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반도
위기의 한반도
  • 박용옥 전 국방부 차관
  • 승인 2016.09.01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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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한반도의 핵·안보 딜레마

미국은 한국의 독자적 대북 핵억제 역량을 지원해야

현 한국 안보 상황은 60여 년 전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위기 상황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네 가지 관점에서 이런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안보환경의 ‘부확실성과 불안정성’이 해소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위기감일 것입니다. 

▲ 하와이대 정치학 박사·전 국방부 정책실장·전 국가안보회의 사무차장·전 평남도지사

첫째, 한반도 평화 장치가 모두 사문화되었습니다.

1990년대 초 이후 남북한이 합의한 정치, 군사, 경제 등 여러 가지 한반도평화장치들이 모두 사문화되거나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와 분야별 부속합의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2000년 및 2007년의 남북정상공동선언은 사문화되었고, 금강산관광사업, 개성공단사업도 전면 중단된 상태입니다. 

북한은 남북대화와 관계개선이 추진되는 기간 중에 핵·미사일 개발을 계속했으며 2006년, 2009년, 2012년, 2016년 네 차례의 핵실험과 각종 사거리 탄도미사일을 빈번하게 발사하는 등 군사적 도발을 계속했습니다.

북한이 핵탄두의 소형화와 경량화에 성공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실전 배치하게 된다면, 미국 본토까지 협박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경우 한미 연합방위전략도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한국의 국내 정치 상황이 불안정합니다. 

한국 내 여·야, 보수·진보 세력 간에 대립과 갈등이 첨예화 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 한미관계와 관련하여 정파 간에 노선 갈등이 심화되고, 젊은 세대에게 반미 및 반일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 쉽습니다. 이는 국민 합의에 입각한 안보환경과 대북군사태세를 크게 저해하는 요인입니다. 

최근 미국의 고고도탄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한국 배치 문제에 관하여 우리 정부가 보여준 미온적 자세, 중국의 반대를 의식하는 여론 동향, 한미 양국 간의 불협화음 등은 한국의 국내 정치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4·13 총선 결과로 나타난 국회의 여소야대 현상은 앞으로 한미 양국 정부 간에 주한미군 관련 비용분담(cost-sharing), 사드의 한반도 전개, 주한미군 기지 이전, 전시작전권(wartime operational control)의 이양 등 주요 안보 현안에 관한 원만한 협상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한미동맹 및 한미 연합 방위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셋째, 미국 국내 정치 상황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점차 아시아 복귀(pivot to Asia), 재균형(rebalance) 정책에서 고립주의(isolationism)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예측도 일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의 대외정책은 전통적으로 정권 교체와는 별개로 대체로 일관성을 유지해 왔다는 것이 통설이긴 합니다. 그러나 최근 공화, 민주 양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나타난 후보들의 정책 공약들은 앞으로 미국의 대외정책이나 안보전략개념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미 대선 이후 한반도 전략 변경 가능

예를 들어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대중 관계는 물론 국제관계 전반에 걸친 재검토를 공언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미 관계는 군사,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재검토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의 주한미군 주둔비용 100% 부담, 주한미군철수 검토용의,한국의 핵무장 검토 등 실로 파격적인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트럼프 후보가 초기의 예상과는 달리 공화당 선두주자의 위치를 점하게 된 것은 미국 유권자들이 대외관계보다 미국 국가이익 위주의 정책 비전을 제시하는 트럼프 후보에 대한 선호도가 그 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은 앞으로 한미 군사협력관계의 변화 가능성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 한미 간 상호신뢰관계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한미 상호신뢰관계의 균열 징후는 주로 북한, 중국 정책과 관련하여 서로 상대국에 대해 의구심을 품거나 불신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구심이나 불신감은 반드시 해소되어야 합니다. 

