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분명히 살아계십니다”
“아버지는 분명히 살아계십니다”
  • 홍준석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6.10.24 00: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KAL기 납치피해자 가족 황인철 씨

북한이 공중 납치해 47년을 억류했지만 정작 우리 정부는 무관심

아버지를 찾기 위해 16년 동안 국제사회에 호소해 결국 공론화 성공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인민군의 눈초리를 아랑곳하지 않는 한국인, 그는 1969년 12월 11일 북한의 KAL기(대한항공 YS-11)의 공중 납치로 북한에 끌려갔던 피해자 황원 씨(79세, 당시 32세)다.

MBC PD로서 강릉에서 서울로 출장오던 길에 졸지에 납북자 처지가 된 황 씨는 일행을 감금하고 있는 북한 관계자들을 향해 “난 자유 대한민국 국민이요. 나를 조국으로 보내주시오!”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며 남한의 대중가곡 ‘가고파’를 불렀다고 한다.

KAL기 납치 사건은 무장한 북한 공작원이 강릉에서 서울로 향하던 KAL기를 대관령 상공에서 납치해 북한 원산에 착륙시킨 사건이다. 승객 47명, 승무원 4명 등 51명이 탑승한 상태였다.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비난이 일자 북한은 납치 66일 만인 1970년 2월 14일 탑승자 중 승객 39명을 판문점을 통해 송환했지만, 황원 씨를 포함한 11명은 억류돼 47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많은 국민의 기억에서도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러나 황원 씨의 아들 황인철 씨에겐 현재 진행형의 사건이고, 그의 고군분투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도 하나둘 풀리는 중이다.

눈물을 삼키며 말을 잇는 황인철 씨. 그는 고이 간직해 온 사진 속 부친의 모습과 꼭 닮았다. 부친의 언론인 고집까지 물려받은 걸까. 황인철 씨는 올해로 16년째 북한의 KAL기 범죄를 폭로하고 있다. 납치 당시 황인철 씨의 나이는 두 살. 그가 아버지 황원 씨를 찾는 데 발 벗고 나선 때는 2001년 2월 26일 제3차 이산가족 상봉일이었다.

▲ KAL기 납치사건 피해자 가족 황인철 씨는 “우리 정부가 납북자 문제에 소극적이라 아쉽다”고 토로했다.

정권 바뀌어도 여전히 소극적 

아버지 황원 씨와 함께 송환이 거부돼 북한에 억류됐던 성경희 씨(당시 KAL기 승무원)가 남한의 가족을 만나러 나온 자리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성 씨는 황원 씨를 포함한 KAL기 납북자들 모두 북한에 살아 있다고 증언한다. 그 증언 후 16년이 흘렀지만 황인철 씨는 “가족으로서 본능적으로 아버지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황인철 씨는 송환 운동을 세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한국 정부에 대한 대북 압박 촉구, UN 인권이사회 산하 강제적·비자발적실종관련 실무그룹(WGEID·이하 실무그룹)에 대한 북한납치실상보고 요청, 또 인터넷홍보·시민서명·공공시위 같은 여론 조성이다. 납북자 문제는 남북관계 문제인 만큼 특히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황 씨는 시작부터 장벽에 부딪쳤다. 바로 김대중 정부 때 맞닥뜨린 햇볕정책이란 벽이다.

“당시 통일부 관계자는 상식 밖의 말을 했어요. ‘KAL기 납치는 이미 과거사건이니 지금으로선 해줄 것이 없다’라는 게 통일부의 대답이었습니다. 심지어 정부는 납북자를 이산가족에 포함시켜 접근했어요. 전시도 아닌 시기에 민항기가 납치돼 끌려간 피해자들이 어떻게 단순 이산가족입니까? 납북자에 관심을 가져달라 해도 통일부는 ‘다른 이산가족도 많다. 당신 가족만 챙길 수 없다’고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황 씨는 “외교의 기본인 ‘기브 앤 테이크’를 무시한 대북정책 때문에 국민의 인권이 침해 당했다”고 분개했다. 그나마 KAL기 납북자 송환을 위해 노력했던 것은 납치 당시의 박정희 정부였다. KAL기 사건 직후 정부는 납북피해자 가족회와 협력해 송환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1969년 무렵의 우리나라는 너무 힘이 없었다.

지금의 박근혜 정부도 북핵 제재·개성공단 폐쇄·사드 배치 등 여러 면에서 원칙적인 대북 정책을 펴고 있지만, 납북자 송환에 대해선 어중간한 모습이다. 피해자 가족으로선 답답할 따름이다. 최근 ‘북한인권법’이 시행됐으나 이 법이 납북자 송환에 보탬이 될지 의문이라는 게 황인철 씨의 걱정이다.

“예전처럼 ‘과거 사건 그냥 잊으라. 우리도 어쩔 수 없다’며 핀잔을 주진 않지만 지금도 여전히 소극적입니다. 좌파 정권 후에도 통일부의 입장은 크게 안 달라요. 지금도 구체적 방안 없이 ‘노력하겠다’라고만 해요.”

日 정부는 납북 일본인 송환에 총력 

그렇다면 비슷한 사정을 겪고 있는 일본은 어떨까. 황인철 씨는 일본의 납북자 송환에 대한 투자는 상상 이상이라고 말한다.

