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개정 국면은 넘어간 지 오래다
헌법 개정 국면은 넘어간 지 오래다
  • 김광동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6.11.04 2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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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헌법 개정은 힘과 명분으로 하는 것이다. 대선 국면은 진입했고 불리한 상황이 이어지는 국면에서 헌법 개정이란 이슈를 제기한 것은 이미 궁색한 것이다.

지난 10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정부 차원에서 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지난 4년 가까이 정부를 맡아 운영해보니 5년 단임제 대통령으로서는 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갖고 국정을 이끌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면서 안정된 권력구조를 창출할 수 있도록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미래한국 편집위원

비록 개정 헌법의 방향과 내용을 구체화하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 박 대통령이 표명해왔고, 또 여·야간 합의 수준이 높은 ‘4년 중임(重任) 대통령제’로의 전환을 제안한 것으로 평가된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논란이 잦아드는 것과 함께 일정기간은 개헌 필요성과 개헌 방향에 대한 갑론을박적 정치 논의가 진행될 전망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박 대통령이 개헌 추진을 밝히는 그 순간부터 개헌 이슈는 이미 사장(死藏) 국면으로 빠져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박근혜 정부가 개헌을 추진할 의사가 있었다면 진즉 했어야 했다. 적어도 지난 4월 13일, 제19대 총선에서는 국민 의사를 물어봤어야 했다. 또 뒤늦게나마 개헌을 추진하려 했다면 공개적으로 개헌하겠다고 선언하기 전에 여야 정치세력과 지도자들의 의견을 구하고 반영시키는 절차를 거쳤어야 했다.

국민의사가 표출되는 총선 때는 개헌논의를 부정하다가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대패하고 연이어 제19대 대선 국면으로 급격히 치닫는 상황에서 개헌을 제기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모든 것은 타이밍(timing)이다. 진정성 여부와 상관없이 불리함을 모면하거나 역전(逆戰) 계기를 만들겠다는 것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헌법 개정은 힘과 명분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힘과 무슨 명분으로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대선 국면은 진입했고 불리한 상황이 이어지는 국면에서 헌법 개정이란 이슈를 제기한 것은 이미 궁색한 것이다. 임기 초반의 기회와 총선 기회까지 다 보낸 후에 정부 지지도가 추락하고 내년 대선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의 개헌이 추동될 가능성은 전무하다. 

명분이 분명하고, 추진세력의 힘이 강할 때도 될까, 말까 한 것이 개헌인데 비록 목적이 순수했더라도 위기에 봉착한 정부가 추진하는 개헌은 국면 전환용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대선으로 옮겨간 상황에서 개헌안을 만들어내고 국회의원 2/3의 동의를 얻어 국민투표에 부치는 개헌 일정이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개헌에 대한 국민적 에너지 결집 없고 대안 형성 안 돼 

헌법 개정은 국민적 에너지가 집결되는 과정이다. 그 에너지란 국민적 절박함과 간절함이다. 개헌에는 무엇보다 국민 대다수가 염원하는 간절함이 있어야 하고 그 간절함에 기반한 국민합의가 바로 헌법이다. 그런데 지금은 일반 국민이 느끼는 절박함과 간절함을 찾기 어렵다.

5공화국 헌법은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 이후, 1980년 전후에 전개된 국가혼란과 국정불안을 극복하자는 결집이었고, 6공화국 헌법은 1987년 전후로 대통령 직선제와 국민 기본권 확대라는 민주주의 성숙이라는 광범위한 열망이 공유된 결과였다.

그런 의미에서 현행 헌법의 문제라면 그건 대통령 5년 단임제의 폐해인데, 우리 사회에는 아직 그 폐해를 개선할 국민적 대안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권력구조인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혹은 4년 중임제가 갖는 대안의 장단점에 대한 국민적 합의 수준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 카드를 꺼낸 것은 국면전환용이거나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의도의 순수성 여부와 달리 평가는 그런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 또 의도와 달리 결국 역풍(逆風)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의 공고화만 가속화할 것이다.

특히, 유리한 고지에 올라 있다고 자평하는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은 개헌카드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이유를 붙여 거부할 것이다. 축구경기에서 1:0으로 이기고 있는 팀에게 룰(rule)을 바꿔 다시 하자 제안한들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는 것과 같은 논리다. 결국 최종적으로 룰을 결정짓는 것은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라는 것만 확인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기에 국면전환이 아니라 오히려 국정주도권 상실로 이어지며 박 대통령의 무기력과 레임덕만 가속화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다.

▲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87년 직선제 개헌을 이뤘다.

보수 정부의 가치와 정책 일관성, 안정성을 추구하면서 보수 정당 차기후보 찾아야

그렇다고 개헌카드로 개헌을 지지하는 제3세력 전체를 한 곳으로 모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한 방향으로 묶어세울 명확한 헌법 개정 방향이나 국민적 합의가 없기 때문에 개헌 지지세력은 주도력을 상실한 열등자들의 집단으로 전락하게 되면서 이미지 실추만 가속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명분과 힘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개헌 카드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제라도 개헌 관련 논의는 국회에 맡기고 박 대통령은 개헌 논의에서 하루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되지도 않을 헌법 개정을 붙잡고 있기보다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5년 임기의 단 하루도 차질 없이 국민이 명령한 임무를 수행하는 데 힘써야만 한다. 

개헌 추진보다는 4대 개혁의 추진이다. 엎질러진 물은 미련 없이 포기하고, 새로운 각오로 보수 정부가 추진하는 가치와 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만들어 나가면서 보수정당의 차기 대선 후보를 만들어내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반기문 총장 대망론에 기대해보자는 것이나, 룰을 바꿔 판을 흔들고 새판을 짜보겠다는 방식은 당당하지도 않고, 무책임한 것이자 요행(僥倖)을 바라는 것일 뿐이다. 결코 국민을 감동시킬 수도 없다. 

책임 있는 정당과 지도자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국민 앞에 당당해야 한다. 당당함이 있을 때만이 책임 있는 정치세력을 결집시킬 수 있고, 당당함이 있을 때만이 한국의 미래를 만들어갈 역량을 갖춘 대통령 후보를 제시할 수 있다. 결코 늦지 않았다. 국민은 당당한 정당과 당당한 대통령 후보를 기다리고 있다. 

반기문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만으로는 당당하지도 않고, 국민적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 이제라도 박 대통령과 보수세력은 모든 역량을 투여해 대한민국과 보수 가치를 지향할 역량 있는 몇몇의 후보를 국민 앞에 당당하게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2017년 상반기에는 이정현 당대표가 말한 대로 ‘슈퍼스타 K’형식으로 후보들 간에 펼치는 국가비전 제시와 아름다운 선의의 경쟁이란 검증과정을 통해 광범위한 국민 지지를 모으는 길을 열어내야 한다. 그것이 새누리당과 박 대통령에게 맡겨진 가장 절박한 책무 중의 하나이자, 당당함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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