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의사와 환자의 죽음
어느 의사와 환자의 죽음
  • 노환규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7.01.1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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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무시한 의료행정, 안전 대책 없는 의사처방이 사고로 이어져 비극 불러

지난 2016년의 12월은 아마도 대한민국의 역사 이래 가장 혼란스러운 연말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해의 끝을 마무리하는 12월에 사람들의 마음은 너그러워지고 사회의 분위기는 따뜻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12월에 두 명의 안타까운 부고가 들려왔다. 그 중 한 명은 한창 진료를 하던 52세 중년의 비뇨기과 의사 K였고, 그리고 또 한 명은 30대 젊은 여성 환자 W였다.

동창회로부터 필자의 대학 4년 후배 의사 K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사인이 뭐지?”라는 생각이었다.

어느 의사의 죽음과 건강보험 심사

52세. 생을 마감하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였기 때문이었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비록 후배였어도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의사였고 더욱이 멀리 지방에서 개업하고 있던 의사가 왜 사망했는지를 구태여 알아볼 이유가 없어서 그의 사인에 대한 궁금증은 곧 잊어버렸다.

그러나 불과 하루 만에 그의 사인이 밝혀졌다. 그가 속한 의사회의 임원이 인터넷 게시판에 소식을 올리면서 죽음의 배경이 알려진 것이다. 의사회 임원에 따르면 그 의사는 자살로써 생을 마감했다.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실사를 예고 받은 후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서였다고 했다. 그의 자살 이유는 나뿐 아니라 많은 의사들에게 충격을 줬다.

불과 수개월 전, 안산의 모 비뇨기과 의사 J가 똑같은 이유로 자살했기 때문이었다. 대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실사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의사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것일까.

대한민국에서 의료기관을 개설하면 정부와 정부의 산하기관인 건강보험공단과 계약을 한다.  이 계약은 의무조항이고 예외가 없기 때문에 특별한 계약서가 없다. 자동계약인 것이다. 그리고 계약의 조건은 쌍방의 합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만든 의료법 및 건강보험법 그리고 정부가 수시로 만들고 변경하는 각종 시행령과 조례에 따른다. 이것을 ‘요양기관당연지정제’라고 한다. (의사들은 ‘요양기관강제지정제’라고 부른다). 강제 계약에 따라 의료기관은 정부의 산하기관인 보건소의 지도 감독을 받게 되고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많은 제약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의료기관이 의학교과서가 아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만들어 놓은 지침에 따라 진료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지침은 공개되어 있지도 않고 지역마다 기준이 다르기도 하며 또 지침이 수시로 바뀌어 일선의 의사들이 일일이 그 기준을 알기 어렵다.

현장과 어긋나는 행정

지난 해 7월 보건복지부의 조사를 받은 직후 자살을 한 안산의 비뇨기과 의사 J는 손바닥에 생긴 사마귀에 대한 치료비용을 보험으로 청구를 했다가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험적용기준에 어긋나게 치료비를 청구했다는 것이다. 안산의 비뇨기과의사는 졸지에 ‘부당청구’를 한 의사가 되었다. 건강보험공단에 ‘부당’하게 청구를 하게 되면 의사는 건강보험법을 위반한 범법자가 되고 행정처분을 감수해야 한다.

조사 과정에서도 불법행위가 확인될 때까지 무한정 이런 저런 자료를 요구하고 자료 제출이 미진하면 범죄자 취급을 하고 조사 기한을 무제한 연장할 것을 예고하는 등 겁박을 주는 것이 빈번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안산의 비뇨기과 의사는 그것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죽음을 선택했다. 참 허망한 죽음이다. 그러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지침에는 보험 청구의 기준이 애매모호하게 되어 있다.

