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조작의 검은 유혹 - 시위군중과 영화관객
흥행조작의 검은 유혹 - 시위군중과 영화관객
  • 조희문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6.12.16 0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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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숫자는 집계 조작이 가능하다. 주최자나 영화사의 이해관계가 걸린 숫자놀음은 아전인수식이 많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지면서 참가자 숫자를 두고 공방이 오가고 있다. 시위를 주도하는 측(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은 100만, 200만 명을 주장하고, 언론은 대체로 그 발표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 조희문 영화평론가·미래한국 편집위원

하지만 경찰 추산은 그 숫자에 어림없이 미치지 못한다. 최고 5배 정도 차가 나기도 한다. 참가 인원이 크게 늘어났다고 한 11월 12일 시위의 경우 경찰은 26만 명이라고 집계한 데 비해 주최 측은 100만 명이 넘었다고 발표했다.

12월 3일의 경우는 경찰 32만 명, 주최 측 170만 명이라고 했는데, 5.3배나 차가 난다. 아무리 계산 방식이 다르다 해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계산이다. 

11월 12일 시위를 두고 각 언론들은 ‘100만 명’을 보도했지만 어떤 방식으로 집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근거도, 기준도 밝히지 않았다. ‘100만 촛불집회’ ‘민주항쟁 이후 최대 규모’ ‘역사적인 100만 촛불’ 같은 감성을 자극하는 소설 제목 같은 헤드라인을 달았을 뿐이다. 

확인할 수 없는 시위대 숫자 

경찰이 계산하는 방식은 단위 면적당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을 계산하고, 해당 지역의 면적을 

곱해서 인원을 산출하는 ‘페르미 추정법’(Fermi estimate)을 적용한다. 3.3㎡ 당 성인 남성 5-8명이 설 수 있다고 보고 1만여 평 규모의 광화문 광장 일대가 가득차면 8만 명 정도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 또한 추정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적용 기준 위에서 계산하는 것이란 점에서 무턱 댄 부풀리기보다는 실제에 근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주최 측의 산출 방식은 도무지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참가 단체 숫자와 소속 인원, 지방에서 버스, 열차 등으로 상경한 인원, 주최 측과는 상관없이 시위 현장에 참가했거나 왔다가 돌아간 인원, 심지어 주변 지하철역에서 내렸다는 인원까지 더하면 그런 숫자가 된다는 것이다.

집회 신고 때 밝힌 참가자 숫자가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 그들이 모두 참여했는지, 지방에서 상경했다는 인원이 맞는지, 그들이 자발적 참가자인지, 징발된 용병인지도 알 수 없고, 인근 지하철역에서 승하차했다고 그들을 시위 참가자라고 할 수 있는지 어느 부분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저 특정 시간에 현장에 모인 인원이 시위 인원이라고 봐야 할 터이지만, 경찰과 주최 측의 숫자가 크게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지난 2008년 6월 10일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 시위 때 주최측(국민대책회의)은 70만 명이 모였다고 했을 때도 경찰은 8만 명, 많아도 10만 명을 넘지 않는다고 해 최대 9배 정도의 차를 보였다.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석한 시복식에 참석한 인원은 경찰 17만, 주최 측은 100만 명이라고 주장했다. 당시는 엄격한 보안 관리 상태에서 진행된 것이라, 공식 초대자만  참가가 가능했기 때문에 다른 어느 집회보다 정확한 경우였다. 그때도 주최 측은 행사장 주변을 오간 ‘연인원’을 들이대며 ‘100만 명’이 맞다고 고집했다. 

▲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124위 광화문 광장 시복미사에 참석한 당시 총 인원은 경찰 추산 17만 명이었다. 그때도 주최 측은 행사장 주변을 오간 ‘연인원’을 들이대며 100만 명이라고 고집했다. / KBS 영상참조

우리 사회에 만연한 숫자 조작의 유혹 

숫자를 부풀리려는 시도는 시위 현장 뿐만 아니라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선정이나 영화계의 ‘예매율 1위’ ‘최고흥행 기록’같은 부분에서도 목격했던 일이다.

베스트셀러라고 알려진 도서 중에서 상당수는 출판사가 자체 매입해 순위를 조작한 결과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사재기’ 사건이 산발적으로 드러날 때마다 출판계는 자정 대책을 세우느라 분주하지만 근절되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영화계의 경우는 탈세를  위한 관객 숫자 줄이기와 영화 홍보를 위한 관객 숫자 늘리기를 교차 반복한 특별한 경험을 갖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운영하는 영화관 통합전산망은 영화 매표 현황을 실시간으로 집계한다. 개별 영화의 예매, 매표 상황이 집계되고, 전체 영화의 통계도 정확하게 잡을 수 있다. 2003년부터 시행했지만 당시에는 가입 영화관이 적어 시험적인 수준에 그쳤다. 

