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적 가치를 잃어버린 ‘문화융성’과 측근비리
이념적 가치를 잃어버린 ‘문화융성’과 측근비리
  • 조희문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6.11.30 07: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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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경제적 관점에 매몰된 문화정책은 결국 이권을 둘러싼 비리를 낳았다.

진정한 문화정책은 문화예술의 가치를 확인하는 것이어야 한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은 최근 주목받고 있는 단체들이다. 대통령의 비선 논란으로 인한 비난 여론의 중심에 선 최순실 씨와 관련해 설립 과정부터 구상하고 있는 사업에 이르기까지 의혹의 대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 조희문 미래한국 편집위원·중앙대 영화학 박사·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문화 분야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 미르재단 홈페이지에는 재단 설립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재단법인미르는 한국문화의 원형을 발굴하고 한국문화예술 브랜드를 확립하기 위해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고, 문화예술인재를 육성하는 문화전문 재단으로, 한국 16개 대기업이 뜻을 모아 2015년 10월 설립했습니다. 나아가서는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을 통한 통일문화기반을 조성하고 한국문화의 고유성을 확립하여 국격을 높이고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문화외교에 앞장서고자 합니다.’

관련 사업으로는 문화연구·콘텐츠개발, 문화 저변 구축 및 확산, 문화외교/통일기반사업 마련을 제시하고 있다. 각 영역을 커버하는 구체적인 사업들도 함께 나열하고 있다. 재단의 설립과정과 목표, 활동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박근혜 정부의 문화정책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에 전문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재단법인 미르는 항성과 행성·위성이 공존하는 태양계처럼 한국문화가 분야, 장르, 세대, 공간, 국경을 넘나들며 문화적 공전을 지속할 수 있는 문화계(界,system)을 형성하고, 주제별 사업을 통해 한국문화 본연의 깊이와 가치로 세계와 공감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한국문화에 대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아주 전통적인 것 또는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문화사업을 떠올립니다. 재단법인 미르는 전통문화와 문화산업, 그 기저에 존재하는 한국문화의 원형과 정신을 되찾고 동시대적 가치를 지닌 문화로 재창조하여 급격한 근대화 및 산업화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문화적 공백기를 메우고자 합니다.

문화를 국정 아젠다로 삼았던 역대 정부들 

또한 일방적인 해외진출, 단순한 문화전파·전달, 단발성 사업에 그치는 과거의 문화세계화 방식과는 달리 한국인과 타국인의 삶을 존중하는 상호적 문호외교로 서로의 문화가 융합하여 공생할 수 있는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재단법인 미르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문화를 국정 차원의 어젠다로 설정한 것은 김대중 정부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의 김영삼 정부나 박정희 정부에서도 문화정책이 있었고, 멀리는 일제 강점기 시절에도 문화가 정책의 대상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때의 문화는 개별 단위사업 중심의 관리 대상이라는 성격이 짙었다. 총체적 관점에서 문화예술의 의미나 가치를 설정하고 정책운용을 한 것이라기보다는 규제와 통제 중심의 정책이 이어졌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정부 부처 단위별로 그해의 시책이 발표되고 그에 따라 행정을 집행하는 방식이다.

영화의 경우, 올해는 몇 편의 영화 수입을 허용하고, 수입 자격에 대해서는 어떤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식이었다. 연간 한국영화 제작 편수에 대해서도 가이드라인을 정해서 영화사별로 제작 편수를 할당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그런 단계에서 김대중 정부는 ‘새문화’ 개념을 들고 나왔다. 20세기가 끝나고 새로운 천년(뉴 밀레니엄)을 시작하는 전환기이기도 했고,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여야간 정권교체를 통해 등장한 정부라는 자부심까지 더하여 새로운 정부, 새로운 세기를 만들겠다는 의욕으로 ‘새로운 문화정책’를 설정한 것이다.

지식정보사회화, 글로벌화. 개방화, 시민사회의 성숙이라는 새로운 문화환경이 확산되는 변화에 맞추기라도 하듯 문화를 중요한 주제로 설정한 것이다. ‘문화의 힘으로 이루는 제2의 건국’을 하겠다는 슬로건은 인식의 반전이라고 할 만했다.

그러나 정권 교체에 따른 문화계 지형도가 바뀐 것과 지원 대상이 달라진 것이 크게 달라졌을 뿐 품격 있는 문화 현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까지 소수처럼 보였던 운동 단체들이 문화예술 관련 기관의 장으로 임명되었고, 필요하면 새로운 체제의 기관을 만드는 일도 생기기 시작했다.

