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크리스마스 전쟁’
트럼프의 ‘크리스마스 전쟁’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6.12.14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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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나는 크리스마스를 보고 싶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보고 싶다니까요.” 

도널드 트럼프는 막바지 후보 유세 연설에서 그렇게 외쳤다. “요즘엔 백화점에 가면 크리스마스를 볼 수 없습니다. 대신 해피 홀리데이라고 합니다. 나는 아내에게 그런 백화점에는 가지 말라고 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크리스마스가 해피 홀리데이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트럼프의 이른바 ‘10일간의 크리스마스 전쟁’은 수많은 미국인들의 마음에 ‘미국적인 것(The American Thing)’을 불러 일으켰다. 이른바 민주당의 노선이었던 ‘정치적 모범답안’이라는 PC (Political Correctness), 그 가운데서도 민주당이 종교적 차별을 금지해서 미국의 전통인 크리스마스를 단순한 명절로 만든 것에 대해 트럼프의 연설은 미국인들의 마음 속에 ‘위대한 미국’을 잃어 버렸다는 자괴감과 함께 레이건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트럼프 ‘불구가 된 미국’을 주장하다 

미국의 보수주의 매체 폭스뉴스는 트럼프 당선에 ‘이제 메리 크리스마스를 되찾았다’라고 트위터로 메시지를 띄웠다. 이 사건은 미국 사회에 근본적인 가치 투쟁이 정치권에서 일어날 것임을 예고했다. 트럼프는 이러한 자기 조국에 대해 ‘불구가 된 미국(Crippled America)’이라고 표현했다. 

<정치적인 것의 귀환>의 저자 상탈무페는 그의 저서에서 심각한 질문을 제기한다. 과거 미소 냉전이 공산주의 소련의 몰락으로 끝나고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을 쓰면서 자본주의의 승리를 호언했을 때, 왜 미국은 이슬람과 더러운 전쟁에 빠져들게 되었느냐는 것이었다.

그 결과 9·11사태는 과거 소련과의 냉전보다 더 미국인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으며 세계질서는 더 불투명해졌다는 것이 상탈무페의 분석이었다. 상탈무페는 그 답을 ‘정치란 적과 동지의 질서’라고 했던 독일 보수주의 정치철학자 칼 슈미트의 주권론으로부터 빌려왔다. 

국가에게는 항상 적의 존재가 등장하며 그렇기에 ‘역사의 종말’과 같은 현상은 없다는 것이다. 심판은 역사의 주관자인 창조주의 것이다.  칼 슈미트의 이러한 <정치신학>은 한 국가의 주권이란 인간의 합리적, 철학적 이성에 의해 창출된 것이 아니라, 종교적 신념에 의해 창출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정치적 질서란 다름 아닌 ‘선과 악의 내전’을 의미하며 메시아의 심판의 날을 준비하는 것과 같다. 우리에게는 ‘선한 싸움’을 통해 종말의 때를 늦춰야 하는 소명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슈미트의 정치신학으로부터 우리는 왜 레이건이 소련을 악의 세력으로 규정했는지, 그리고 왜 부시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명시하게 되는지 이해의 단초를 얻게 된다.

나아가 우리는 트럼프의 크리스마스 전쟁이 결국 ‘선과 악의 내전적 질서’라는 정치의 본질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를 구현하려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것이 ‘미국적 예외주의’내면에 흐르는 보수주의 정치이념이다. 

미국은 독립 건국 이래로 ‘미국 예외주의’라는 독특한 정치적 가치를 고수해 왔다. 무엇보다 독립혁명으로 세워진 정부가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로마제국의 공화제를 벤치마킹했다는 사실부터가 그랬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유럽의 군주제를 거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회주의에 전적인 동의를 보내지 않았다. 미국은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이 국교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자유를 표방했다. ‘국교가 없는 웨스턴 국가’, 그런 점도 미국적 예외주의의 한 모습이었다.

▲ 트럼프는 미국의 종교적 표현금지법(존슨법)을 폐지한다는 공약으로 복음주의자들의 표를 얻었다. 과연 트럼프는 오바마가 만든 사회 억압 체계를 개혁할 수 있을까?

문화전쟁에서 승리한 레이건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인간이 세운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 주권은 창조주로부터 왔다고 믿었다. ‘우리가 믿는 神 안에서(In God We Turst)’라는 1달러 지폐에 새겨진 문구는 이 모든 미국적 가치의 본질을 설명한다.

