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위해 청교도처럼 산 생애 - 김용식 金容植
축구를 위해 청교도처럼 산 생애 - 김용식 金容植
  • 미래한국
  • 승인 2002.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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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를 위해 청교도처럼 산 생애 - 김용식 金容植
한국축구의 대부이자 당대 최고의 선수로 평생 외길 축구인생을 살다 간 김용식(金容植, 1910~ 1985). 월드컵의 한 가운데서 되새겨보는 이름이다.황해도 신천 태생으로 신천보통학교 3학년(10살) 때 축구를 시작한 그는 빠른 발과 발재간으로 이름을 날렸고 최정민, 함흥철, 이회택, 김호 등 수많은 한국 축구의 역군들을 길러냈다. 워낙 기량이 특출해 일제 하에 조선 선수론 유일하게 36년 베를린올림픽에 참가했고 광복 후 48년 런던올림픽 땐 38세의 나이로 코치 겸 선수로 뛰었다. 52년 현역 은퇴 후 54년 스위스월드컵 대표팀 코치, 68년 양지팀, 69년 국가대표, 80년 할렐루야 감독을 역임하며 후진양성에 힘썼다. 46년엔 사비를 털어 영국축구협회 발행의 ‘축구규칙서’를 국내 최초로 번역, 보급시켰다. 자신의 회갑연에서조차 축구묘기를 선보였던 그는 펠레도 못 따를 개인기란 평을 들으며 일본, 미국 등지에 초청돼 축구 묘기 시범을 보였다. 또한 경신중 시절 단짝이자 당대 축구 맞수였던 채금석과 주색, 잡기를 멀리하고 40대까지 선수로 뛸 것이란 6가지 약속을 임종 때까지 지킬 만큼 축구를 위해 청교도적인 생활을 했다. 또 페어플레이를 중시한 그는 옥스퍼드 대학의 헌트 교수가 쓴 스포츠맨십에 관한 글 가운데 ‘축구는 신사들의 경기’라는 구절에 크게 감동받아 선수들이 훈련이나 경기에 임하기 전 한 번씩 암송하도록 교육시켰다.우리나라 축구 발전에 평생을 바친 그는 죽기 전 “내가 천국에 가서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보다 축구를 더 사랑했다고 책망 받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85년 작고 후 체육훈장 맹호장이 그에게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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