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본 노벨 생리의학상의 꿈
지하철에서 본 노벨 생리의학상의 꿈
  • 노환규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6.10.27 02:21
  • 댓글 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환규의 청진기]

우리나라가 의료선진국이라고 자화자찬하지만 실제 의료 수준이 앞선 것은 임상의료일 뿐 기초의학을 들여다보면 실로 부끄러운 수준 

필자가 의과대학생 시절 받았던 강의 중 지금도 기억에 남는 몇 번의 순간이 있다. 임상병리학 교수님이 강의 도중 말씀하셨던 것이 그 중 하나다.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미래한국 편집위원

“지금 의학이 어떤 시대를 보내고 있는지 여러분들이 아셔야 한다. 여러분은 ‘의사’라고 하면 머릿속에 많은 지식을 넣고서 가능한 많은 병을 고치는 사람이 훌륭한 의사인 것으로 알고 의대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의학연구는 그렇지 않다. 의학연구는 매우 깊고 세분화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아는 어느 저명한 외국인 의사는 평생을 혈액세포 중에서 혈소판 하나만 연구하며 평생을 보냈다. 인체에 수많은 종류의 세포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혈액세포, 혈액세포 중에서도 혈소판 하나에만 매달려 평생을 연구하며 보내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소개할 때에도 ‘혈소판을 연구하는 누구다’라고 소개한다. 

지금 의학은 그런 시대다. 의학 분야의 지식은 매우 깊고 방대해서 한 사람이 연구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좁다. 그런 연구들로 지식들이 쌓이고 그 지식들이 쌓여 의학이 되는 것이다.” 

의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면서 의학이 얼마나 방대한 것인가를 체감하게 되었고, 일찌감치 의학 앞에 늘 겸손해야 하는 이유를 깨우쳐주신 교수님에게 감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교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된 것은 이번 일본 과학자의 노벨 생리의학상의 수상 소식을 들은 이후였다. 

日 노벨상 수상에 한국 의사들 부러움 

지난 10월 3일, 스웨덴의 노벨위원회는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수상자로 일본의 오스미 요시노리(大隅良典·71) 도쿄공업대 명예교수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를 노벨 생리의학상의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그가 오토파지(autophagy) 현상에 대한 연구 분야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웠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오토파지, 즉 세포의 자가 포식이란 세포 내 손상된 소기관이나 불필요한 단백질을 분해하고, 새로운 단백질과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말한다. 

세포의 오토파지 기능 이상은 노화와 암의 생성, 그리고 알츠하이머와 파킨슨씨 병 등 다양한 신경질환의 발병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오토파지 기능은 매우 큰 관심을 받고 있는 분야다.

그런데 오스미 교수가 지금부터 23년 전인 1993년에 효모를 이용해서 오토파지 현상을 제어하는 유전자를 세계 최초로 발견하는 성과를 이뤘다는 것이다. 그의 연구는 오토파지 기능과 관련된 현상이나 질병들, 즉 노화와 암의 생성 그리고 여러 신경질환들의 원인 규명과 치료방법 강구에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소식을 들은 우리나라의 의과학자들은 마음 한켠의 부러움과 또 한켠의 낙담을 숨기기가 어려웠다. 오스미 교수가 노벨상을 수상한 23번째 일본인이 된 것도 대단하지만, (일본에서 연구를 한 후 미국 국적을 취득한 일본인들까지 합하면 25명의 일본인들이 노벨상을 수상했다) 오스미 교수의 수상은 지난 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오무라 사토시 기타사토대 명예교수의 뒤를 이은 것이어서 일본이 2년 연속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게 된 사실이 더 놀랍다. 

축구가 되었건 야구가 되었건 한일전은 특별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한일전만큼은 절대 질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건만, 의과학 분야의 연구를 스포츠 경기로 전환해서 비교한다면 우리는 거의 모든 경기를 콜드게임 패를 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유는 무엇일까. 스코어 차이를 좁힐 수 있는 방안은 있는 것일까? 

오스미 교수의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을 때 어느 의사가 SNS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일본 과학자의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소식을 전하는 지하철 TV뉴스 화면 바로 밑에는 ‘국내 최다시술 보톡스 필러 병원, 믿고 받아보세요’ 라는 광고가 붙어 있었다. 두 나라의 의료 상황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현실이 씁쓸했다.” 