레이건 대통령이 선거 유세에서 미래의 미국을 ‘언덕 위에 빛나는 도성’으로 비유했을 때 미국의 기독교인들의 가슴 속에서는 감동과 회한이 밀려왔다. 그 이상향은 많은 미국인들이 꿈꾸는 ‘거룩한 도성(Holly City)’이었으며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는’ 세속의 도덕적 왕국이었다.

이 전통은 로마제국을 우상들의 나라에서 벗어나 신께서 축복하는 왕국으로 변모시키고자했던 교부(敎父)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의 전통이었으며, 바로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의 세속적 버전이었던 것이다. 레이건은 선거 유세에서 그러한 왕국을 설득력 있게 미국인들의 비전으로 그려냈다. 

레이건의 ‘거룩한 도성, 미국’이라는 메시지에 보수주의 미국인들이 감동을 넘어 회한을 느꼈던 것은 다름 아닌 젊은 대통령 케네디의 자유주의적 정치 유산 때문이었다. 젊고 자유분방한 대통령 케네디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신봉하며 정치적 모범답안이라는 PC의 대표적인 사례를 만들었다.

각급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시행해 오던 기도를 금지시킨 것이다. 케네디의 민주당은 미국의 헌법이 천명한 종교의 자유를 들어 학교에서 행해지는 기독교의 기도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봤다.

인간의 법으로는 올바른 정치적 결정이었으나 미국이 건국 이념으로 삼은 전통에는 위배되는 정치적 결정이었다. 문제는 미국이 헌법에 종교의 자유를 천명했던 것은 기독교 외에 이슬람이나 힌두교도에게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건국 당시, 미국에는 유럽에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이주해 온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들의 종교는 기독교였으며 다만 그 분파에서 청교도, 가톨릭, 퀘이커, 침례교 등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각각 자신들이 정착한 주(州)에 교파적 본거지를 구축하고 있었고, 그러한 주의 자치적 교파를 연방정부가 하나의 교파로 간섭하는 것에 우려를 느꼈다. 미국인들은 유럽에서 벌어졌던 지긋지긋한 종교전쟁에 넌더리가 난 상태였다. 

특히 영국에서 국교가 성공회로 결정된 후, 국가가 호교(護敎)의 의무를 가지게 되자 신교도는 물론, 가톨릭 교도마저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렇게 다양한 기독교 분파의 사람들이었으나 그들이 ‘메리 크리스마스’로 성탄절의 인사를 나누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유럽에서 불어 닥친 68혁명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젊은 진보주의자들은 자유를 내세워 기독교 보수정치세력에 저항했으며 무신론과 유물론, 사회주의, 다원주의, 상대주의 이념들은 미국의 보수적 가치들을 ‘민주화’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의 ‘진보적 시대(Progressive Era)’라 불리던 시기의 지도자들, 즉 루스벨트, 트루먼, 아이젠하워와 같은 독실한 크리스천 정치인들이 견지했던 정치철학과도 다른 것이었다.

68민주화세대, 즉 히피와 마리화나로 상징되던 캠퍼스 좌파는 반전과 평화운동이라는 명분 하에 베트남전에서 미국의 패배를 위해 베트콩을 찬양하는 행태마저 서슴지 않았다. 그 선두에는 제인 폰다와 같은 연예계 스타들도 있었다. 

그들은 공산주의 소련의 위세를 흠모해서 사회주의도 미국의 가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그러한 정치적 타락시기에 세계질서를 ‘선과 악’으로 규정하는 데 성공한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소련의 몰락과 세계화 이후, 미국은 자신의 적을 더 이상 ‘국가’로서 노정할 수 없었으며 적으로 설정한 이슬람 근본주의세력은 파르티잔의 성격이 강했다.  

일찍이 칼 슈미트는 그의 저서 <파르티잔>에서 적의 시민과 시민군이 섞여 있는 파르티잔을 상대해야 하는 국가는 적과 동지의 질서로 이들을 구분할 수 없기에 정규전으로 이길 수 없다고 간파했다. 

베트남전에서 미국은 베트콩과 주민을 구별하기 어려웠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시리아에서도 그랬다. 그 결과 ‘더러운 전쟁’에 대한 미국인들의 피로감과 염증이 일어났다. 9·11사태 이후 ‘위대한 미국’의 위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 보였고 오바마 정부 내에서 동성애와 이민 문제는 미국적 가치를 더 이상 세계에 모범으로 내세우기 어려웠다. 

