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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영화, 담다 그리다 비추다

영화 속 이주, 인종주의, 다문화 사회 김상민 기자l승인2017.01.12l수정2017.01.12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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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민 기자  kooup@naver.com

다민족, 다인종, 이주민의 국가로서 인종차별적 발언이 금기시되는 미국의 이번 대선은 트럼프가 쏟아낸 많은 말들로 인해 인종주의가 두드러진 선거였다. 대선 결과에 환호하는 백인 남성들의 사진은 인종주의를 부각하는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게 됐다. 

우리나라도 국제결혼, 이주 노동자, 그 밖에 다양한 이유로 거주하는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지 오래다. 그럼에도 사회적 인식이나 제도 면에서 미비한 점이 많고, 남의 나라 일로만 여겨지던 사회적 문제도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제노사이드, 인종 분리 정책, 이민자의 도시 폭동 등 20세기의 수많은 ‘사건’들은 인종주의 문제를 품고 있다. 게다가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백인 경찰의 과잉 대응과 이에 맞서는 흑인들의 저항, 프랑스에서 일어난 테러들, 벨기에 공항의 폭탄 테러, 독일에서 발생한 도끼 테러 등 잊을 만하면 세계 곳곳에서 터지는 사건들은 모두 ‘이주’의 역사적 결과물이며 그 바탕에는 이민자들과 후손들의 소외와 차별이 깔려 있다. 통합과 공존을 목표로 하는 다문화 사회에서 발생하는 소외와 배제는 역설적인 현실이며 엄중한 경고를 던져주는 역사이다. 1943년 아우슈비츠의 유대인에서 2005년 파리 방리유의 북아프리카 출신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16세기 이래로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흑인 노예부터 21세기 유럽에 거주하면서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개인적ㆍ역사적 맥락이 이주와 인종주의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으며, 이것은 다문화 사회에서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는 매체는 매우 다양하다. 이 책은 그중 영화에 주목한다. 영화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이야기 구조가 현실의 재현이자 현실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종의 기호 체계이기 때문이다. 즉 이주와 이민 문제를 다루는 영화들은 이 복잡한 사회현상의 표상임과 동시에 이 현상에 개입하게 되는 상징 장치가 된다. 또한 담론을 지탱하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영화가 다루는 소재들에 대한 역사적ㆍ사회적 분석을 통해 이러한 이중성을 띠는 상징체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이를 통해 어떤 문제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 상징체계에 포섭되는지 살펴보면서, 다문화 사회로 요약되는 현대사회가 이민과 인종주의 문제를 표현하고 말하는 방식을 읽어낼 것을 제안한다. 

이 책은 7부 16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은 논문과 더불어 관련 연표ㆍ개념어 설명ㆍ더 읽을거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주와 인종차별을 다룬 16편의 영화와 홀로코스트 영화를 중심으로 문제들을 고민한다. 

1부에서는 이주와 인종주의를 다루는 영화적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의 관계를 살펴본다. 

〈킹덤 오브 헤븐〉(1장)은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의 갈등을 통해 역사적 ‘사실’과 구성된 ‘이야기’로 인해 빚어지는 문제를 지적한다. 필자는 “세세한 역사적 사건과 사실에 대한 실증주의적 대조가 아니라 사극이 어떠한 메시지를 던지는지, 또는 어떠한 역사적 의미를 환기하는지를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대중들이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다가갈 때 취해야 할 자세를 논한다. 2장에서는 홀로코스트를 다룬 주요 영화들을 살펴보면서 영화라는 매체가 역사적 기억의 공간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필자는 이 분석에서 “홀로코스트 영화는 이미 과잉 기억된 이데올로기가 되어가고 있다. 홀로코스트는 본질적으로 과거에 대한 창조물이자 허구적 재구성물인 영화라는 필터를 통해 과잉 기억되고 돈벌이 수단이 되고 권력화했다”고 주장하며, 역사 영화의 현재적 정치성을 강조한다. 
이 두 편의 글은 십자군 원정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역사 영화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성찰하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2부에서는 영화에서 재현한 이민자들의 삶과 그들이 직면한 차별의 실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다.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3장)는 영국 런던의 빈민가에 정착한 파키스탄 이주민 가족의 삶을, 마티유 카소비츠의 〈증오〉(4장)는 파리 외곽 방리유에서 살아가는 유대인ㆍ아랍인ㆍ검은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의 일상을,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5장)는 평범한 독일 여성과 모로코 출신 이주 노동자의 사랑과 번뇌를 그린다. 이 세 편의 영화를 통해 필자들은 각각 이민자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차별과 편견으로 얼룩진 주류 사회의 시선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는 대처주의의 정치적ㆍ경제적 의미와 더불어 중간계급으로 성장해가는 파키스탄 이민자들과 영국 노동계급의 갈등 관계를 드러낸다. 한편 〈증오〉는 방리유라는 사회적ㆍ경제적 공간의 특수성을 보여주면서 파리 밖에 거주하는 이민자 집단에 대한 파리지앵들의 차별 어린 시선에 담긴 역사적ㆍ사회적 의미를 전한다. 특히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외국인 노동력의 사회적ㆍ경제적 의미와 함께 이들이 독일 사회에서 경험하는 소외와 차별, 이로 인한 심리적 고통과 물리적인 상처 등을 보여준다. 이 분석들은 각각 1980년대 영국, 1990∼2000년대 프랑스, 1970년대 독일 사회에 나타나는 이민자들과 주류 사회의 갈등 양상을 파헤친다. 

