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서 유일하게 오르겔을 만드는 나라
동양에서 유일하게 오르겔을 만드는 나라
  • 이근미 소설가·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6.12.23 00: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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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르겔바우마이스터 홍성훈

홍마이스터는 동양에서 유일하게 오르겔을 제작하는 인물이다. 

그는 한국적인 소리 만들기에 정성을 쏟고 있다.

12월 초 홍성훈 마이스터와 인터뷰를 하기 전에 작업하는 모습부터 지켜봐야 했다. 서울 종로구 새사람교회에서 열릴 <천상의 소리를 짓다> 출판기념 북토크콘서트를 앞두고 한창 오르겔 점검 중이어서 좀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다양한 크기의 파이프를 음계에 따라 배열하고 바람을 불어넣어 소리를 내는 건반 악기 오르겔. 보이는 파이프는 몇 개 안 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엄청난 장치가 자리하고 있다. 오르겔 뒤쪽 거대한 장치가 안에서 홍마이스터는 연주자와 함께 음을 고르는 중이었다. 

새사람교회 오르겔은 18개의 레기스터로 이뤄졌다. 레기스터는 악기라는 뜻으로 18개 레기스터는 18개 악기로 구성되었다는 뜻이다. 1개 레기스터에 60개의 파이프가 들어가니 새사람교회 오르겔은 1080개의 파이프로 구성된 셈이다.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명함에 적힌 ‘오르겔바우마이스터’라는 직함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파이프 오르간을 독일어로 오르겔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파이프 오르간은 미국식 발음이다. 바우는 독일어로 건축, 제작이라는 뜻이고 마이스터는 명장이라는 의미이다. 오르겔 제작명장 홍성훈, 사람들은 그를 홍마이스터라고 부른다. 

그는 동양에서 유일하게 오르겔을 제작하는 인물이다. 세계 200여 개국 가운데 오르겔을 제작할 수 있는 나라는 20여 개국에 불과하다. 유럽과 북미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일본에도 한때 오르겔 제작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쇠퇴했고 중국은 아예 없다고 한다. ‘자동차 생산 여부’가 그 나라 공학 발전의 척도가 된다면 ‘오르겔 제작’은 문화 발전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오르겔 제작만 놓고 본다면 우리나라는 문화선진국이다.

모차르트가 악기의 왕이라고 극찬한 오르겔은 어느 악기도 구사하지 못하는 지극히 낮은 저음부터 최고조의 고음까지 낼 수 있다. 오르겔은 서너 개의 레기스터로 만들 수도 있지만 700가지 악기 소리를 내는 초대형 건축도 가능하다.

오르겔 연주자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비견된다. 바이올린, 첼로, 트럼펫, 오보에 등 다양한 악기를 혼합하여 독특한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프린치팔코리아, 피리, 로샬마이 등 신비한 악기를 배합하면 상상불허의 오묘한 소리가 난다. 

오르겔은 ‘만든다’고 하지 않고 ‘짓는다’고 표현한다. 오르겔을 만드는 과정이 건축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설계, 자재주문, 본체 제작, 내부 제작, 디자인, 파이프 기본 정음을 홍마이스터 혼자 다 담당한다. 본체와 내부를 제작할 때 작업을 돕는 직원이 몇 명 있을 뿐이다. 제작소에서 오르겔이 완성되면 다시 해체작업을 하여 설치 장소에서 재조립을 하고 현장 정음과 조율을 해야 작업이 완성된다. 

<천상의 소리를 짓다> 책에 오르겔 제작 과정이 사진과 함께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한 사람이 설계와 제작, 설치까지 담당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사진기자인 김승범 씨가 2003년에 홍성훈 마이스터를 인터뷰한 뒤 오르겔 제작 과정에 흥미를 느껴 13년간 동행하며 기록을 했다. 

기타 대신 오르겔을 배우다 

홍성훈은 애초에 서울시립가무단(현 서울뮤지컬단) 단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년 정도 활동하다가 ‘마흔 살이 되어서도 뮤지컬 배우로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자 미련없이 그만뒀다.

클래식 기타를 배울 목적으로 독일에 갔다가 오르겔을 만나게 된다. 그의 나이 28세인 1987년부터 도제 과정을 거쳐 4년 만에 오르겔바우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3대에 걸쳐 110년간 이어져오는 오르겔바우 명가로 들어가 요하네스 클라이스의 문하생이 된다. 