한국은 미국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1) 미국은 앞으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이유로 언젠가는 북한 측과 타협하려 할 것 아닌가? 
2) 북한이 현 수준애서 핵 개발 활동과 실험을 중단한다면, 미국은 한국전쟁 종전선언, 현 휴전협정의 미북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등을 북한과 타협하지 않겠는가? 
3)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화 하여, 결국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는가? 
이 세 가지가 현실로 나타난다면, 한국에게는 재앙적인 안보 위기 상황이 될 것입니다. 
한편, 미국 역시 한국 정부에 대해 여러 가지 의구심을 품고 있을 것입니다. 
1) 한국은 미중 관계 악화 시,중립 입장 또는 중국 쪽으로 기울지 않겠는가? 이는 한국의 지정학적 입지 상, 필연적이지 않겠는가? 
2) 앞으로 한국에 좌편향 정권 등장 시, 현 수준의 한미 군사동맹체제가 유지되겠는가? 
3) 한반도 비핵화는 통일 이후에도 유지될 것인가? 

한미 간의 이러한 유의 상호 의구심이나 상호 불신은 반드시 해소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미동맹 관계의 약화로 인해 한국은 한반도 유사시 또는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미국 등 서방세계의 협력과 지원을 얻기 힘들 것이며, 미국도 확고한 한미동맹 관계에 따른 전략적 입지에 손상을 받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시작된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 한반도 안보를 위해 한미간 신뢰의 균열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 연합

안보 딜레마 해결 위해 새로운 발상 필요

위의 네 가지 주요 안보 위기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볼 때, 현재의 대내외적 상황이 계속된다면, 한국이 과연 현 핵·안보 딜레마를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새로운 발상으로 현 핵·안보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첫째, 북핵문제의 원초적, 최종적 책임이 북한에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한미 양국은 북핵문제의 본질은 ‘끈질긴 집념’과 ‘기만’으로 지난 20여 년 간 핵개발을 계속해 온 북한 정권에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면서 북핵 협상에서 공동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한국 측에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식의 말은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북한 정권으로 하여금 스스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정권이나 체제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토록 해야 합니다. 

지난 20여 년 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한과의 핵협상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6자회담 참가국들은 물론 유엔 안보리 등 국제기구는 모두 북한 핵문제에 관한 한 무능과 무기력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추구하는 북한의 끈질기고 기만적인 협상술책에 국제사회가 결국 굴복한 형국이 된 것입니다. 

한미 양국은 북핵 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막연한 기대는 이제는 버려야 합니다. 

둘째, 한국은 미국 대외정책의 변화 가능성에 대비해야 합니다. 

금년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예단하기는 아직 성급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근 언론 보도에서는 공화당 트럼프 후보의 당선을 예견하는 여론이 우세한 것 같습니다. 이는 미국 국내 상황이 과거와는 매우 달라졌음을 말해 줍니다. 

차기 미국 행정부는 초강대국 지위와 세계적 리더십 유지 보다는 국내문제 해결, 양자협력관계 보다는 다자협력관계, 미국의 일방적 주도 보다는 책임과 부담의 분담(responsibility/burden-sharing), 군사적 개입 보다는 정치 외교적 타협 등의 방식으로 국익 증진을 도모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트럼프 후보가 토해내는 미국 국익 위주의 대내외정책입니다. 예컨대, 주한미군주둔비용을 100% 한국이 부담, 주한미군 철수 검토용의 표명, 한국의 핵무장 허용 필요성 등의 언급은 비현실적인, 무책임한 말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한미동맹을 믿고 자체 군사력 강화 노력을 소홀히 해 온 한국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있지 않나 합니다. 새겨들으면서 모든 경우에 대비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셋째, 한미동맹 균열 요인을 필히 제거해야 합니다. 

한국 정부는 미국 차기 정부의 대한반도정책의 변화 가능성에 잘 대비하면서 특히 한미연합방위체제의 군사협력기반이 약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국사회 내에서 반미 감정 유발요인을 해소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미국 여론의 반한 감정 유발요인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에도 관심을 갖고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상 주한미군 주둔비용 부담 문제나 사드체계 한반도 배치 문제는 한국안보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주한미군 주둔비용 50% 부담이냐 100% 부담이냐 하는 문제는 협상 테이불에서 논의될 수 있는 사안입니다.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미국의 차기 정부가 비용부담과 같은 기술적인 문제를 주한미군철수 문제와 같은 중요한 국가전략적 사안에 연계시키도록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상호 이해를 위한 전략 대화(strategic communication)가 필요합니다. 