그 의사가 SNS에 올린 글은 두 나라의 의료 상황과 의학 연구의 현재를 단적으로 그리고 사실대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의료선진국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실제 의료 수준이 앞선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임상의료일 뿐 기초의학을 들여다보면 실로 부끄러운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부실한 기초의학의 문제점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지만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기초의학 분야에 지원하는 연구자도 적을 뿐더러 오래도록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 오스미요시노리(大隅良典·71) 일본 도쿄공업대 명예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식을 대서특필한 일본신문.

한국 기초의학이 약한 이유 

필자의 주변에서도 기초의학을 시작했다가 중도에 포기한 연구자들이 꽤 많이 있다. 어느 기초의학 연구자는 그 이유에 대해 “우리나라는 연구개발비는 부족하지 않은데 연구개발비 중 인건비 비중이 낮은 것이 중도 이탈자가 많은 이유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평생토록 연구에 매진하는 이들이 경제적 고민을 하지 않고 연구에 전념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의미다. 

우리나라가 노벨 생리의학상과 거리가 먼 이유는 그 외에도 또 있다. 비과학적 사고에 익숙한 국민 정서다. 지하철에는 아토피, 천식 등 현대의학으로 완치가 어려운 난치병을 탕제 하나로 간단히 고칠 수 있다는 한의학 광고들이 줄줄이 붙어 있다.

산삼주사로 암을 치료한다는 한의원의 광고도 아무런 제재 없이 광고가 가능하다. 이런 한방치료제들은 효과와 안전성에 대해 검증 받은 사실이 없고 성분조차 밝혀지지 않았지만 정부는 제재하지 않는다. 적지 않은 한의사들은 ‘사기’ 수준의 광고로 절망에 빠진 환자들을 현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수 백 년 전통을 자랑하는 한약은 이미 안전성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검증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 이유로 인해 한약은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검증절차조차 면제받고 있다.

어느 대학병원의 연구에서 급성 간부전이 발병한 환자 다섯 중 한 사람이 한약이나 민간요법으로 쓰이는 한약재가 원인이 된 것으로 밝혀졌고, 한약 복용으로 인해 간부전이나 신부전에 빠져 사망하는 사례들이 줄을 이어도 정부의 입장은 바뀌지 않고 있다. 

국내 유일한 태아기형 유발 물질정보센터인 한국마더세이프 전문상담센터가 지난 2013년 3월 SCI논문인 <Planta Medica>에 등재한 ‘임신부의 감초 복용 후 임신 결과에 관한 연구’에서 “감초를 복용했던 군이 복용하지 않았던 군에 비해 사산율이 7.9배 높았고 이는 한국인 임신부의 평균사산율보다 13배 높은 것”이라고 밝혔지만 한의사들이 한약을 폄훼했다며 발끈했을 뿐 식약처는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언론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처럼 과학을 경시하는 나라에서 노벨 평화상이나 인문학 관련 수상자는 나올 수 있을지 몰라도, 자연과학계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가당한 일일까.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오스미 교수는 수상이 결정된 후 이렇게 말했다. “과학이 정말 사회에 도움이 되려면 100년 뒤가 돼야 할지 모른다. 미래를 내다보고 과학을 하나의 문화로 인정해주는 사회를 바란다”라고. 

우리는 그런 사회일까? 우리는 그런 국가인가? 미래를 내다보고 과학을 문화로 인정해주며 연구의 성과에 대해 인내를 갖고 기다려주는 나라인가? 외골수 기질을 가진 연구자가 평생 연구에 매달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국가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대한민국에서 노벨 생리의학상이 나올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노벨 생리의학상의 꿈을 실현시키는 해법은 오스미 교수의 말에 함축되어 담겨 있는데 지하철에서 바라보는 현실은 그 길이 멀게만 보인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3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빙산의일각 2016-11-02 17:09:24
일본은 외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직시하고 메이지유신을 통한 근대화를 이루어낸 것이 우리의 근대화와 다릅니다. 우리는 아직도 철저한 자기반성에 기반한 주도적인 근대화를 이루어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뭐든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을 뿐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반성도 없습니다.

dddd 2016-10-29 02:59:55
2016년에 노벨상을 타신 과학자 등등 모든 분들 축하드립니다. 평생동안 그들이 노력하여 인류에 공헌을 해왔기 때문에, 그 분들의 업적은 값을 매길수 없을 정도로 값진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이러한 공헌을 많이 하는 연구자가 있었으면 좋겠고, 이러한 연구자가 성장할만한 발판이 있으면 좋을것 같습니다.

gkdddd 2016-10-27 20:51:28
2016년에 노벨상을 타신 과학자 등등 모든 분들 축하드리고, 우리나라도 발전해서 노벨상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