홍성훈은 오르겔 명장이 되면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에 모든 것을 배우기로 결심하고 스승 클라이스에게 “되도록 많이 보고 싶다”는 요청을 한다. 클라이스는 한국 제자를 오르겔 건축, 보수, 복원 등 수많은 제작 현장으로 보내줬다.

성 루드게루스 성당, 성 스테파누스 성당, 성 마리아 임 캐리톨, 성 프린돌린 대성당, 성 빌리발트 성당, 아테네 콘서트 홀, 라이캬빅 대성당, 베르히데스가덴 대성당 등 여러 현장의 오르겔 제작에 참여하면서 홍성훈은 기본기를 확실히 다졌다. 

“현장에서 고생을 많이 했죠. 30미터가 넘는 높이에서 파이프와 함께 떨어질 뻔한 적도 있었고, 덩치 큰 독일 사람에 비해 힘이 달려 고생한 적도 많았어요. 현장에서 여러 변수를 해결하는 법을 봐서 큰 자산이 되었죠.” 

4년 후 오르겔바우마이스터슐레에 입학하여 마이스터 준비를 시작했고 1997년에 마침내 국가시험을 통과하여 마이스터 자격을 얻었다. 

“독일에서 마이스터가 된 것부터가 기적이에요. 마이스터 제도는 독일 전통문화 계승을 위해 국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운영합니다. 외국인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은 자국의 기술을 반출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죠.” 

이론과 실제를 완벽히 습득하는 동안 독일 학생들의 견제도 심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했다. 독일에 남으면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고 존경도 받지만 그는 미련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1997년 11월에 귀국하여 1998년 1월부터 일을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IMF가 시작된 겁니다. 문화가 초토화된 상황인 데다 오르겔 없이도 잘 살아온 한국이니 저는 할 일이 없었죠. 사실 그것보다 오르겔을 잘 모른다는 게 더 어려웠죠. 우리나라에 오르겔이 설치된 건 100년도 넘었어요. 명동성당을 비롯한 여러 성당과 세종문화회관에 설치되어 있지만 한국 사람에게 오르겔은 그저 신비한 악기 정도죠. 큰 꿈을 안고 귀국했지만 문화는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어요.” 

그는 졸업 작품을 서울 중구에 위치한 대한성공회 주교좌소성당에 설치했다. 

“오르겔은 ‘영혼의 소리, 절대자에게 바치는 인간의 기도’입니다. 저의 첫 작품을 의미 있는 곳에 짓고 싶었어요. 재료비만 받고 설치했는데 설치된 것만 해도 감지덕지죠. 두 번째 주문은 2001년부터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16개의 오르겔을 지었습니다.” 

오르겔은 레기스터가 늘어날수록 가격이 올라간다.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까지 가격이 비싸지만 제작 과정이 길고 재료비가 비싸기 때문에 제작자가 많은 수입을 올리기 힘든 구조라고 한다. 

“스승 마이스터가 처음에 저한테 ‘오르겔 하려면 돈 버는 건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오르겔바우는 돈을 못 번다는 걸 알려주셨고, 그거 알고 시작했습니다. 주문이 이어진다는 것만 해도 기적이죠.” 

한국인이어서 선택했다 

홍마이스터를 찾아와서 “한국인이어서 의뢰한다. 문화의 씨앗이 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며 뿌듯해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이 났다고 한다. 

“만약 당신이 제일 비싼 가격에 써냈다고 해도 당신을 선택했을 거다. 한국인이 오르겔을 제작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이런 말을 하면서 주문하실 때 보람을 느끼죠. 대우가 굴착기를 만들었을 때 한국 거 사줘야 한다는 의리와 비슷한 감정이었을 겁니다.” 

그런가 하면 입찰에 들어갔을 때 무조건 해외 업체를 선택하는 곳도 있었다. 홍마이스터는 독일과 미국이 오랜 기간 쌓은 브랜드가 있으니 그런 선택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오르겔바우마이스터들이 가장 영예롭게 생각하는 것은 대성당에 오르겔을 짓는 것이다. 홍마이스터도 임동주교좌대성당, 논현2동성당에 오르겔을 지었다. 광주에 위치한 임동주교좌대성당의 오르겔은 레기스터 30개로 1800개 파이프로 구성되었다. 27미터 높이의 3층 구조로 홍마이스터가 지은 오르겔 중에 가장 큰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가장 작은 것은 레기스터 3개로 청란교회에 지은 것이다.