미국은 제국의 바깥이 아니라, 내부에서 다시 적과 동지의 정치적 내전을 치르는 사상전의 상태로 나아갔고 그 대결 양상은 더 분명해졌다. ‘크리스마스 전쟁’의 본질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 전쟁에서 승리한 트럼프의 미국은 국제적 질서를 변화시킬 것인가. 이렇게 묻는 질문은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이 질문은 ‘미국적 가치 회복’이라는 미국 내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부흥에 대해 묻는 것이다. 적어도 부시 대통령을 만든 네오콘과 같은 정치 그룹들이 트럼프를 핵으로 집결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그러나 전망은 뚜렷하지 않다. 트럼프는 이전의 레이건이나 부시와는 다른 점이 있다. 

레이건에게는 골드워터라는 탁월한 정치적 멘토와 그를 중심으로 하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가 혼합된 정치 세력이 존재했다. 그들은 애국자들인 동시에 철저한 시장주의자들이었다.

레이건의 멘토였던 골드워터 본인 스스로가 아메리칸 드림으로 성공한 세탁소와 백화점 계열사의 집안이었고 그는 민주당의 사회민주주의적 노선에 단호했다. 이에 비해 부시의 네오콘은 좌파에서 전향한 그룹들이었고 그들은 자유주의가 아닌 공동체주의에 경도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 그룹의 멘토는 미국의 보수정책 잡지 <위클리 스탠다드>의 발행인인 윌리엄 크리스톨의 아버지이자, 고전주의 정치철학자 레오 스트라우스의 제자였던 어빙 크리스톨이었다. 그는 미 보수주의 진영에서 강력한 이데을로거로 평판이 높았다.

문제는 이 네오콘 그룹들이 시장경제에는 레이건의 그룹들과는 달리, ‘큰 정부’와 함께 민주당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미국의 ‘세계경찰’이라는 국제 개입적 노선을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는 재정 확대와 경기 후퇴였다.  

‘위대한 미국’은 재건될 것인가 

레이건, 부시에 비해 트럼프의 청사진은 그 캠페인과 실천에 대해 의문의 여지를 많이 남기고 있는 상태다. 공화당의 주류 인사들은 트럼프의 선거 공약을 불신해 왔으며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위상을 추락시킬 것이라 우려했다.

트럼프 역시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워 우파 선동에 나섰던 그 캠페인을 미국의 정책으로 가져가는 데 큰 부담이 따른다는 점을 알고 있다. 동시에 수지가 맞지 않는 국제정치와 군사 개입의 문제 역시, 비즈니스의 달인으로서는 미국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워싱턴의 관측은 트럼프가 외교안보 문제보다는 먼저 국내 문제에 집중할 것에 방점을 찍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자신이 약속한 ‘위대한 미국’은 내치와 외교 모두에 걸쳐 있음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선언하며, 그 진단 또한 정확하다. 

“현재 세상이 어떤지 보라. 점잖게 표현해도 아주 난장판이다. 지금보다 더 위험한 시기는 없었다. 워싱턴 DC의 정치인과 이익단체들은 우리가 처한 난장판을 만든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그런데 왜 계속 그들의 말을 들어줘야 하는가? 

이제 미국을 다시 정당한 주인인 미국인들에게 돌려줘야 할 때가 되었다. 

나는 정치인들, 이익단체와 로비스트들이 오랫동안 해온 대로 법을 좌지우지하면서 실천 없이 말만 늘어놓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나를 매수할 수 없으므로 나는 정치계의 양쪽에 자리 잡은 기성체제를 뒤흔들 것이다. 나는 미국을 다시 되돌리고, 다시 위대하며 번영하게 만들며, 우방들은 존중하고 적국들이 두려워하는 나라로 만들고 싶다. 

이제 행동에 나설 때다. 국민들은 바뀌지 않는 정치에 질렸다. 그래야 마땅하다! 나는 이 책에서 무너지는 경제를 바로잡는 길, 의료보험체계를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며, 의사와 환자를 소외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개혁하는 길, 위대한 참전용사들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한편 군을 재건하여 적들이 주도권을 잡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이기는 길, 미래의 구직자들이 성공하는 데 필요한 자질을 갖추도록 국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하는 교육체제를 만드는 길, 불법이민을 차단하고 국내 생산을 독려하여 즉시 일자리를 다시 국민들에게 되돌리는 길 등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한 이상을 제시한다.” 

- 트럼프 著 <불구가 된 미국 어떻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인가> 中-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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