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가 없어도 영화는 계속된다
스타가 없어도 영화는 계속된다
  • 조희문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6.10.18 08: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참관기]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제는 스타를 위한 행사가 아니라 관객을 위한 축제. 이번 부산국제영화제는 화려함보다 차분하게 영화를 음미할 기회

▲ 조희문 영화 평론가·미래한국 편집위원

화한이 없다고 결혼식을 못할까?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도 열렸다. 레드카펫은 여전히 깔렸고 주변에 자리 잡은 관객들은 누가 들어오는지 주목했다. 친숙한 얼굴이 보이면 환호하고, 잘 모르는 경우라면 엉거주춤 반응한다. 인기 있는 경우일수록 박수와 환호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소리만으로도 어떤 분위기인지 짐작이 갈 정도다.

이번 행사에서도 레드카펫을 밟은 배우들이 많았지만 덩치나 무게감 면에서 예전 같지 않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른바 최근 잘나간다는 스타들은 보기 어려웠던 탓이다. 이를 두고 영화제의 성패를 나누려는 의견도 나왔다.

택시 안에서 만난 어느 기사도 “올해는 유명한 배우들이 없어서 재미가 없다”는 말을 했다. 현장에 가 봤냐고 물었더니 직접 본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유명한 배우가 왔는지 아닌지 헤아리고 있는 것은 오가는 승객들의 대화나 관련 소식을 통해 분위기를 짐작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제 기간 동안 영화 한 편 보지 않고, 현장에도 가지 않은 시민이 생각하기에 스타가 많이 오는 영화제는 좋은 영화제이고 그렇지 않으면 별 볼 일 없는 행사라고 규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인들 중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스타가 등장하지 않으면 그 영화제는 실패한 것일까? 스타는 영화제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가? 스타들의 등장이 화려할수록 관객이나 취재 기자들은 호의적이다. 분위기가 뜨고, 이런저런 이야기 거리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그림’ 만들기에 목을 매는 사진이나 영상 쪽 기자들은 스타들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에 대한 호감이 다르다. 많을수록 잔치 분위기로 여기는 것은 직업적인 반응이다. 스타들의 화려한 모습은 시청률이 높은 소재이니 기를 쓰고 좋은 그림을 찾으려 할 수 밖에.

몇 년 전 어느 여배우는 가슴이 드러날 정도로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고 나온 덕에 카메라맨들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레드카펫 위에 선 여자배우가 도발적인 제스처를 연출하는 것은 최고의 기사거리다.

그 해 영화제에서 그 배우가 출연한 영화가 상영되기는 했지만 레드카펫 위에서 받은 열기에 비하면 관심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덕분에 그 여배우는 연예 매체들의 취재 바람을 타고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관객들 또한 현장에 아무리 많이 모인다고 해야 한계가 있는 것이고, 대부분은 영화제 소식을 전하는 언론 매체들의 보도를 통해 분위기를 읽을 수밖에 없다. 어느 면에서는 언론 매체의 보도 횟수와 내용이 영화제의 성공 여부를 가리는 지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 행사를 주관하는 측에서도 스타를 불러 레드카펫 위를 걷게 하는 일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 시작 단계에서 영화제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스타효과가 최고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부산영화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전주국제영화제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처럼 특정한 주제를 강조하는 테마 영화제들조차 레드카펫 행사를 준비한다. 그럴 정도의 규모가 되지 않는 경우에는 포토스탠드라도 세운다.

그러나 스타 한 명을 모시는 일에는 상당한 공력을 들여야 한다. 스케줄을 조정해야 하고, 초청에 드는 비용을 모두 부담해야 한다. 명성이 높을수록 수행하는 인원도 많다. 일정을 관리하는 매니저에다 의상이나 메이크업 담당까지 수행하게 되면 그만큼 비용도 늘어난다.

배우들 입장에서도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곳에서 한껏 우아함을 뽐내려면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일이 많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니 가볍게 대할 수도 없다. 그날 레드카펫을 밟게 되는 다른 스타들의 면면과 차림새에 신경 쓰며 최소한 밀리지는 않아야 한다는 강박감에 흔들릴 수도 있다. 영화제 측에서도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나 불평에 대비하고 경호까지 관리해야 하니 일정이 끝나야 한숨을 돌리게 된다.

개막식에 참석했던 스타들은 대부분 행사가 끝나자마자 또는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뜬다. 별도의 행사가 잡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머물러 있을 이유도 없다.

화려한 장식과 스타 모시기는 이제 그만 

결국 영화제가 관객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스타들을 위한 행사로 기울 수 있는 대목이다. 스타들이 많이 출연할수록 개막식은 화려하게 보이겠지만 정작 이후의 영화제 행사는 관심이 급격히 줄어든다. 개막식에 몰려든 관객을 계속 붙잡아두려면 이런저런 행사를 여러 개 만들어 마케팅을 할 수밖에 없다.

평소에는 쉽게 볼 수 없는 영화를 다양하게 소개하고, 영화인들의 교류를 확대하며 관객들의 영화 시야를 넓혀준다는 본래의 취지는 뒤로 밀려나고, 외형적 규모를 키우는 데 골몰하게 되는 부분이다. 그동안 부산국제영화제의 규모는 커졌지만 영화제의 본래 취지에 맞는 내실을 다져왔는가에 대해서는 평가가 다른 이유다.

올해는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임기 만료 퇴진과 관련하여 영화제 안팎이 소란스러웠다. 일부 영화단체들에서는 이용관의 퇴진을 정치적인 압박이라고 주장하며 영화제 참가를 보이콧하자는 주장을 했고, 찬반을 둘러싼 논란이 잇따랐다. 영화제 개막 직전까지도 설왕설래가 이어졌고, 영화제가 제대로 열릴 것인지 궁금해 하는 시선도 많았다.

개막식 무대에 선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2개의 태풍을 극복하고 열리게 되었다”며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선언을 했다. 전날 태풍 차바가 부산을 휩쓸고 지나며 시설물 일부를 날려버린 것과 영화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을 태풍에 비유한 것으로 읽혔다.

강수연 위원장의 표현처럼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어쨌든 막을 올렸다. 스타가 줄어든 영화제는 그만큼 화려함이 줄어든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관객을 위한 영화제 본래의 취지에는 오히려 다가서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영화제는 스타를 위한 행사가 아니라 관객을 위한 축제다. 21회째 맞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스타들에게 자리를 내줬던 예년의 화려함에서 벗어나 비로소 전환적인 변화를 보여준 경우라고 할 것이다. 스타가 없어도 영화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