2007년 7월에 이르러서야 지방에 산재한 몇 개의 단관 영화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연결을 마쳤다. 사실상 전국의 영화관이 통합전산망에 가입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지금의 영화 관련 통계는 통합전산망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

각 영화관의 매표 현황이 그대로 드러나니 어느 영화가 얼마만큼의 흥행을 하고 있는지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영화관 운영자도, 영화 제작자도, 언론사 영화담당 기자들도 통합전산망으로 집계되는 숫자를 인정한다. 매표 집계가 정확하니 관객 수는 물론 매출액, 영화관별, 지역별, 월별, 국가별 등 여러 테마별 집계도 가능하다. 

통합전산망이 시행되기 전 영화관 매표 집계는 각 영화관 자체로 이뤄졌다. 관할 행정기관에 보고하는 숫자도, 세무서에 신고하는 매출도 자체로 했다. 시도 단위의 극장협회는 각 영화관이 알려주는 집계를 근거로 영화별 관객 수를 집계했고, 상위 단체인 전국극장연합회는 다시 그 집계를 모아 전국 상황으로 환산했다.

정부의 통계나 업계에서 근거로 활용하는 숫자는 모두 각 영화관이 자체 신고한 매표 숫자를 근거로 한 셈인데, 각 영화관이나 관련 단체, 행정기관 모두 이 숫자를 믿지 않았다. 공식적인 통계라고 집계해 놓았지만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숫자의 정확성을 검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차적으로 관객 매표 현황은 영화관의 수익과 관련되는데, 세금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했다. 정확한 매출과 합당한 세금은 필수적인 관계이지만 ‘적게 낼수록 좋은 것’이란 인식이 퍼져 있던 때였다. 세무서는 탈세를 막겠다는 의도로 영화관 입장권에 일련번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검인을 했고, 영화관은 검인 입장권만을 팔아야 했다. 

영화관 측은 입장권 자체를 위조하기 어려웠다. 인쇄가 가능한 인쇄소를 확보해야 하고,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입장권을 인쇄하는 일은 범죄이기 때문에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대신 영화관 측은 입장권을 2번 또는 3번 중복해서 파는 일을 교묘하게 처리함으로써 매출 축소를 시도했다. 

영화를 보려는 관객은 매표 창구에서 입장권을 사고, 영화관 입구의 집표 담당자에게 입장권을 제시하게 되는데, 집표원은 입장권을 찢어서 일부는 영화관이, 나머지는 관객에게 다시 돌려줘야 한다. 고속버스나 비행기 탈 때 승차권(탑승권)의 절반은 승객이 나머지 절반은 회사 측이 회수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이 대목에서 영화관 측은 입장권의 상당수를 찢지 않고 받아 뒀다가 다시 판매 창구에서 이 표를 다시 판다. 같은 표를 중복해서 파는 것인데, 그만큼 관객 수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세무서가 불시에 입회조사를 하기도 하고, 영화사(배급사) 측도 감시원을 파견해서 매출 누락을 막으려 하기도 했지만 잠시 뿐이었다. 

영화 흥행은 낮과 저녁 시간이 다르고, 인기 있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 사이의 간격이 크다. 주말과 평일, 방학이나 휴가기 등에 따른 성수기와 비수기의 차이도 크다.

입회 감시를 하더라도 매일 매회 계속하지 않는 한 전체 매출은 추정치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추정에 근거한 누락분을 계산한다면 영화관 측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읍소 작전을 벌이면 결국 적당한 선에서 어물쩍 마무리되곤 했다. 

확인할 수 없는 영화 신기록 경쟁 

영화사가 파견한 입회인에 대해서는 영화사에서 주는 일당보다 더 많은 금액을 주면서 회유하는 작업을 벌여 형식적인 입회만 하게 만드는 일도 허다했다. 역공작을 한 것인데, 입회인은 그저 체면을 세울 정도의 실적만 만들고 나머지는 눈감아 주는 일이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당시 영화관 운영을 했던 한 사업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대체로 30% 또는 그 이상의 매출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기억했다. 

영화제작자 입장은 영화관 운영자와는 달랐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관객 숫자를 높여서 잡으려 했다. 숫자가 많을수록 자신들의 영화에 대한 관객 반응이나 평가가 좋은 것이라고 홍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쉬리>(1999)와 <공동경비구역 JSA>(2000)의 흥행 신기록 논란은 주먹구구 집계의 대표적 사례로 남아 있다. <쉬리>의 흥행기록은 전국 580만 명(제작사 발표). 당시로서는 경천동지할 만한 대박 흥행 결과였다. 전국적으로 열풍을 일으켰다 할 정도로 대단한 흥행이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영화 흥행 집계는 단일 영화관 그중에서도 개봉관 흥행을 기준으로 삼았다. 개봉관에서 흥행한 숫자가 그 영화의 흥행 기록으로 잡히는 것이다.

서울의 영화관들이 멀티플렉스로 바뀌기 전, 좌석 수는 서울의 대한극장이 2002석으로 가장 많았고, 스카라, 명보, 중앙, 단성사, 피카디리, 국도, 국제, 허리우드, 서울극장 등은 대부분 1000석 수준이었다. 