경기도 양평의 하이패밀리 안에 있는 10명 남짓 앉을 수 있는 작은 교회에 연주와 제대를 겸한 트루엔오르겔을 지었다. 트루엔오르겔은 가로 세로 1미터를 넘지 않는 작은 오르겔이다. 보통 레기스터 4개로 구성하고 240개의 파이프를 빼곡히 넣어 이동식으로 만든다. 작은 만큼 고도의 설계와 기술을 요한다. 홍마이스터가 제작한 6대의 트루엔오르겔 가운데 2대는 개인이 주문한 것이다. 

“꼭 갖고 싶어서 5~6년 동안 돈을 모았다더군요. 트루엔오르겔은 4000만~5000만 원 정도면 제작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오르겔 음악을 맛볼 수 있는 거죠.” 

홍마이스터는 꿈을 가진 사람은 오르겔을 만나게 된다고 말한다. 비닐하우스에서 의자 20개 놓고 목회를 시작한 분이 오르겔을 계약하러 왔고, 몇 년 후 그 자리에 교회를 건축할 때 오르겔을 함께 지었다고 한다. 

“오르겔은 문화입니다. 앞으로 더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맞는 오르겔 작곡가, 연주가, 제작가, 이론가가 형성되어 음악회도 많이 하고 듣는 사람도 생기고 팬도 생겨야 합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죠. 연주가는 3세대까지 나와서 정착된 상태입니다. 아직 한국에서 오르겔을 제작한다는 걸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최근 한국에서 엄청난 건물을 지은 몇 군데 대형 교회에 오르겔을 설치했는지 질문하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국의 콘서트홀 가운데 세종문화화관과 롯데콘서트홀에만 오르겔이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콘서트홀이나 종교시설은 오르겔을 염두에 두고 설계를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나중에 오르겔을 설치하려고 했지만 자리가 없어 무산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홍 마이스터는 2005년에 독지가의 도움으로 경기도 양평에 600평 규모에 높이 10m짜리 제작소를 마련했다. 메탈파이프는 유럽에서 들여오고, 컴퓨터와 모터를 제외한 나무로 만드는 것은 모두 홍마이스터가 제작한다. 국산화율이 40%에 이른다. 수백 년 전통의 독일도 국산화율이 70~80%인데 비하면 대단한 성적이다. 

한국적 오르겔을 만든다 

홍마이스터는 한국적인 오르겔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외관 디자인에 각별히 신경 쓰는 데다 한국적인 소리 만들기에 정성을 쏟는다. 뒤주를 응용한 트루엔오르겔 외관은 홍매화 그림, 금색격자 창틀에 십자가 모양의 산딸기 꽃을 박는 등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디자인으로 갈채를 받았다. 

서울 상암동 중소기업 DMC타워의 블루오르겔은 중소기업의 발전과 희망을 상징하기 위해 외관을 바다색으로 표현했다. 경기도 양평군 국수교회의 산수화 오르겔은 연두색 외관과 곡선 처리한 파이프군으로 미적 감각을 높였다. 홍마이스터는 전주의 한국전통문화전당과 손잡고 한국적 외관을 최대한 살린 오르겔 제작을 구상 중이라고 전했다. 

“오르겔은 ‘보이는 소리로서의 형태’도 중요합니다. 더 아름다운 오르겔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는 저음이 강하고 부드러운 소리 좋아하는 편인데, 한국적인 소리를 찾기 위한 노력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피리 소리를 좋아하는데 오르겔은 피리의 군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리의 정서가 가득한 우리의 악기가 되면 훨씬 신명날 겁니다.” 

오르겔을 수입하려면 한국에서 제작하는 것의 거의 두 배를 지불해야 한다. 

“한국에서 제작하지 않으면 계속 수입해야 하고, 비싸서 사지 않으면 사라지겠죠. 비싼 악기를 일부만 향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식으로 만들어서 모두가 오르겔을 감상하게 되길 바랍니다. 틈만 나면 오르겔 연주회를 열고 트루엔오르겔을 들고 대중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오르겔 제작을 배우고 싶다며 찾아온 사람이 지금까지 20명이 넘는다. 하지만 대개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 일이 쉽지 않은 데다 미래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홍마이스터는 언제든 기술을 전수할 생각이 있다고 말한다. 

현재 홍마이스터는 우크라이나에 기증하기 위한 오르겔을 짓는 중이다. 모금한 돈으로 키예프의 한 교회에 기증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최초로 한국에서 만든 오르겔이 해외로 나가는 셈이다. 2018년까지 주문이 꽉 차 있어서 바쁘다는 홍마이스터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며 기적은 계속 될 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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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해 2017-01-03 12:55:09
좋은 기사 공유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