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미국’ 건설할 강한 지도자의 등장
‘위대한 미국’ 건설할 강한 지도자의 등장
  •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 승인 2016.11.30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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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박사의 전략이야기] 2016 미국대선 관전평 (下)

트럼프는 미국의 외교는 힘에 기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군사력을 막강하게 만들어 감히 어떤 나라도 미국에게 덤벼들 수 없고, 

그래서 사용하지 않아도 될 군사력을 건설하겠다고 호언했다.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 출마를 선언했을 당시 그가 공화당 후보가 될 것이라고 믿는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다. 7월 하순 트럼프 특집판을 출간한 타임지는 제목을 ‘Trump: The Rule Breaker(트럼프: 규칙을 깨는 인물)’이라고 붙였다.

미국 정치의 새로운 규칙을 모르면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고,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된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면 그 이후 힐러리 클린턴과의 본선도 설명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언론들은 예측이 틀렸고 톡톡히 망신당한 것이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쟁점이 되었던 이슈는 인종, 지역, 종교, 성적 경향(동성애 여부) 등이었다. 그러나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사회 계급(Social Class) 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미국은 언제라도 상품과 자원이 풍부한 나라였고 미국 시민 중 가난한 사람들이라고해도 그들의 삶은 여전히 세계 다른 어떤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이 유복했다. 그런데 이것에 문제가 생겼다. 절대적 빈곤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 혹은 소외 또는 정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전통적 공업지역 백인 실업자들의 불만 

미국은 세계화를 주도한 나라이며 세계화 덕택에 미국과 세계 모두가 과거보다 더 풍요로워진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그 풍요의 과실이 골고루 배분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세계화는 결국 국제 분업을 의미하는데 세계화를 통해 대다수 국민의 삶이 나아지기는 하지만 일부 그렇지 못한 계층이 생길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세계화 시대에 낙후될 수 있는 계층은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미시간으로 이어지는 공업지대에 살고 있던 제조업 노동자들이었다. 전통적인 미국의 공업 지역이자 제조업 중심지였던 이곳은 중국 및 제3세계의 값싼 노동력을 상대할 수 없었다. 

일자리와 공장들이 중국으로 옮겨가 녹슨 쇳덩어리 공장 시설물들이 흉물스럽게 남아 있는 폐허가 되고 실업자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미국 사람들은 펜실베이니아에서 미시간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공업지대를 녹슨 벨트(Rust Belt)라고 자조적으로 부른다. 이곳의 노동자들 특히 고졸 이하의 학력을 가진 백인 노동자들이 분노했다. 그리고 지난 10년 이상 미국 정부는 이들의 불만과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 

저학력 백인 노동자들은 숫자상으로 미국 인구 중 최대의 집단이다. 그러나 이들은 백인 이라는 태생적으로 우월한 지위 때문에 말도 못하고 살았다. 다수이지만 침묵을 지키는 사람들 즉 Silent Majority로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아니 소리를 지르는 대신 투표장으로 달려갔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핵심 용어(Key Word)는 ‘분노’(anger)였다. 힐러리 클린턴은 이들에게 “나는 여러분의 분노를 잘 알고 있습니다”라며 접근했고 도널드 트럼프는 “나는 분노한 여러분들 중 한명입니다”라며 선거전을 이끌어갔다. 

트럼프는 저학력 백인 노동자들의 분노를 대변했을 뿐 아니라 마치 그들 중 한명인 것처럼 행동했다. 트럼프의 행동을 그 표피만 보고 본질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를 양아치, 망나니로 봤다. 트럼프는 그들을 조롱했을 것이다. 분노한 시민들은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미국의 대선에서 민주당이 미시간과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필패를 의미한다. 이 두 주는 공업지대이며 노조의 지역이며 당연히 민주당의 아성이다. 트럼프는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인 이들 공업지대의 불만스러운 백인 노동자를 공략, 필승의 기반을 굳혀가고 있었던 것이다. 트럼프는 오하이오까지 포함한 3대 Rust Belt 주에서 승리를 거머쥐고 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극단적 좌경-자유화에 미국인들 반발 

누가 뭐라고 해도 미국은 기독교 국가다. 미국 땅을 처음 밟은 유럽 출신 이민자들과 청교도들은 오랜 항해 끝에 살아남아 상륙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감사하기 위해 상륙 지점에 십자가부터 꽂았던 사람들이다. 

성경책에 대한 심오한 지식과 이해의 유무와 관계없이 습관적으로 주일에는 교회를 가며 성경책에 있는 모든 말들을 문자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사는 나라도 미국이다. 그런 미국은 지금 대단히 많이 변질되었다.

한 예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말하면 안 된다. 종교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TV 앵커가 12월 24일 저녁 뉴스 시간에 “Merry Christmas!”라고 말하면 안 되는 나라가 된 것이다. 

필자는 지난 7월 하순부터 8월 초까지 미국 필라델피아를 방문했었는데 하루는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 차도르를 뒤집어쓴 얼굴이 가무잡잡한 여인이 “트럼프는 바보 같은 놈이에요!” (Trump is an Idiot!) 라고 빽 소리를 지른 후 “이 버스에 타고 있는 승객 누구도 트럼프 보다는 머리가 좋을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백인 승객들도 몇 있었지만 모두들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아무도 “닥쳐!”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만약 어떤 백인이 그 회교도 여인에게 입 닥치라고 소리 지른다며 그 백인이 인종차별, 종교 차별로 벌 받게 되어 있는 구조라는 사실을. 며칠 후 백인 여성 TV 아나운서가 자신은 백인이기 때문에 해고당했다며 울먹거리는 모습을 봤다.   