‘일상 생활에 지장을 줄 경우’에만 보험적용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다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지점마다 또 사람마다 그 기준에 대해 각기 다른 의견을 말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마디로 안산의 비뇨기과 의사는 억울하게 죽음을 선택했다.
보건복지부의 조사를 받은 안산의 비뇨기과 의사가 보건복지부의 조사 직후 자살을 하자 의료계는 분노로 들끓었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현지 조사의 관행을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아직 구체화되지도, 실천되지도 않았고 그 사이 그와 똑같은 이유로 또 다른 의사의 죽음이 발생했다. 2017년 새해를 이틀 앞둔 2016년 12월 29일 강릉의 비뇨기과 의사 K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이번에도 사마귀 치료의 보험 청구였다.

중독성 약물처방이 부른 자살

 불규칙적인 근무환경 때문에 수면제를 복용하게 된 환자 W가 있었다. 그녀가 지난 10년 동안 복용한 수면제는 졸피뎀 성분의 상품명 스틸녹스였다. 스틸녹스를 장기간 복용하게 되면 정신적인 의존성이 생기게 되어 좀처럼 끊기가 어렵다. W는 수면제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차례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지만 끝내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친구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스틸녹스를 계속 처방 받았다. 스틸녹스의 남용을 막기 위해 중복 처방을 못하도록 되어 있지만, 그녀는 병원에 근무하는 친구를 통해 며칠 만에 한달치를 처방 받는 등의 방법으로 다량의 약을 확보했다고 가족들은 말했다.

보험과 비보험 처방으로 번갈아가며 약을 처방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성탄절을 나흘 앞둔 지난 12월 21일 오후 5시경 W는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유서는 없었고 투신 전에 소주를 몇 잔 마셨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스틸녹스는 자살을 유도하는 부작용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자살 유도 효과는 술을 함께 마셨을 때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프로그램 중 하나인 ‘그것이 알고 싶다’는 자살을 유도하는 스틸녹스의 부작용에 대해 두 차례 심층 보도를 한 바 있다. 그리고 최진실, 최진영, 박용하 등 유명 연예인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면에 스틸녹스가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정황에 대해서도 보도를 했다.

방송에서는 스틸녹스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갓 결혼한 20대 젊은 여성 L의 안타까운 죽음도 다뤘는데, 이번 W의 죽음과 그 과정이 놀랄 만큼 유사하다. L과 W 둘 모두 젊은 여성이었고 둘 모두 스틸녹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신병원까지 입원하는 노력을 했으며 둘 모두 가족이 스틸녹스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L에 이어 W도 결국 스틸녹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먼 길을 떠났다. W의 가족은 W에게 스틸녹스 처방을 계속해 준 의사들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감추지 않았다.

무관심하거나 무감각하거나

1990년대 말 스틸녹스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스틸녹스는 의사들 사이에 ‘중독성이 없고 매우 안전한 약’으로 마케팅 되었고 그렇게 알려졌다. 반면 스틸녹스의 의존성과 위험성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수면제를 자주 처방하는 신경정신과 의사들은 스틸녹스의 위험성을 일찌감치 경험할 수 있었지만(그중 일부는 여전히 안전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다수의 의사들은 여전히 스틸녹스의 위험성을 간과하고 있는 실정이다. 스틸녹스의 자살 유도 효과를 확인한 호주의 식약처는 박스 경고 문구를 부착하도록 하고 기존 28일의 포장 단위를 14일 절반으로 줄이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의료계도 정부도 아직은 지켜만 보고 있는 실정이다. 그 사이 같은 죽음은 반복된다.

2016년 12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던 50대 의사 한 사람과, 수면제 중독으로부터 그토록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썼던 젊은 여자 환자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두 죽음 모두 막을 수 있는 비극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들을 기억하고, 반복되는 죽음을 막기 위한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기엔 대한민국 사회가 너무 바쁘다. 다이나믹 코리아 아닌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사이 누군가의 가족들은 계속 반복되는 죽음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자살률이 OECD 평균의 2.5배에 달하고 13년째 국민 자살률이 OECD 1등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무도 비극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대책을 세우지 않는 것은 타인의 비극에 무관심하거나 무감각해서일 것이다. 그 사이 우리 중 누군가는 어느 날 갑자기 또 가족을 잃을 것이고 비극은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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