문예진흥원, 영화진흥공사, 콘텐츠진흥원, 영상자료원 등 문화예술 관련 행정을 맡고 있는 기관의 장이 모두 친 정권 계열로 바뀌었고, 각 기관이 맡고 있는 지원 사업도 대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바뀐 데다 문화관광부 장관이 정권의 이념을 대변하는 인물로 채워진 상황에서 그 하부의 변화는 예정된 수순이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는 거기서 더 멀리 나아갔다. 문화예술을 사회변혁의 핵심 수단으로 인식하며 문화의 역할을 실행하려는 작업을 벌였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지역균형발전’ ‘경제민주주의’ ‘문화민주주의’ 같은 사업과 개념들은 좌파적 사회주의 이념을 바탕에 둔 ‘대한민국 개조’ 사업이나 다름없었다.

정치체제는 물론이고 경제, 외교, 문화예술 분야 가릴 것 없이 전방위적으로 기존의 이념과 가치, 체제를 뒤집어버리고 좌파 이념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성장’보다는 ‘분배’가 훨씬 더 중요한 가치처럼 앞세웠고, 그에 따라 기업에 대한 공격, 무조건적인 분배 제도의 도입 같은 변화가 사회 각 분야에 적용되었다. 입시제도나 교육과정, 내용이 바뀌고, 무상급식이나 복지 같은 분야를 혁명적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문화예술은 그것을 위한 중요한 분야이자 수단이었다.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체성, 가치를 바꾸려는 시도를 문화예술 각 분야의 활동을 통해 확산하려 한 것이다. 당장의 변화도 컸지만 성장하는 세대들에게 전혀 다른 가치를 심어주고 교육한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세뇌작업이나 다름없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못박기’라는 말이 여러 곳에서 나왔지만 젊은 세대들에게 대한민국의 가치와 자긍심을 부정하고 반 대한민국적 인식을 가르치려했다는 점에서 대못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독침이었다.

▲ 결국 문화와 예술은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적 성과 실현을 위한 정책 대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 TV조선 뉴스영상 캡처

문화예술 정책은 가치를 확인하는 것이어야 

문화예술의 가치보다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역대 정권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문화예술의 효용을 동원한 경우라고 할 것이다.

이에 비해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비해서는 현저하게 인식이 약화되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실용주의’라는 구호를 설정했지만 ‘실용’은 이념이나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기능을 더 우선한다는 생각을 반영한다.

경제만 살리면 다른 모든 분야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며 문화·예술은 공연이나 전시회 같은 행사만으로 충분하지 않느냐는 정도의 인식이 아니었던가 싶을 정도로 문화·예술 정책은 허술했다. 역점 사업 중의 하나로 추진했던 4대강 사업에 비해 문화·예술 분야의 변화와 성과는 이렇다 할 것이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을 핵심적인 국정목표로 제시했다. 문화 부문을 국정목표로 설정하면서 다른 분야들과 대등한 수준으로 이끌었다는 점에서는 획기적인 변화였다고 할 수 있지만 과연 ‘문화융성’의 의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는 궁금한 과제였다.

이후 전개되는 현상은 산업적 측면에서 문화예술분야의 가치와 기능을 정보·통신 분야와 융합하는 ICT 사업을 육성하거나 지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K-팝, K-푸드, K-스포츠 같은 K-를 앞세운 ‘한류’는 문화융성을 상징하는 성과처럼 포장되었다.

‘문화융성위원회’를 설치하고, 2014년 1월부터 문화융성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일반인들이 보다 쉽게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한다며 매달 마지막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한 것은 박근혜 정부의 문화정책의 구체적인 표현이자 활동이었다.

결국 문화와 예술은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적 성과를 실현하려는 정책 대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야심적인 지원정책으로 제시한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은 현 정부의 문화정책이 사업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올해 예산만 903억 원이고, 내년 예산은 1278억 원으로 높여 잡았다.

그러나 엄밀하게 보면 지금의 ‘한류’는 정부 주도의 육성 성과가 아니라 민간 영역에서 이룬 것이다. 민간이 이룬 성과에 정부가 업혀가는 형상이다.

‘문화융성’이 결국 ICT 사업의 성장을 목표로 한 단위사업의 성격을 띠면서 가시적인 성과를 향해 움직인 것이고, 대통령과 가까운 측근이 주도하는 특혜 사업으로 변질한 것이다.

문화사업과 관련해 미르재단이 핵심부서인 것처럼 드러나고, 문화융성위원회 조차 특정 개인을 위한 들러리가 되다시피 한 것은 가치를 배제한 기능적 사업이 어떤 결과로 연결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파는 당장의 효과와 성과를 향해 달려가는 것에 대한 시비가 드러날 가능성이 높고 좌파는 집권기에 심어놓은 이념의 씨앗이 발아하는 것을 즐기게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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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재단 빨리 문 닫게 해라 2017-01-09 10:23:56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을 위해 문체부 예산이 2배로 늘고, 그렇게 는 돈의 대부분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으로 빠져 나가게 한 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특히 K스포츠 재단은 향후 정확히 100 년간 국고를 앉아서 고스란히 빼먹을 계획이 인준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이 이렇게 아직 건재하다는 건 심각하고도 중대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