3부와 4부는 인종차별의 다양한 시선을 다룬다. 3부 〈검은 비너스〉(6장)와 〈사기꾼〉(7장), 4부 〈갱스 오브 뉴욕〉(8장)과 〈폴링 다운〉(9장)은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인과 아시아인을 바라보는 제국주의와 오리엔탈리즘에 기반을 둔 시선뿐만 아니라, 백인 사이의 위계화한 인종적 질서에 담긴 의미를 보여준다. 

〈검은 비너스〉는 19세기 유럽인들이 흑인을 대표하는 표본으로 이용한 실존 인물 사르키 바트만의 기구한 삶을 통해 흑인 여성의 육체를 바라보는 유럽인들의 혐오ㆍ선망ㆍ호기심 등을 보여주며, 〈사기꾼〉은 아시아계 유색 인종과 백인 남성의 관계를 그리면서 폭력적인 인종 통제를 지지하는 미국 사회의 백인우월주의 관점을 드러낸다. 〈검은 비너스〉와 〈사기꾼〉은 유럽인들이 흑인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의 시대적ㆍ역사적 의미와 백인 남성 중심의 미국 사회가 아시아계 남성을 인식하는 정치성을 명쾌하게 분석한다. 

〈갱스 오브 뉴욕〉과 〈폴링 다운〉은 기존 관점과는 다르게 ‘인종 관계’에 접근하면서 인종주의 분석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한다. 〈갱스 오브 뉴욕〉은 역사 속에서 미국 내 인종 관계가 표출되고 변주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특히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갈등의 중심축인 백인과 유색인의 분쟁을 백인들 내부의 분열로 옮겨 인종주의 문제의 본질을 파악한다. 〈폴링 다운〉 역시 기존 방향과는 다르게 인종주의에 접근한다. 〈갱스 오브 뉴욕〉에서와 마찬가지로 백인성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인종주의를 파악하려 한다. 즉 인종주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사회적 표상으로 고정된 차별받는 흑인상이 아니라, 도시의 변화와 유색 인종의 급증으로 두려움과 불안에 떠는 백인들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포착한다. 

5부에서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경계를 떠도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기품 있는 마리아〉(10장)는 마약 밀매에 가담해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향하는 콜롬비아 소녀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이른바 ‘마약노새’가 될 수밖에 없는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주 요소로 작용하는 빈곤과 범죄의 사슬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칠판〉(11장)은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피난길에 오른 쿠르드족의 이야기다. 영화의 제목은 전쟁으로 학교가 폐쇄되자 칠판을 등에 메고 이란과 이라크 접경 지역으로 학생을 직접 찾아 나선 선생님들의 모습에서 따온 것이다. 즉 칠판은 소수민족 정체성을 보존하는 것이 얼마나 절박한 과제인지를 드러낸다. 이 두 편의 영화는 물리적 경계인 ‘국경’의 존재를 통해 국가ㆍ민족ㆍ노동ㆍ여성 등의 서로 다른 요소들이 어떻게 이주와 관련되는지를 보여준다. 

반면 〈토끼 울타리〉(12장)는 문화적 경계(또는 백인들이 만들어낸 ‘인종적’ 경계)와 물리적 경계의 중첩성을 부각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토끼 개체수의 확산을 막기 위해 울타리 건설에 동원된 오스트레일리아 백인 남성과 원주민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아동들의 ‘백인화’ 정책에 관한 이야기다. 원주민들의 공간과 백인들의 공간을 나누는 토끼 울타리는 백인들이 원주민을 토끼와 함께 확산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치이기도 하다. 

6부에서는 새로운 국가에서 인정받기를 갈망하는 이민자들의 정체성을 다룬다.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중국인입니다〉(13장)는 1917년 러시아혁명의 여파로 중국으로 망명한 백군파 러시아인들과 중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들이 양국의 경계 지역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필자는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러시안 디아스포라는 인종적ㆍ민족적 경계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기제의 문제를 문화적으로 다루고, 인종이 위계적으로 구성되는 사회적 논리를 거부하는 측면을 드러낸다”고 평가하면서 경계인의 복잡한 정체성을 탐구한다. 〈영광의 날들〉(14장)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프리카 출신 군인들이 ‘프랑스인 되기’와 ‘식민지인으로 머물기’ 사이에서 고민하며 정체성 갈등을 겪는 내용을 다룬다. 실제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한 이 영화는 아프리카 출신 상이용사 연금 지급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되기도 했다. 

7부에서는 인종주의 문제의 영원한 화두이자 영원히 이방인의 정체성을 안고 살아가는 유대인 문제를 다룬다. 〈불의 전차〉(15장)는 유대인이었던 실존 인물 해럴드 에이브러햄스와 유대인을 바라보는 영국 사회의 시선을 분석하면서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재현을 논한다. 이를 통해 유대인으로서 지향해야 할 저항과 영국인으로서 받아들여야 할 동화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 관계의 의미를 파악한다. 〈라운드 업〉과 〈바시르와 왈츠를〉(16장)은 반유대주의의 역사성과 의미를 새롭게 고찰한다. 두 편의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반유대주의의 희생자이던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유대인의 양면성을 보여주면서, 희생자 담론에 매몰된 유대인을 바라보는 고정관념의 탈피를 시도한다. 이 세 편의 영화를 통해 유대인성과 희생자성을 양극단에 놓고 반유대주의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영화를 보든 영화를 보고 이 책을 읽든 이민과 인종주의에 대한 지평을 넓혀가는 데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논문이 객관적인 내용을 차갑게 전달하는 데 반해 인종주의 문제를 다루는 영화는 때로 조금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문화 사회를 살아가는, 살아갈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문제인 만큼 한 번 더 생각하고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필자들은 인종주의, 반인간주의 또는 반인본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경계하면서 학문적 성찰을 했으며, 이에 따른 성과를 대중과 함께 나누고자 이 책을 썼음을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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