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속 군인 활약이 반가운 이유
스크린 속 군인 활약이 반가운 이유
  • 조희문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6.09.18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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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영화 관객의 진화

영화 관객들이 군인의 명예를 인정하고 군대를 신뢰하는 것은 나의 존재에 대한 자부심을 확인하려는 거대한 변화

다시 ‘인천상륙작전’ 에 관하여. 지난 2일자로 700만 관객을 넘었다. 지금도 상영 중이어서 숫자는 계속 늘고 있다. 당초 예상을 훨씬 넘는 의미 있는 성과다. ‘반공’ 또는 ‘애국’이 영화 소재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 조희문 영화 평론가·미래한국 편집위원·중앙대 영화학 박사·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1000만 관객을 넘기는 영화들이 수시로 나오는 것에 비하면 최고 다툼을 하는 수준까지 미치지는 않지만, 이 영화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던 분위기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올해의 문제작이라고 할 만하다. 그 성과를 만든 바탕에는 관객의 지지가 가장 큰 힘으로 작용했다. 관객이 이 영화를 인정하고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영화의 완성은 관객의 몫 

소비에트 시절의 영화감독 에이젠슈타인은 ‘영화를 완성하는 것은 관객’이라고 했다.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하나는 결국 영화를 보는 것은 관객이며, 보지 않는 영화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영화를 만든 의도를 관객이 이해하고 공감해야 비로소 영화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당시 러시아 감독들이 인식하고 있던 영화적 의미 표현의 방식은 대체로 두 가지였다. 세상의 모든 의미와 가치는 자연과 사회 속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화감독은 그 중에서 필요한 것만을 선택해서 배열만 하는 된다는 것이 한 방식이었고, 이 세상에서 스스로 완결된 의미를 갖는 사물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영화감독은 여러 가지 이미지를 조합시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 다른 하나다. 

이미지를 선택해서 배열해야 한다는 인식은 리얼리즘 스타일로 이어졌다. 가능한 한 편집을 최소화하며, 한 장면을 오래 찍는 기법(롱테이크)을 주로 사용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촬영하는 것이 세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지를 조합시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고 믿는 쪽은 몽타주 기법을 개발했다. 아기가 요람에 누워서 곱게 잠자고 있는 장면과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며 어디론가 기어가는 장면을 서로 연결하면 관객들은 아기가 위험에 빠졌다는 상황을 연상하기 쉽다.

실제로는 전혀 다른 곳에서 아무런 상관없이 촬영을 하더라도 편집을 이용하여 서로 조합하면 ‘위험하다’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에이젠슈타인은  몽타주 기법의 원조 개발자이자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다. <전함 포템킨>(1925)은 그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꼽는다. 

리얼리즘 스타일은 진지하고 장중한 느낌을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고 하여 다큐멘터리 영화나 사회 고발성 영화들에서 자주 이용하려 했다. 진지한 느낌을 강조하는 대신 음울하고 느린 인상을 주기 쉽다는 부담도 크다.

몽타주 기법은 편집을 통한 속도감과 재미를 표현하는 데 강점을 보이기 때문에 대중적인 오락 영화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오늘날에는 영화 종류에 상관없이 두 가지 기법을 모두 사용하고 있지만 영화 초기에는 서로 다른 기법으로 여겼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관객이 이해하고 의미를 포착할 수 있어야 영화의 성과가 나타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에이젠슈타인이 ‘영화를 완성하는 것은 관객’이라고 강조한 것은 그만큼 관객을 역할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흥행이 잘된다든지, 어느 배우가 스타로 대우받고 있다면 당대의 관객들이 그런 영화나 스타를 좋아하고 있다는 뜻이다. 영화의 유행이 바뀌고, 스타의 면면이 달라진다면 관객의 취향이 달라졌다는 표시다.

▲ 영화 <인천상륙작전> 스틸컷

한국 영화·드라마에 돌아온 군인들 

얼마 전 <태양의 후예>라는 TV 드라마가 선풍을 일으켰다. 대단한 성과를 거둔 여느 드라마들과는 달리 군인과 제복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색달랐다. 우리 사회에서는 어느 사이엔가 군대와 군인에 대한 이미지는 뒤틀리고 어두웠다.

군대에서 보내는 시간을 ‘빼앗긴 청춘’ 쯤으로 여기거나 군대는 비정상적인 폭력 집단처럼 여기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군대를 소재로 한 영화나 TV 프로그램이 드문드문 등장하기는 했지만 관성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는 무자비한 폭력세력이거나(<화려한 휴가> <작은 연못> <지슬> 등) 멀쩡했던 정신을 미치게 만드는(<해안선> <고지전> 등) 곳으로 비쳤다. ‘군대 간다’고 하면 모든 희망과 열정을 접은 채 막다른 유배지로 내몰리는 듯한 절망감의 다른 표현처럼 여겼다. 빛나는 청춘으로 명예를 지키는 군인의 모습을 보인 경우도 있긴 했지만(<블루>  <대한민국 1%> <R2B:리턴투베이스> 등) 관객들의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영화의 수준이 좋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유를 돌릴 수도 있지만, 영화 수준이야 대개는 비슷한 수준이고 최근의 한국영화 제작 역량이 크게 높아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수준에 모든 것을 묻어버리기는 어렵다. 

사회에 널리 퍼진 불신이나 막연한 적개심이 군인을 경멸하고 군대를 악의 근원처럼 여기며 기피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 <연평해전>은 남북간 왜곡된 정치구조 속에서 가려졌던 군인들의 용기와 희생을 직접 소재로 재현했고, <인천상륙작전> 역시 군인들의 영웅적인 활약을 그린다. 맥아더 UN군 사령관의 역할도 중요하게 부각한다. 군인들에게 보내는 지지이며 칭송이다. 

군인들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그들을 멋진 연인으로까지 변신시킨 것은 관객과 시청자들이다. 무엇이 관객을 변하게 했을까? 오랫동안 군인과 군대에 냉담했던 인식이 언제부터 달라졌을까? 

과거를 복원하고, 군인의 명예를 인정하고 군대를 신뢰하는 것은 나의 현실을 긍정하며 존재에 대한 자부심을 확인하려는 거대한 변화라고 본다. 최근 영화들에 대한 평가와 반응은 관객의 진화를 보여주는 움직임처럼 보인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그 변화를 더욱 촉발하는 가속 엔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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