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대기업 대표성 버리고 자유시민 재단으로 독립해야
전경련, 대기업 대표성 버리고 자유시민 재단으로 독립해야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7.01.12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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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은 대기업 대표성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헌정가치를 수호하는 민간기관으로 혁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전경련 독립에 대한 대기업들의 결단이 요구된다.

“전경련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적 요구와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회원 여러분께 많은 걱정과 심려를 끼쳐 드렸다.” 지난 해 12월,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회원사들에게 뼈아픈 자성의 편지를 보냈다. 최순실게이트로 터진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문제가 결국, 전경련에 대한 해체론으로 이어지면서 급기야 허창수 회장과 이승철 상근부회장의 2월 퇴진이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 전경련 해체론은 '초가삼간 태워서라도 빈대잡자'는 생각에 가깝다.

전경련은 재계, 그것도 재벌과 대기업만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시중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과거 정치자금을 둘러싼 정경유착의 창구가 되어 곤욕을 치르곤 했다. 그렇다면 전경련은 해체되어야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일까.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인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계의 소통 창구라는 전경련의 순기능을 아예 없애면, 정부가 고용 창출안 등을 재계와 협의하기도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는 경제 운용에 있어 대기업들과 협의를 해야 할 문제가 많다. 어느 나라든지 기업들을 대표하는 협의체는 존재한다. 이러한 협의체 존재마저 없애자는 전경련 해체론은 ‘초가삼간 태워서라도 빈대 잡자’는 생각에 가깝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전경련을 해체할 경우, 개별 기업들이 은밀하게 정권과 유착을 도모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현실적인 면이 있다.

과거 부당한 기업규제에 대해서는 전경련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함에 따라, 회원 기업들도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었지만 전경련이 해체되면 개별 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자사에 대한 규제 회피 로비 상황이 가속화 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재계 사정에 밝은 이들에 의하면 대기업들이 과거와는 달리 전경련 활동에 소극적인 이유도 사실 개별 기업의 대관 로비능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오히려 전경련이라는 존재가 거추장스러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한 점에서는 전경련과 같은 기업 협의체가 회원사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고 서로 반칙을 하지 못하도록 서로를 감시하는 기능의 강화가 오히려 부당한 정경유착을 예방하는 장치일 수 있다는 재계 일각의 지적도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전경련 존재 자체가 민간 기업의 자율적 협의체인 만큼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결사의 자유를 정치권이나 시민단체들이 제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경련의 해체든, 개혁이든 그 결정은 600여 회원사에 맡기는 것이 옳다.

우리가 전경련의 향방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사실 국내 정경유착이나 대관 로비와 같은 부정적 현상 때문이 아니다. 허창수 회장이 고백했듯이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자본과 노동이 국경을 지워내는 세계 경제의 흐름은 국제 무역과 투자에서 각 나라의 정부보다 기업의 의사 결정이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만든다.

전경련 해체는 실(失), 올바른 개혁 방향은?

흔히 우리는 FTA와 같은 자유무역협상을 국가 대 국가의 협상으로 인식하기 쉽지만, 실제로 통상과 교역은 기업이 하게 된다. 따라서 어느 나라든지 정부가 경제 영토를 넓히는 통상 확대에 기업의 의견과 전략을 공유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러한 시장 개척과 국제 무역에서는 정부와 기업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려면 우리 수출의 약 80%를 차지하는 수출 대기업 협의체는 한국 경제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

