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琅代史 전환점이 됐던 ‘西安事變’ 주역
中國琅代史 전환점이 됐던 ‘西安事變’ 주역
  • 미래한국
  • 승인 2002.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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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學良의 日記가 공개되다지난 한 周동안 홍콩 대만 중국의 언론은 온통 두 인물에 관한 뉴스로 채워졌다. 하나는 1940년대 중국현대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됐던 西安事變의 주인공 張學良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 북경대학경제연수센타의 소장으로 있는 林毅?에 관한 것이다.최근 콜럼비아대학의 ‘張學良문헌자료보존실’이 마침내 張이 남긴 역사적인 문헌자료의 일부를 정리해서 발표했고, 홍콩 대만 중국의 지식인 사회에는 이들 자료가 공개되면서 중국현대사의 이면에 깊이 은폐된 ‘비밀’들이 드러나지 않을까하는 호기심때문에 조용한 파문이 일고 있다.일본의 만주침략이 시작되면서 중국사회는 抗日이 먼저냐, 아니면 滅共이 먼저냐를 놓고 국론이 분열돼 있었다. 蔣介石은 만주를 잃더라도 우선 멸공공작을 추진해야 판단했다. 당시 약세에 있던 중공은 蔣과 연합해서 抗日전선을 펴고, 그 속에서 세력확장을 시도했다. 1936년 12월 蔣介石이 西安을 방문했을 때, 張學良은 蔣을 납치감금하고 抗日위해 國-共이 연합할 것을 강요했다. 蔣은 결국 부득이 항일을 위해 중공과 타협하고 항일연합전선을 펼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그 西安事變이었다. 이것은 중국현대사의 커다란 전환점이 됐고, 張學良의 이런 행위가 과연 자신의 판단에 따른 것인가 아니면 그 배후에 敎唆者가 있는가 하는 점이 지금까지 커다란 의문으로 남아있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張의 행동에는 배후가 있다는 억측을 믿어왔다. 그 후, 蔣介石은 張을 대만까지 데려와 연금상태에서 한 평생을 보내도록 했는데, 張은 살아있는 동안 무려 15권의 일기, 5천건의 서신, 수 많은 구술자료와 인터뷰 기록을 남겼다.張의 기록에는 중국 현대사의 핵심적인 내용이 들어있는데, 張은 이들 자료를 ‘사후의 공개’를 조건으로 콜럼비아대학에 보존했고, 마침내 그 은폐된 역사의 한 장면들이 공개된 것이다. 공개된 자료에 대해서 결론부터 말한다면, 張은 西安사변을 일으킨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른 것임을 밝히고 있다. 배후나 敎唆者가 없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에도 張은 누차 이런 질문을 받고, 조국에 대한 ‘충정’에서 나온 행동임을 강조한바 있다. 관심을 끄는 것은 당시 상황을 보는 張의 視角과, 역사적인 인물들에 대한 張의 평가다. 우선 蔣介石에 대한 張의 평가는 억갈린다. 공개적인 기록에서는 蔣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칭송하면서도 비공식적인 구술자료에서 蔣은 袁世凱처럼 황제를 꿈꾸는 낡은 사상을 가진 인물이라고 혹평하고 있다.張은 蔣介石이 대만에 와서도 별로 남긴 업적이 없다고 평가했고. 심지어 蔣介石과 蔣經國의 커다란 차이는 人才의 등용에 있었는데, 蔣介石은 “좋은 인재들을 노예처럼”부린데 비해서 蔣經國은 “노예같은 자들을 높은 인재로 등용해 썼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張은 宋美齡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했다. 宋은 매우 일처리가 능란하며, 특히 미국문제에 대해서는 마치 손금을 보듯이 자세히 알고 있다고 평가했다. 張은 평생 부친인 張作霖, 蔣介石, 周?來 세 사람을 존경했다. 蔣介石에 대해서는 속마음과는 전혀 다른 것을 ‘공식’적으로 거론한 것 뿐이지만, 周?來에 대해서는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으로 생각했다. (亞?週刊2002. 6/17~6/23, p.48)兩岸의 비극, 林毅? 사건중국인 사회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亞?週刊’은 지난주 표지인물로 林毅?를 내세웠다. 林의 비극적인 ‘처지’가 오늘의 兩岸관계를 한층 어둡게 하고 있는 배경이기 때문이다. 林은 대만 宜蘭縣 출신 토박이 대만사람이다. 林은 대만대학 농업공정학과 재학중 육군군관학교 입학해서 생도중대장을 하다가 결혼한 다음, 당시로서는 입학이 쉽지않은 국립정치대학 기업관리연구소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林은 다시 군으로 돌아가 대위로서 최전선 金門島의 중대장으로 근무했다. 여기서 문제가 일어났다. 林은 23년전, 1979년 5월 滿潮때를 이용해서 대륙 ?門으로 헤엄쳐 넌너갔고, 1982년 북경대학에서 정치경제학석사를 한 다음, 1986년 시카고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 1994년에는 북경대학 경제연구소장이 되었다. 그러나 지난 5월 9일 그의 부친이 죽자 문제가불거져나왔다. 林이 고향으로 돌아가 부친의 장례를 지내려 했지만, 대만은 林을 ‘叛徒’로 규정했다. 군복무시에 조국을 버리고 대륙으로 밀항한 것은 일종의 배신과 ‘반란’행동이란 것이다. 林은 대륙으로 건너간 것을 조국에 대한 ‘열정’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만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陳 총통를 포함한 많은 民進黨(집권당)의원들이 林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는 있지만, 국방부장관은 여전히 林에게 ‘叛徒’죄를 묻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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