나라 산업을 대표할 수도 있는 기술의 개발계획이 정부 관계자들의 탁상에서 급조된 셈이다. 

정부의 근시안적인 정책 추진도 문제지만 25개에 달하는 정부 출연 연구소들의 구조적인 한계도 지적된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지원과 연구개발 체계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정부 출연 연구소들에 지원과 관리 시스템부터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국책 연구소 연구원들이 다른 부처처럼 일률적으로 정부 감사를 받게 되면 연구자들이 정부 평가에 수월한 연구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선 연구 기획 단계부터 달성하기 쉬운 연구과제가 많아질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평가가 어려운 원천기술이나 산업화용 기술은 도외시된다. 

특히 국책 연구소 소장의 임면이 정부의 입김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정부의 정책 기조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국책 연구소의 관계자는 “정부 정책 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연구 과제가 바뀌곤 한다”면서 “연구 성과 보고서뿐만 아니라 회계 보고서를 작성하느라고 정작 연구 개발할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더욱이 일반 정부 부처에 적용하는 일률적인 회계 감사 시스템으로 인해 국책 연구소 연구원들은 예비 범법자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이장재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정책연구소장은 “연구비의 사용 항목이 너무 세세하게 정해져 있어 연구자들의 자율성이 거의 없다”면서 “시시각각 상황이 변하는 실험을 위해 불가피하게 항목을 변경해 임의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연구자들이 예비 범법자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규정을 따르자면 모든 실험을 중단하고 물품이 공급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원을 예비 범법자로 만드는 정부

국책 연구소 소속으로 창업을 했던 송치성 한국기계연구원 책임연구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송치성 박사는 한국기계연구원에서 허가한 사내 벤처기업 1호를 맡았다가 연구원 내 시설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2011년 감사원과 검찰을 조사를 받고 횡령과 배임 혐의로 검찰에 구속돼 재판까지 받았다.

애초 정부가 연구원 창업을 독려하고 연구소 시설 및 장비 사용을 권장했지만 감사원과 검찰의 내세운 규정은 달랐던 것이다. 최근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송치성 박사는 소송비로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봤다. 

과학기술 인재들이 탈 한국 조짐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조사에 따르면 2008~2011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한국인 과학자 가운데 70%가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 남는다는 의사를 밝혔다. 

중요한 점은 단순히 정부의 정책을 가다듬어서 될 문제냐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과학기술 관련 연구 분야나 과제를 정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의미다. 단적인 예로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정부 연구소에서 탄생하지 않았다. 구글은 대학원생이었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박사과정 프로젝트였고, 페이스북은 마크 저커버그의 하버드대학 기숙사 방에서 나왔다. 

과학기술 선진국의 경우 정부가 지원하더라도 과학기술인의 자율을 최대한으로 인정하면서 창의성을 확보하고 있다. 내비게이션과 스텔스 및 GPS 기술, 3D프린팅 등을 만들어 낸 미국의 고등국방연구소(DARPA)는 연구원이 매니저가 돼 모든 권한을 갖는다. 독일의 공공연구기관도 기관장으로 과학기술자평의회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과학기술자를 선정한다.

이와 관련 송치성 박사는 “연구비를 지원했다고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연구원에게 창의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면서 “연구원의 자율성을 허가하고 연구 결과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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