회교도 신자인 택배사원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배달해야 할 물품 중에 술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교리에 위배된다고 배달을 거부했다. 택배회사 사장이 그를 해고했고 미국은 해고당한 아랍계 인물에게 융숭한 보상을 해줬고, 택배회사 사장은 징벌적인 벌금을 부과 받았다. 

미국은 이제 펄럭이는 꼴이 기분 나쁘다며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해도 되는 나라가 되었고 이대로 상황이 진전된다면 남자와 여자가 하나의 화장실을 쓰게 될 나라가 될지도 모를 판이다. 게이, 레즈비언, 성 전환자, 양성애자 등이 모두 동등한 인격으로 대우받아야 하기 때문에 화장실도 구분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이 미국의 다양성과 자유의 진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내가 대통령이 되면 마음껏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칠 수 있게 해 주겠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책은 성경책’이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대결이었다. 45대 미국 대통령은 여러 명의 미국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다. 

대법관들이 연로하기 때문에 새로 임명되어야 할 공석이 여러 자리 생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미국의 대법원이 극도의 진보주의자들로 구성될 것이냐 전통적 미국식 가치를 옹호하는 보수주의자들로 구성될 것이냐의 여부도 결정하는 선거였다.    

트럼프의 미국은 마치 레이건 대통령 당시처럼 보다 미국적인 미국으로 미국이라는 국가와 사회의 진행 방향을 바꿀 것이다. 강한 미국, 부유한 미국, 그리고 세계의 도덕적 모범이 되는 미국을 다시 건설하고자 할 것이다. 트럼프 미국의 모토는 그가 선거전 내내 사용했던 ‘Make America Great Again!’이 될 것이다. 

▲ 오바마의 미국은 어느 면으로 봐도 과거 막강하던 미국의 모습은 아니었다. 미국 국민들은 다시 막강한 미국을 원했다. 트럼프는 바로 이 같은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인물이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한 나라로  

오바마의 미국은 어느 면에서 봐도 과거 막강하던 미국의 모습은 아니었다. 트럼프의 말을 빌리면 미국은 누구에 의해서도 존경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무시당하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미국인들은 이 같은 처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국이 세계 여러 나라들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대는 것도 원치 않지만 그렇다고 오바마의 말대로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뒤에서 이끈다(lead behind)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이끌기 위해서는 앞에 서야지 어떻게 뒤에서 이끌 수 있다는 말인가? 다른 나라의 수상 혹은 왕에게 머리를 90도 각도로 굽혀 절하는 오바마의 모습은 미국 국민들을 좌절하게 했고 분노하게 했다. 

미국 국민들은 다시 막강한 미국을 원했다. 막강한 미국은 미국의 국력뿐 아니라 막강한 지도자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다. 이번 미국 대선의 또 다른 키워드는 ‘강한 지도자’였다. 여기서 트럼프는 힐러리를 압도할 수 있었다.

미국 사람들은 개가 개를 잡아먹는 듯 처절한 이전투구의 세계에서 미국을 이끄는 지도자가 더 크고 더 잔인해보이기를(bigger and meaner) 원했던 것이다. 트럼프는 바로 이 같은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인물이었다. 

트럼프는 1980년 레이건 대통령이 사용했던 구호를 다시 채용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말은 국민들의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미국 국민들을 향해 좌절된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했다.

그는 미국의 외교는 힘에 기반을 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미국의 군사력을 막강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에 감히 어떤 나라도 미국에게 덤벼들 수 없고, 그래서 사용하지 않아도 될 군사력을 건설하겠다고 호언했다. 

트럼프는 현재 약 280척 수준인 미국 해군을 350척으로 대폭 증대할 것이라고 말했고 군사력 증강을 위해 돈을 쓰는 일은 올바른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한줌도 못되는 IS 테러리스트들에게 쩔쩔매는 오바마를 비난하며 자신은 IS를 한 녀석도 남김없이 소탕해 버리겠다고 호언했다. 

미국은 귀족이 없는 나라 

2016년 미국 대선의 특징 중 하나는 정치 문외한과 정치꾼의 싸움이었다는 사실이다. 정치적 직책으로는 통반장조차 못 해본 트럼프와 대통령 빼고는 다해 본 힐러리 클린턴의 싸움이었다. 트럼프는 돈은 많지만 귀족으로 치부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힐러리는 귀족 중의 귀족이었다. 미국은 원래 평민의 나라로 출발했다. 그런데 한 200여년 지나다 보니 미국에도 귀족 비슷한 것이 생겼다. 별로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이 귀족인 것처럼 행동하며 워싱턴을 거들먹거리는 모습을 본 국민들은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어떻게 대통령의 아들이자 동생인 사람인 젭 부시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고, 어떻게 대통령의 부인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나라가 되었는가에 대해 경악했다. 

국민들이 듣기 좋은 그럴듯한 말보다는 투박하지만 실제로는 맞는 말을 하는 트럼프가 오히려 진정성이 있는 지도자로 보였다. 미국 국민들은 조용히 있다가 투표하는 날 달려 나가  트럼프에게 한 표를 던졌다. 이 같은 제반 과정을 통해 미국 국민들은 지난 수 십 년 동안 지속되어 오던 국가의 진행 방향을 바꿔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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