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적 책임, 로맨스란 이름의 외도는 아닐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 로맨스란 이름의 외도는 아닐까
  • 홍준석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6.11.1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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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필자 또래 친구들은 대개 한·살 두 살 아기 아빠다. 아직 미혼인 난 ‘여성은 어떤 남자를 원할까?’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물론 여성의 이상형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런데 여성은 대개 ‘날 사랑하는 남자’를 원하는 것 같다. 필자는 남녀관계에 있어 돈, 직업, 외모 등 외형 조건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반면 진심 어린 사랑은 아주 중요하다. 

“사랑이 밥 먹여줘?” 라며 필자를 반대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사랑의 힘을 알아야 한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여자를 위해 기꺼이 돈을 번다. 돈에서 사랑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힘이 돈을 모은다. 본질은 언제나 사랑이다. 

기업은 경영에 충실해야. 자선활동은 공익재단의 몫 

본질을 보는 눈은 경영에도 중요하다. 근래 경영계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하 CSR : Corporate Social Responsibi lity)이 유행이다. 하지만 과연 이 운동이 경영의 본질과 맞을까? 

‘君君臣臣父父子子’ 
(왕은 왕 역할을, 신하는 신하 역할을, 아비는 아비 역할을, 자식은 자식 역할을)
이는 각자 자기 역할을 하라는 논어(論語)의 교훈이다. 공자의 이 정신은 밀턴 프리드먼의 주주이론(shareholder theory)과 같다. 

주주이론은 기업 역할은 ‘주주 이익 창출’이라고 설명한다. 기업이 경영을 잘 하면 사회 전체가 유익하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자선활동 같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소극적이다. 

CSR은 두 유형이 있다. 하나는 경영과 무관한 자선활동이고 다른 하나는 상품 제조가 직접 사회에 공헌하는 경우이다. 전자의 예로 전력 인프라 기업 GE의 인도네시아 의료 봉사가 있고, 후자의 예로 테슬라의 친환경 전기차 생산이 있다. 

후자라면 괜찮다. 상품 유통으로 인한 공익 창출은 윈윈(win-win)이다. 그러나 상품과 무관한 자선활동이 지나치면 부작용이 생긴다. 

CSR 찬성자들은 기업의 자선활동이 기업의 지속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또 자선활동의 대중 홍보 효과 역시 큰 실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실제로 CSR은 득보다 실이 크다. 자선활동은 어디까지나 자산의 경영 외 지출이다. 이는 상품 질의 하락을 가져온다. 결국 주주들은 경쟁력 없는 기업에 등을 돌린다. 그러면 결국 모두가 손해이다. 게다가 CSR은 현실성이 없다. 상당수 기업은 CSR을 할 정도로 건실치 않다. 중소기업은 특히 그렇다. 경영 정상화가 급한 기업에게 자선활동을 강요할 순 없다. 

특히 한국 기업 환경은 CSR과 조화가 어렵다. 한국 대기업은 경쟁력을 잃고도 계속 존속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대기업과 유착한 정부가 시장의 징벌 기능을 막기 때문이다. 이 환경에서 CSR 도입은 부실 대기업에 날개를 단다. 왜냐하면 대기업이 CSR을 이용해 ‘국민 기업’ 이미지를 만들면 정경유착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상생(相生)’의 CSR은 오히려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 있다. 

부디 기업은 자선을 공익재단에 맡기고 성실 경영을 하라! 경영부터 잘 하면 자선의 기회는 저절로 온다. 남녀관계가 돈보다 사랑이 본질이듯, 경영은 빈민촌 구제보다 좋은 상품 생산이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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