전경련이 해체가 아닌 미국의 BRT, 즉 미국의 200대 대기업 최고경영자 협의체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을 주목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단체는 친목 단체로 운영되면서도 정부와 교역국 그리고 WTO 같은 국제기구를 상대로 미국 기업의 입장을 적극 대변하는 로비 활동을 벌인다. 실제로 중국과 같은 나라는 WTO 가입국이지만 여러 불투명한 이유로 외국 기업, 특히 한국 기업에 대해 불합리한 규제를 가하거나 공산당 차원에서 비공식적인 보상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중국 정부가 LG화학과 삼성SDI가 생산한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 대해선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재차 발표한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중국 정부의 한국 배터리 기업 차별은 갑작스러운 문제가 아니라 지난해 초부터 이어지고 있어서 관련 업계의 우려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와 업계 일각에서는 중국의 이러한 한국 기업 차별조치에 대해 사드 배치에 대한 압박용으로 해석한다. 동시에 중국이 유력한 경쟁자인 한국 기업에 대해 자국의 전기차 배터리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에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중국에 항의하게 되면 복잡한 외교 문제가 된다. 그렇다고 불이익을 당한 기업이 중국 정부나 WTO를 상대로 제소나 하소연을 한다는 것도 신통치 않은 일이다.

미국의 기업협의체인 BRT는 이런 문제에 대해 미국 기업을 대표해서 중국 정부나 WTO와 협상을 벌이게 된다. 만일 전경련이 해체된다면 한국의 개별 기업은 이러한 문제에 정부 지원을 요구하게 되고, 이는 정경유착을 막자고 전경련을 해체한 결과 개별 기업과 정권과의 정경유착이 발생하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국제무역이나 통상외교 차원에서 자율적인 기업 연합체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전경련, 자유수호 재단으로 독립해야

전경련 내부에서는 이러한 순수 협의체와는 달리 미국의 헤리티지연구소와 같은 모델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회원 수가 70여만 명에 달하는 헤리티지재단은 ‘시장경제, 작은 정부, 강한 국방’ 등을 모토로 정계에 다양한 정책을 제안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980년 레이건 정부 시절 헤리티지재단이 제안한 정책 중 60%가 실제 채택되기도 했다. 하지만 헤리티지연구소의 재원 가운데 약 70%가 개인 기부로부터 나온다는 점에서 이 모델에 대한 회의도 적지 않다. 전경련의 개혁 모델은 더 이상 전경련이 대기업들을 대표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는 고민이 있는 것이다.

아울러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전경련과 한국경제연구원 간에 통합이나 조정 문제도 걸림돌로 남게 된다.  전경련이 이제까지의 대기업 중심의 대표성을 벗어나 시민단체로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올바른 여론 형성의 기관 역할을 하는 방법은 대기업들이 전경련에서 손을 떼는 것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전경련 스스로 대기업들로부터 독립해서 자기 경영의 원칙과 존재 이유를 분명하게 천명하고 그 소임을 하면 된다. 그리고 기업들은 별도로 미국의 BTR과 같은 순수한 협의체를 구성하면 될 일이다. 그렇다면 전경련은 대기업의 지원 없이 독립 재정을 꾸려 갈 수 있을까.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전경련 회관(FKI 빌딩)은 지하 6층, 지상 50층으로, 여기서 나오는 임대료 및 주차장 수입은 연 400억 원에 달한다.
나이스 신용분석 보고서(2014년 기준)에 따르면 전경련 자산은 여의도 FKI 빌딩을 포함해 3600억 원(2014년 말 기준) 정도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전경련 회관 건물을 짓느라 생긴 부채가 3489억8000만원, 자본이 113억6900만원이다.

회원사들이 전경련 재단에 자산 운영권을 넘겨주고 부채의 일부를 변제해 주면 전경련은 임대수익으로 독립적인 경영이 가능하다는 추산이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대기업들이 전경련에 연간 회비 납부를 통한 지원은 필요하지 않게 된다. 전경련 재단 스스로 명칭을 자유 시장경제에 걸맞게 바꾸고 구조조정을 단행한다면 전경련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대한민국 헌정가치를 국민들에게 교육하고 이를 심화하는 역할을 충분히 해 낼 수 있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전경련은 태동과 함께 대한민국 산업화와 경제 발전에 중요한 싱크탱크 역할을 해왔다. 그러한 과정에서 정경유착이라는 불미스러운 과거도 있었다. 이제는 그러한 구태를 벗어날 때도 된 것이다. 전경련의 개혁의 올바른 방향은 이제 대기업의 품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품으로 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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