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山城)이 지키는 무심(無心) - 청주(?州)
산성(山城)이 지키는 무심(無心) - 청주(?州)
  • 미래한국
  • 승인 2003.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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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익의 국토기행(30)
바다로 가는 길이 멀어도 개천은 말없이 도심을 남북으로 흐른다. 흐르는 물을 무심타 말고, 사람이 마음을 비워야 한다니까. 그래야 세상이 또한 맑아질 것이라니까. 경부고속도로 나들목에서 나와 청주시내로 들어가는 ‘가로수길’은 가장 운치가 뛰어난 도시 진입로 중의 하나다. 하늘을 덮고 이어지는 플라타너스 터널을 달리는 10여분이면, 여간 조급한 마음도 넉넉히 가라앉는다. 호우주의보가 무색하게 하늘은 높푸르다. 슈퍼컴까지 갖추고 중국, 러시아와도 정보를 교류한다는 기상청의 예보가 틀리고도 이렇게 기분이 썩 좋은 것은, 그것이 좀처럼 빗나가지 않는 ‘불행의 예고’였기 때문일 거다. 고맙게도 이렇게 좋은 날을 받은 행운은 분명히 청명한 도시 청주의 음덕일 게다. 그러나 쾌청한 느낌은 시가지 입구에서 예고 없이 구정물을 뒤집어쓰고 만다. 마녀가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마법의 성 같은, 아니 짙은 화장을 한 콜걸들이 저열한 웃음을 흘리고 나설 것 같은, 그런 메스꺼운 건물들이 네거리에 떡하니 버티고 나선 것이다. 여기서 처음 보는 건 아니지만 속이 뒤집힌다. 중세의 궁성이든, 제국주의 관청이든, 게임 속의 가상 건물이든, 닥치는 대로 대충대충 베끼고 덕지덕지 치장한 저 건물들을 어쩌나. 그리스, 로마의 신전에서, 프랑스의 샤또(chateau)에서, 독일의 슐로쓰(Schloss)와 영국의 성채(castle)에서, 이들 치기어린 아류를 보고 뭐라 할까? 우리 고궁과 사찰, 종택과 정자를 지은 이들에겐 또 뭐라 설명을 할 수 있나? 아니 당장 뒷자리에 탄 제자들에겐 무어라 둘러대야 하는가?성현은 먼저 나무라고 후에 칭찬하라고 하셨지만, 나는 아름다움을 노래하기에 앞서 추함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굳이 청주에서 이 얘기를 꺼내는 것은, 그나마 믿는 곳의 작은 징조를 지적하여, 다른 곳의 큰 잘못을 경계하고자 함이다. 퇴폐가 염치도 없이 여기까지 들어왔구나. 퇴락한 유흥가야 도시마다 있다고 하지만, 최고로 접근성이 좋은 장소에 공식부문을 몰아내고 버젓이… 세상이 시끄러울 때에도 통금이 없었던 도시, 교통사고가 적은 도시, 경상도와 전라도의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충청도의 도청소재지가 아니더냐? 양반도시, 교육도시, 사관학교가 있는 도시, 그래서 우리 품행의 모범이 될 만한 이 도시에까지 가요주점, 나이트클럽과 모텔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돈이 갈 데를 모르나, 돈 가진 이가 할 짓이 없나? 염치를 벗어던진 쾌락의 추구가 결국 인간을 파괴하고 말 것이라더니, 성까지 상품화되면 자본주의가 막다른 골목에 든 것이라더니. 너마저, 아, 청주 너마저!긴 생각에 비해 사실 언짢은 장면은 짧았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거리는 금방 밝고 깨끗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눈에 보이는 경관이 안정되자, 마음도 다시 평정을 되찾는다. 나그네가 이러한데, 하물며 나날이 여기 몸담아 사는 사람들이야 어떠하겠는가? 플라타너스 가지를 둥친 모양이 모질어 보인다. 그러나 그리하여 열심히 살아가는 거리의 모습을 드러내니 고맙기도 하다. 인구 60만의 오래된 행정중심도시다. 종합대학과 박물관, 연구소들이 어울려 문화와 예술이 있는 거리를 만들고 있고 도로, 철도 교통이 사통팔달로 전국을 연결하는 매듭에 국제공항까지 갖추었다. 도시의 적정 규모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나는 청주를 둘러보도록 권한 적이 있다.“꽃다운 풀향기 신발에 스며들고활짝 갠 풍광 싱그럽기도 하여라들꽃마다 벌이 와 꽃술을 따 물었고살진 고사리 비갠 뒤 더욱 향긋해웅장도 하여라 아득히 펼쳐진 산하의기도 드높구나 산성마루 높이 오르니날이 저문들 대수랴 보고 또 본다네내일이면 곧 남방의 나그네일테니”상당산성(上黨山城) 입구에 서 있는 梅月堂金時習詩碑는 그의 한시 ‘遊山城(산성에 노닐다)’을 한글로 옮겨 놓았다. 나는 상당산성의 경치에 더 보탤 말을 찾지 못한다. 그것도 기꺼이. 작은 풀꽃의 향기에서 웅장한 강산 줄기의 기개까지, 깊고 넓은 사상의 샘물로 씻어 절세의 문장으로 터져 나오면, 그것은 새로운 경관을 창조한다. 배신한 시대에 맞서 방랑으로 절개를 지켰던 천재 시인의 노래를 타고 옛 산성을 둘러보니, 뜻이 미치든 못 미치든 그 호강이 얼마냐.널찍한 잔디밭 건너로 쳐다보니 산성이 활처럼 둘러친 가운데 성문(控南門)이 당당하다. 산성이 웅장한 것은 흰 구름 띄운 높푸른 하늘을 이고 있기 때문이다. 산성이 받치고 있어 하늘이 모양을 갖추었고, 하늘이 둘러쳐 산성이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16mm 광각렌즈가 이리도 고마운 것은 참 오랜만이다. 카메라 파인더를 통해 본 하늘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누나. 이 기꺼운 착각은 콘크리트 벽에 갇혀 지내던 내가 그 큰 하늘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일 게다.성루(控雀樓)에 올라 내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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