상영 횟수는 평균적으로 하루 5회. 전회 모두 매진하면 하루에 5000명이 입장하고, 한 달 내내 매진을 계속한다고 해도 15만 명을 채우는 수준이다. 한 달 동안 매일 전회 매진된 경우는 없었기 때문에 한 달 10만 명 관객을 동원하면 대단한 성공으로 쳤다. 

서울은 개봉관 상영을 마치면 서울역 근처의 성남극장, 미아리 방면의 대지극장, 신설동 부근의 동보극장 등의 재개봉관(2번관)에서 이어서 흥행을 하고 그 다음으로 2편의 영화를 동시 상영하는 3번관(동시상영관)으로 넘어간다.

개봉관급 영화관에서만 영화사가 직접 흥행을 하고 나머지 2번, 3번관의 흥행권은 일정 금액을 받고 팔아넘기는 것이어서 같은 영화라 하더라도 흥행 주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관객 집계도 각자 하게 되는 것이어서 공식적인 흥행 기록은 개봉관에서 거둔 결과만 인정할 뿐이었다.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 <취권> <겨울여자> <원초적 본능> <서편제> <투캅스> <장군의 아들>처럼 50만-90만 관객을 넘긴 영화들의 흥행은 지금 규모로 본다면 1000만을 넘나드는 수준이지만 전국 흥행의 규모는 알 길이 없다. 

<쉬리>는 한국 영화 중에서 전국 흥행을 시도한 첫 번째 영화로 기록하고 있는데, 최종 집계는 580만4명. 이전 영화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로 커졌다. 집계방식이 달라지면서 흥행 규모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그 숫자가 얼마나 정확한 것인가는 상관없이 한국 영화 사상 최대 흥행이라는 사실에는 대체로 공감했다. 그 기록을 넘는 영화는 앞으로 상당 기간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하지만 <공동경비구역 JSA>는 ‘무슨 소리냐’는 듯 흥행 선풍을 일으켰다. 배급을 맡았던 CJ엔터테인먼트 가 밝힌 최종 기록은 583만228명. <쉬리>의 흥행 기록을 넘어선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는 설명도 붙었다. 

그러자 <쉬리>의 제작과 배급을 맡은 영화사 강제규필름이 이의를 달며 반박했다. 집계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쉬리>는 직접 배급한 흥행 기록을 집계한 것이지만, <공동경비구역 JSA>는 단매, 할인권 등을 모두 합쳤다는 것이다. 최고흥행기록을 만들기 위해 숫자를 조작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담겨 있는 반박이었다. 

영화제작가협회나 영화인회의 같은 단체들에서는 강제규필름의 반박 주장을 인정하는 입장을 보였지만 양측의 주장 중 어느 부분이 어떻게 틀렸는지를 밝히지는 못했다. 정확한 사실 확인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숫자를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후 <실미도>가 한국 영화로서는 처음 전국 1000만 관객 기록을 세우면서 <쉬리>나 <공동경비구역 JSA>의 ‘최고흥행기록’ 다툼은 의미가 없어졌지만 여전히 ‘더 크게’ ‘더 많아’ 보이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예매율 1위’ ‘흥행순위 1위’ 같은 표현들은 실제 몇 명이 포함된 것인지, 언제를 기준으로 하는 것인지를 밝히지 않으면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법절차 무시하는 숫자 동원은 폭력 

숫자를 부풀리려는 시도는 많을수록, 클수록 좋은 것, 정당한 것이라는 착각을 유도하려는 전략이다. 내용의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숫자가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며, 그 숫자를 장악한 쪽이 곧 선이라는 논리로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여론’이니 ‘대세’라고 하는 용어들은 음험한 폭력을 담을 수 있다. 양(Quantity)이 품질(Quality)을 보증하는 것이라고 믿으려는 경향은 대량 소비 사회에서는 일반화된 현상이지만, 정치와 연결되면 곧 선동으로 둔갑한다. 

지금의 시위 군중과 언론이 전하는 시위 숫자는 법절차를 무력화하려는 선동이고 폭력이다. 숫자를 장악할 수 있다면 어떠한 절차도 무시할 수 있는 힘과 정당성을 가졌다고 조작하는 것이다. 자동차 사고 현장에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사고차 운전자를 향해 욕하고 소리 지르는 일은, 사건의 경위를 밝히는 일과는 상관이 없다. 

대통령이 잘못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이고, 정치적으로 해결하겠다면 탄핵을 진행하면 될 일이다. 

다수결을 인정하는 것은 정당한 절차와 과정이 수반될 때에 만이다. 다수결이 언제나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대체할 다른 더 좋은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선거는 법절차에 따른 다수결의 결정이지만, 부정한 방법이 개입한 경우라면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다. 여론이 아니라 엄격한 법리적 판단에 근거할 때만 유효의 정당성을 갖는다. 

선동과 손잡은 여론이 곧 법이고 힘이라면 군중 폭력만이 세상의 기준이 되는 사회가 될 수 밖에 없다. 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주장이 오히려 법을 뛰어넘겠다는 인민재판 식 군중 폭력이 된다는 모순이 2016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주도한다. 대한민국이 위기인 것은 대통령이 잘못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해결하겠다는 방법이 선동과 조작된 여론을 앞세운 폭력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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