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대연합은 없다”
“우파대연합은 없다”
  • 전재욱 전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6.12.14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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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난파 직전의 한국보수, 어디로 갈 것인가?

국가주의우파는 21세기의 도전을 감당할 수 없다. 작은 정부, 개방, 자유를 지향해야 한다

2004년 노무현 탄핵 시도가 있은 지 12년이 흐른 2016년 한국은 그 정체(政體)가 완전히 뒤집어질 사태에 직면했다. 한번 온전히 돈 바퀴의 접지점이 닿아 있는 땅은 2004년의 그 땅이 아니다. 따라서 이 새 지형을 어떻게 이해하고 앞으로 바퀴가 나갈 방향을 어떻게 조망하는가는 그 때와 다를 수 밖에 없다. 

노무현의 탄핵을 주도한 것은 결집된 우파였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이으려 하는 ‘국외자’ 노무현을 용납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보수우파의 기치 아래 뭉쳐서 그를 추방하고자 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사회적 보수주의자, 리버럴, 리버테리언, 심지어 국가주의자까지 다양한 종류가 혼재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탄핵 절차의 무리함에 내심 불편을 느끼면서도 ‘종북불용’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동의했다. (그러고도 결과는 실패였음을 상기하자.)

2016년의 지형은 다르다. 팽창하는 중국에 대한 동북아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한미일 동맹이 강화되고 있다. 북한은 고립과 멸망의 길로 점몰하고 있다. 국내적인 대북인식의 안정도 이뤄졌다.

대북 대화와 지원을 옹호하는 중도층일지라도 김정은 정권의 패륜과 존재 의미 상실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고 있다. 종북주의자들은 사실상 한계 지점으로 몰리고 있다. 잡음은 낼지언정 체제 전복을 달성할 힘은 상실했다. 

▲ 12월 9일 국회 의원총회에 참석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정진석 원내대표, 김무성 전 대표. 박근혜 정부를 만든 우파 연합은 자유주의 우파와는 거리가 멀다. / 연합

국가주의 우파로는 한계에 봉착 

최근 3개월에 걸쳐 지형이 더 크게 달라진 곳이 있다. 국가주의우파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국가, 곧 정부가 막대한 자원을 통제하면서도, 재산권과 생존권을 포함한 국민의 기본권에 무심한 그런 시스템의 실제 작동 과정이 한편의 막장 드라마로 모두가 볼 수 있게 펼쳐졌다. 드

라마는 유치하고 창피하지만 메시지는 그렇지 않다. 최순실, 아니 박근혜 사태의 본질은 섹스도 마약도 종교도 아니다. 대통령이 사실상의 선출왕으로서 관료들과 결탁해 공적, 사적 자원을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는 체제를 용인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몰라보게 바뀐 지형에서 노무현 탄핵과 박근혜 당선을 가능하게 했던 ‘우파대연합’은 존속할 수 없다. 

우선 종북 이슈로 연합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대북 이슈가 유권자의 관심 사항이 아니라는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 수많은 여론조사를 통해서 확인된 바 있다. 김정은이 핵을 가지고 위기를 조장하면 길어야 한 주간 이슈의 상위권으로 진입하는 정도다.

지금처럼 모든 것을 뒤덮는 블랙홀 이슈라도 생기면 북한은 관심 사항 밖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정한 김정은 정권을 비판하고 끌어내리려면 우리 쪽 정권이 확실한 도덕적 우위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각이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정권의 도덕성에 대한 생각들이 매우 다르다. 사실 ‘국가주의우파’는 ‘자유주의우파’와는 거의 완전한 사상적 대척점에 위치하며 오히려 ‘전체주의좌파’에 가깝다.

“강력한 대통령의 지도 하에 정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국가 경제를 이끌고 국민을 계도하며 통일선진강국으로 나아간다”라는 말은 “김정은 위원장의 영도 하에 인민정부가 일사불란하게 사회주의경제를 건설하고 인민을 지도하여 통일군사강국으로 나아간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국가운영사상을 허용한다면 지도자, 그리고 정부를 움직이는 관료들의 도덕적 일탈도 용인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시스템에서 ‘자유시장경제’를 논하는 것은 기만일 뿐이다. 

다수 정파로서의 ‘국가주의우파’는 끝났다. 이제는 소수 정파로서 사안별 공조의 파트너로서 존속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그러면 우파의 다수는 누가 선도할 것인가? 정치적 세력화를 상정하고 이름을 붙이는 것은 별 의미가 없지만, 편의상 ‘자유주의우파’라고 불러보자. 그러면 태동하고 있는 자유주의우파의 프로그램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요점만 확인해보자. 

자유주의 우파선언-도덕적, 관용적, 개방적 우파가 아니면 공멸일 뿐 

첫째, 관료의 지배로부터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한다. 냉전 대치의 개시와 함께 출발한 대한민국의 정치체제는 항상 임시적인 성격을 띠어 왔다. 이제 “통일이 될 때까지만…”이라는 조건은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다. 지향점이 불분명한 정책을 추구하는 국가, 즉 관료시스템이 세금과 규제를 통해 민간의 자원을 마음대로 동원하고 나눠주는 일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관료가 통제하는 자원이 줄어들면 관료제 자체도 대폭 축소된다. 이렇게 풀리는 자원으로 사회의 화합을 도모하는 복지시스템도 확충할 수 있다. 재벌의 폐해도 관료지배 억제를 통해서 막을 수 있다. 한국 정치의 대다수 독직사건은 정치인, 관료가 재벌을 상대로 특혜와 돈을 맞바꾼 결과다. 

둘째, 섬멸(annihilation)을 위한 정치를 중단하고 의회주의를 확립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분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분열한 상대방을 아예 말살시키려고 하면 같은 시공을 공유할 수 없다. 극단주의는 민주주의가 될 수 없다. 승리한 집단의 독재로 귀결된다. 

이미 의회 내에 공산주의자가 꽤 존재하지만 임의대로 말살시킬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의회라는 시장에서 우월한 품질과 가격으로 무력화시키는 것 이외에는 답이 없다. 그러면 의회 구성원의 능력도 높아질 수 밖에 없고, 지금까지 정치에 등을 돌렸던 인재들도 동참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 결국 정권의 교체와 상관없이 일관된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는 핵심그룹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셋째, 개방과 실용을 대외관계의 중심으로 한다. 2016년의 한국은 ‘장사하는 나라’다. 상업사회는 이익의 추구를 위해 교조적 민족주의를 배격할 수 밖에 없다. 대외관계에 있어서도 동서남북으로 국경을 열어 제 열강 중 하나가 한반도를 완전히 지배하려면 다른 열강이 절대 용납하지 않는 완충적 경계지대로 남아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중국에 맞서 한미일 공조로 세력 균형을 맞추는 일은 물론 당연한 일이다.) 

넷째, 통일이 지고지선의 가치인가를 재점검한다. 한국 현대사는 통일이라는 목표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희생을 치렀다. 이제 곰곰이 따져볼 시점이 되었다. 통일의 맹목적인 추구가 시민의 행복을 저해한다면, 그 목표조차 버릴 수 있다. 그 대신 한국 내에서 정의를 실현하고 그것을 토대로 당당하게 대내외에 도덕적 우위를 확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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