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거대한 노예노동 국가
북한은 거대한 노예노동 국가
  • 이애란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6.10.26 10:4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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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고발] 북한의 강제부역조직 돌격대

40만 명으로 추산되는 돌격대 대원들이 강제노동. 

더욱이 각종 명목으로 직장인, 가정 주부, 학생들로부터 수탈한 현금이 매년 9억 달러(약 1조 원) 

북한은 대부분의 국가적 대규모 공사를 맡아 수행하는 돌격대라는 특수한 조직이 존재한다.  돌격대원 구성의 대부분은 청년들이고 이들은 북한이 중요하게 추진하는 국가적인 건설공사에 투입되어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

지난 10월 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는 국제인권단체인 북한 반인도 범죄철폐국제연대(ICNK)가 북한 강제노동 실태 보고서인 ‘거대한 노예노동 국가, 북한’을 통해 북한에 40만 명으로 추산되는 돌격대 대원들이 강제노동을 당하고 있으며, 직장인들은 물론이고 가정 주부와 학생들까지 ‘경제 과제’를 내주고 각종 명목으로 돈을 내라고 주민들에게 강요하여 매년 9억 달러(약 1조 원)에 달하는 현금을 수탈하고 있다고 했다. 

돌격대 경험을 가진 탈북민 18명을 심층 인터뷰해서 작성한 이 보고서에는 북한에서 중학교 졸업생 중에 출신 성분이 나쁘고 인민군이나 대학에 갈 수 없을 만큼 신체 조건이 나쁜 학생들이 거의 강제적으로 돌격대에 뽑혀 복무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인터뷰에 참여한 탈북자들은 일단 돌격대에 속하면 남녀 구분 없이 약 10년간 군대와 비슷한 조직 생활을 하면서 도로·아파트·철로·발전소 같은 국가 시설을 건설하는 데 동원된다고 밝히고 있다. 노동시간은 하루 10시간 이상으로 오전 4시간, 오후 5시간 외에 야간작업도 해야 하지만 임금은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당의 지시에 따르는 속도전 기간에는 자정까지 작업하거나 밤샘 작업을 하기도 하며, 작업이 없는 날에는 정치학습·생활총화 등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자유로운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강냉이밥 한 그릇 정도를 한 끼 식사로 배급받으며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고, 구타나 안전 사고도 일상적으로 일어난다는 충격적인 내용들이 밝혀졌다.

▲ 북한은 수많은 청년들이 돌격대라는 이름으로 각종 강제노동에 동원되고 있다. 사진은 북한 함경북도의 수해 복구 현장.

노예 수용소와 다름없는 북한의 돌격대 

북한에 살고 있는 누구나 노예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북한의 돌격대는 그야말로 노예들의 수용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돌격대는 1946년 평양 보통강 개수공사에 동원된 민청청년돌격대였다. 1946년 1월에 조직된 북한 청년들의 조직인 조선민주청년동맹원들이 앞장서서 국가의 중요한 공사를 맡아서 해결한 첫 사례였다. 

특히 ‘속도전 청년돌격대’로 불리는 청년돌격대는 김정일의 후계 세습 과정에 자신을 위한 전위대로서 만들어졌다. 김정일은 1975년 2월 개최된 조선노동당 제5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으로 선출되어 공식적인 북한의 후계자로 확정되면서 자신의 업적을 이뤄줄 청년집단을 창설했다. 김정일의 정치사상 업적에서 중요한 속도전 청년돌격대를 발기하고 조직했던 것이다. 

북한은 1970년대 들어서면서 경제가 더 부진해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에 따라 인민경제 6개년 계획 수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었다. 이때 김일성의 후계자로 등장하는 단계에 있었던 김정일은 ‘속도전’ ‘전격전’ ‘섬멸전’ 등의 방침을 내세우고 부진한 6개년 계획 수행을 촉진하기 위한 대안으로 1974년 10월 21일 ‘70일 전투’를 진행할 것을 지시했다. 

김정일의 밀어붙이기 식 ‘70일 전투’로 북한의 경제에서는 반짝하는 성과가 나타나기도 했는데, 북한의 발표에 따르면 공업 생산은 평균 1.7배, 일부 지역의 석탄 생산량은 5배 증가했다고 한다. 물론 전투기간 동안 근로자들은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일했고 휴식일은 고사하고 밤 12시, 때로는 새벽까지 노동을 해야 했다.

김정은의 밀어붙이기 식 리더십의 상징인 ‘속도전’ ‘전격전’ ‘섬멸전’은 ‘70일 전투’에서 빛을 발했고, 이에 고무된 김정일은 자신의 업적을 극대화하기 위한 평양시 대규모 건설 사업을 구상, 그것을 위해 1974년 5월 16일 조선 사회주의청년동맹 산하에 속도전 청년돌격대를 창립했다. 

북한의 건설 실적은 청년들 희생의 산물 

김정일은 속도전 청년돌격대의 성격과 임무, 규모와 조직체계, 돌격대원의 선발원칙까지 제시했는데, 시작 초기에는 아무나 갈 수 있는 조직이 아니었다. 각급학교의 사로청위원장을 비롯하여 청년간부들이 모집되었고 이들은 3년간의 돌격대 생활을 마치면 금성정치대학을 비롯한 북한의 여러 당간부 양성학교에 입학해 과정을 마친 후 청년동맹 간부나 당 간부로 선발되는 특전이 있었다. 

북한 청년들 중에는 돌격대를 마치고 조선노동당에 입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금성정치대학을 마치고 중앙과 지방의 청년동맹 일꾼이나 당 간부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1995년까지도 북한의 속도전 청년돌격대 대장은 북한의 청년동맹 비서인 최룡해였다. 

그러나 많은 국가적 대규모 공사들에 더 많은 청년돌격대를 보내야 하는 현실에서 그 많은 속도전 청년돌격대 인력을 보충하기도 어렵고 모든 속도전 청년돌격대 출신들을 당 간부로 파견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지게 되자 북한은 전국의 학교들에서 중고등학교 졸업생들을 거의 강제적으로 모집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속도전 청년돌격대는 군사적 조직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여단으로 편성되어 대대, 중대, 소대, 분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집단 숙식을 하며 일반 돌격대와는 달리 특별한 제복을 입혀 사회에서도 속도전 청년돌격대원이라는 것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2015년 창립 40주년을 맞은 속도전 청년돌격대는 지난 40년간의 업적으로 평양 만경대학생소년궁전과 인민대학습당, 국제친선전람관 공사를 성과적으로 끝냈고 14개의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 건설, 창광거리와 광복거리 등에 세워진 아파트 건설, 원산-금강산 철도공사, 북한 북부철도공사, 남포고속도로를 비롯해 200여 개에 달하는 국가의 기념비적 건설 사업을 주도했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속도전 청년돌격대가 자랑하는 북한의 기념비적 건설물들에는 청춘을 빼앗기고 노예노동에 시달리며 스러져 간 북한 청년들의 원한도 함께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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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남 2016-11-18 01:19:15
북한은 제대로 미친세상이고 한국은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보는 미친 개돼지들이 떼거리로 미친짓을 하는 세상이다.

박혜연 2016-11-04 10:30:55
맞아요~!!!! 우리나라는 닭그네가 무당 최순실의 꼭두각시로 살고있는 무당국가죠~!!!!

ㅁㄴㅇㄹ 2016-10-30 01:36:34
북한은 거대 노예 국가. 대한민국은 신정일치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