“일본은 이 문제에 공식·비공식 루트를 다 동원해요. UN은 대대적으로 로비를 하는 일본을 우대할 수밖에 없어요. 일본 때문에 유엔에서 한국인 납북자 문제가 후순위로 밀려날까봐 늘 걱정입니다.”

아베 총리는 매년 납북자 가족 면담을 실시한다. 아베 총리는 면담회에서 “납북자들이 고령인 만큼 북한에 대한 회유책과 강경책을 모두 활용해 조속히 송환 협상을 이룰 것”이라고 약속했다. 실제 일본 정부는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 의제 상정·생존자 재조사를 위한 북일(北日)연합위원회 결성·각종 대북 제재 및 송환 협상 시도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황인철 씨는 2010년에는 UN 인권이사회 산하 실무그룹에 납북자 문제를 접수했고, 2011년에는 국제적십자위원회 (ICRC)가 북한에 납북자 정보 확인 요청을 하도록 촉구했다. 그러나 이들 국제기구의 확인 요청에 북한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강제실종이 아니다. 인권 침해 사항 없다”라는 짤막한 문장이었다. 

“북한이 입장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사실상 송환이 어렵지 않겠는가”라는 의문이 떠오르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조심스럽게 묻자 황인철 씨는 이렇게 답한다.

“2010년 UN 인권이사회 실무그룹과 2011년 국제적십자위원회에 납북자 문제 해결지원을 요청하자 2011년 우리 국회에 납북자 포럼이 만들어졌어요. 황우여·박선영 의원이 주도한 이 포럼에는 통일부와 외교부 관계자들도 나와 KAL기 납북자 문제를 심도 있게 다뤘습니다. 국회 포럼 후 납북자송환운동은 상당한 진척이 있었습니다.”

결국 개인적으로라도 국제적십사위원회나 UN 인권이사회 실무그룹에 꾸준히 접촉을 하면 우리 국회나 정부도 나설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특히 UN 인권이사회 실무그룹이 북한에 사실 확인을 요청한 배경에는 정부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KAL기 납치사건은 오래된 사건이라 실무그룹에 계류 중인 다른 현안에 밀릴 수 있었지만, 우리 정부가 납북자 현안을 우선 집행하도록 설득해 결국 2012년 북한으로부터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강제실종이 아니다’라는 답변이었다. 그런데 황인철 씨는 이때의 정부 대응이 아직도 아쉽기만 하다.

“UN이 납북자 현안을 공론화하고, 국회와 정부가 움직일 때였어요. 만약 그때 정부가 북한에 대한 규탄 성명이라도 냈다면 공식 또는 비공식 남북 납북자 협상이 시작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야 하는 법인데 정부가 망설여 기회를 놓쳤어요.”

▲ 두 살 된 황인철 씨를 안고 있는 황원 씨. 황인철 씨는 2001년 본인의 두 살 된 딸을 보며 아버지를 찾기로 다짐한다.

UN북한인권보고서에 큰 기대  

세상사(世上事) 사필귀정(事必歸正). 황인철 씨는 이 말을 믿는다.

“국제납치 사건은 명백한 사실 증거가 중요합니다. 대개 납치사건은 은밀히 행해져 사실 증거가 없어요. 그러나 KAL기 사건은 송환자들의 증언이 있어 사실 증거가 명백합니다. 자발적 체류라는 북한의 거짓말이 이미 드러났지요. 북한의 도움 없이도 납북자 송환을 이룰 수 있어요.”

최근 황 씨의 표정이 밝아진 것도 두 달 전 새로 취임한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보고관 때문이다. 그는 국내 인권단체의 도움으로 지난 8월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을 만나고 왔다. 아르헨티나 아동 납치를 파헤친 바 있는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은 황인철 씨에게 “UN은 납북자 문제를 중시할 것입니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킨타나 보고관은 10월에 예정된 유엔 총회에서 북한인권보고서를 발표하는데, 여기에서 납북자미송환 문제도 다룰 예정이라고 한다. 이 보고서를 시작으로 킨타나 보고관이 북한인권에 대한 조사에 나서는데, 이때 KAL 피해자 문제도 다뤄질 것이라는 게 황인철 씨의 기대다.

“UN이 움직이면 한국 정부도 움직일 것입니다. 또 UN이 이 사건을 국제사회에 알리면 북한도 계속해서 핑계만 댈 수는 없을 겁니다.”

황인철 씨는 현재 아내와 세 딸, 그리고 노모를 부양하고 있다. 가족 부양과 이 납북자 송환운동을 병행하기에 경제적 어려움은 없는지 물었다. 그런데 그는 경제 문제보다 어머니를 지켜보는 일이 더 힘들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홀로 자식을 키웠어요. 그런데 KAL기 납치사건의 트라우마로 한평생을 불안증에 시달렸습니다. 출장 가던 남편이 탄 비행기가 갑자기 북한으로 납치가 됐으니 얼마나 놀라셨겠어요. 버스를 타실 때도 불안에 떠셨죠. 그렇게 사시는 어머니를 보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어머니가 생전에 꼭 아버지를 뵙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