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 탈북자
김성민 탈북자
  • 미래한국
  • 승인 2002.07.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라니…”
▲ 김성민 탈북자
조금 높은 곳에 작자:김성민가진 것 위에 조금만 더 얹어주면 알 수 있다 사람들이 무너지는 이유를 나보다 조금 높은 곳에 사람을 세워보면 또 하나 인생을 덤으로 산다 -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며 쓴 시- 95년 10월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공안에게 잡혀 강제송환 된 뒤 96년 3월 재탈북한 김성민(41) 전 북한군 대위, 김씨를 만난 날은 그가 재학중인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학예술과의 이번학기 마지막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한때나마 언론의 관심을 받으며 이 땅에 정착하는 사람들 . 김성민씨를 포함한 이 땅의 모든 탈북시민은 새로운 사회에서의 적응이라는 또 하나의 고통과 맞서게 된다. 처음 한국 생활에 적응할때의 감회에 대해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에 유혹되며 모든 것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며 소박한 웃음을 짓는 그에게서 이제는 자연스러운 보통시민의 모습이 느껴진다.현재 영락교회에 다니는 김씨는 조선족 출신으로 의사였던 아내 문용옥(38), 6살된 딸아이 예림이와 단란한 가족을 이루고 있다.믿음을 갖게 된 동기에 대해 연변 조선족교회에 숨어있기 위해선 매주 금요일마다 있는 산 기도에 반드시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란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라 하니 거짓말이라 생각돼서 기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하루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기도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산 속 나무 뒤에 서서 30여명정도의 사람들이 기도하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우연이겠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금요기도에서도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영하 25℃의 차가운 날씨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었던 나를 위해 얼음장같은 바위위에서 눈물로 기도하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며…” 이후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고 뜨겁게 기도하며 참된 용서와 평안함을 느껴 보았다는 김씨는 이때 만난 하나님으로 인해 강제송환 때 사형판결을 받았던 때에도 살아올 수 있었다고 조용히 말한다.믿음이 좋다는 아내는 서울에 온지 4년 동안 새벽기도를 하루도 쉬지 않고 있다. 정착금에서 십일조를 헌금해 부부싸움을 할 때도 있었다며 어린아이의 투정 섞인 목소리를 내보지만 아내의 기도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행복은 없었을 것이라는 김씨의 눈가에는 아내의 대한 사랑이 가득하다.김씨가 들려준 강제송환후 재탈북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다. 96년 2월 중국의 대련항에서 밀항선을 타고 한국으로의 입국을 시도하던 중 공안에게 잡혀 대련 감옥에서 40일, 도문 탈북자 수용소에서 7일 온송보위부 감옥에서 8일 수감되어 있었다. 수감기간 동안 이, 벼룩에게 뜯기고 이로인한 감염으로 인해 팔과 다리 허리 부근에 피고름이 어려 온 몸이 부어 수갑이 손목에 겨우 채워질 정도였다고 한다.북한에서 군인을, 특히 장교를 죽일때에는 자신이 통솔했던 사병들앞에서 총살한다. 이로인해 평양으로 이송되던 기차안에서 김씨는 하나님께 살려달라는 기도 대신 총살장에서 무서움에 살려달라거나, 폭압의 북한을 인정하는 자아비판을 하며 죽지 않도록 기도했다고 한다. 평양근처에 기차가 도착 할 무렵 기적적인 탈출 순간을 맞아 하나님을 외치며 화장실의 유리창을 깨고 밖으로 몸을 던졌다. 잠시후 기차옆길 위에서 의식을 차렸을때 신기하게도 몸에 상처하나 나지 않았다며 그 당시의 회상에 상기된 김씨는 하나님의 도우심 이라고 확신한다. “오랫동안의 수감생활과 호송으로 제대로 서있을 수도 없었던 몸이었는데 타박상조차도 입지 않고 살아났다는 사실이 지금도 꿈만 같습니다”이후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시34:4)는 성구는 자신을 고난가운데에서도 감사할 수 있게 했다.99년 한국에 입국한 김씨에게는 붙어있는 직함이 많다. 백두한라회 회장, 탈북봉사단 단장, 탈북자동지회 이사, 반석동지회 회장 그만큼 탈북시민들 사이에서는 그에 대한 신망과 기대감이 크다는 반증일 것이다. 또한 KBS 사회교육방송 ‘서울말 평양말’ 작가, KTV ‘서울말 평양말’ 출연, 한달 평균 5회 정도의 강연으로 바쁜 그지만 지난 5월 2일 열린 미하원 아세아 태평양 지역 인권소위원회에 참석해 탈북자들의 중국에서의 참상과 북한의 인권 상황을 증언, 탈북자들의 인권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남한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시간에 쫓기는 삶과 늘어난 욕심이 여유를 잊게 하는 것 같다”며 수줍게 웃음짓지만 그가 이런 고민을 갖기까지 죽음을 각오한 탈출을 시도했기에 현재의 행복한 고민에 감사함을 잊지 않는다. 한국 생활에서 두려울때가 있냐는 질문에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연 그는 “김정일 독재체재의 겉모습만 보고 진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