한편, 미국 정부 또한 예를 들어 한반도 동해의 명칭을 구태여 정부공식 문건에서 일본해로 단독 명기하여 한국 국민의 반미, 반일 감정을 자극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한·미·일 국방장관회담이나 3국 간의 2+2회담 등을 통해 동해/일본해 병행 표기하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합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이런 합의는 위안부 문제로 악화된 한일 간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지 않나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현재 한미일 정책실무담당자들이 그런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거나, 아예 무관심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넷째, 미국은 한국의 핵옵션 허용을 위한 전략적 검토가 필요합니다. 

트럼프 후보의 한국 핵무장 허용 주장은 결코 허황된 말이 아닙니다. 한국은 핵무기 개발이 국익 증진에 유익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여 1975년에 핵비확산조약에 가입하고 비핵정책을 선언했습니다. 1992년에는 북한과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에도 합의한 바도 있습니다. 

북한은 한국과 한반도 비핵화선언에 공식 합의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처음부터 한국과 국제사회를 철저하게 속이고 재처리, 우라늄 농축 등 핵개발을 비밀리에 계속했습니다.

결국 지난 7차 당 대회에서 김정은은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임을 재차 선언하면서 핵·경제 병진노선은 항구적 노선임을 재확인했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존속하는 한, CVID(complete verifiable irresistible dismantlement) 방식의 북핵 문제 해결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필요에 따라서는 핵개발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잠재역량을 보유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미국도 이를 도울 필요가 있습니다. 즉, 한국에게 평화적 목적의 핵 재처리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핵 재처리는 실제로 핵무기를 보유하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단지 일본의 경우처럼 핵개발 잠재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북한, 중국, 러시아에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북핵 문제가 CVID 방식으로 해결될 때, 한국의 핵선택권도 포기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미, 한국의 핵 옵션 수용해야

현재로서는, 한국의 핵·안보 위기 상황이 해결될 전망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이 한국의 핵·안보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개인적 소견을 피력하면서 발표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첫째, 한국 정부는 국방 투자를 대폭 증대하고 행동적인 통일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한국은 유사시 북한 전 지역을 정밀타격할 수 있는 공격전력을 조기에 확보하기 위한 노력에 전력을 기울이는 한편, 북한 체제 또는 정권 붕괴 시, 북한지역 안정화 작전에 투입할 수 있는 예비군 전력을 확대편성하고, 평시 교육 훈련을 체계적으로 실시해야 합니다. 통일준비의 핵심은 바로 이런 행동적인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한미 양국은 반미감정, 반한감정 유발 요인 제거를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 

양국은 자국 내에서의 반미감정, 또는 반한감정의 유발을 예방, 해소하기 위해, 가급적 상대방 국민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조치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사드 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보여준 애매모호한 입장은 미국 정부와 국민을 실망시켰을 것이고, 한반도 동해를 일본해로 단독 표기하는 미국 정부의 입장은 한국 정부와 국민을 실망시켰습니다. 

셋째, 미국은 한국의 핵옵션을 전략적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미국은 한국의 독자적 대북 핵억제역량 확보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협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의 대북 미사일전력 강화 노력에 대한 모든 규제를 해제하고, 사용 후 핵 연료의 재처리나 우라늄 농축 기술을 금지하는 현행 규제 약정들을 모두 해제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현 핵·안보 딜레마는 북한 핵문제의 CVID 방식 해결이 가능할 때, 그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 핵 옵션은, 그것이 비록 잠재적인 핵능력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북한 핵의 심각성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생각을 달리하게 할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한반도 비핵화의 실질적 실현을 위한 남아 있는 유일의 전략적 선택일 것입니다. 

한국과 미국은 동맹국으로서 각각 자기가 해야 할 몫을 충분히 담당할 때, 동맹관계는 더욱 굳건해질 것이며, 현 한국의 핵·안보 위기도 극복되고 한반도의 평화통일 기반도 공고하게 다져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은 필자가 지난 6월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헤리티지재단에서 강연한 ‘Nuclear Security Dilemma in the Korean Peninsula: No Way Out?’ 의 한글본입니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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