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막가자는 거지요?’
특검, ‘막가자는 거지요?’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7.01.25 18:1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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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후 검사들과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다. 현장에서는 거침없는 목소리들이 젊은 검사들로부터 나왔다. 참다 못한 노 대통령은 ‘막가자는 거지요?’라고 정면으로 받아쳤다. 일순간 솥 안에 끓어 넘치던 물 같던 검사들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막가자는 거냐’는 경고는 검사들에게 주권자의 대표이자 국가의 원수에 대해 복종할 것을 요구하는 의미였다. 단순한 권위의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권력은 아무리 작은 것이어도 그 제한의 장치를 만들지 않으면 본질적으로 남용을 추구한다. 따라서 권력은 그에 맞는 견제장치가 있어야 한다. 검찰의 수사권을 법무부가 관할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 이번 최순실 사건을 수사하기 위한 특검은 최순실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수사의 칼날을 향하고 있다. / 연합

하지만 대한민국 특검에게는 그러한 권력의 견제장치가 없다. 특검은 국회가 특별검사를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검사추천위원을 임명하고, 이 추천위에서 특별검사 2인을 추천해 대통령이 결정하게 한다. 따라서 특별검사는 국가의 원수이자 주권의 최고 결정권자인 대통령의 통제를 받는 것이 그 원리로 맞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특검이 대통령을 수사해야 할 경우가 문제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에 대해 내란과 외환의 범죄가 아니면 임기 중에 형사소추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면 특검은 가능한가? 이 부분에 대한 법조인들의 의견은 갈린다. 특검을 국회가 사실상 추진한 것이기에 삼권분립 차원에서 특검의 수사는 대통령에게도 가능하다는 입장이 있고, 설령 특검이 그렇다하더라도 헌법을 위반할 수 없다는 입장이 맞선다.

이러한 법리적 충돌은 특별검사제도에 대해 우리 사회에 아직 관습적으로 규범과 질서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러나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권력에는 통제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면, 특검의 수사권 견제는 이뤄져야 한다. 그 기관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을 수사하기 위한 특검은 수사의 방향이 최순실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칼날이 향해 있다. 하지만 국회가 특별검사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추천위에서 특별검사를 선발해 대통령의 임명을 받도록 한 취지는 실패했다.

특검과 특검보들이 모두 야당 추천 의원들로 구성되었고 그 중의 인물 가운데 새누리당이 동의하는 형태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특별검사추천위원회를 두는 것일까. 대개 이 특별검사추천위는 정치적 중립인 대한변협이 맡는 것이 상례였다.

정치적 중립이 깨진 특검

정치적 중립이 깨진 특검은 그 자체로 위헌적이며 그러한 위헌성을 가진 특검이 주권의 대표자인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허용한다는 것은 정치적 후진국에서나 가능한 발상이다. 당연히 그러한 후진적 정치 과정은 후진적 특검의 행태를 낳아 버렸다.

특검은 최순실 국정농단의 실체를 밝힌다면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안들에 수사권을 남용하고 언론 플레이를 펼쳐왔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특검은 대통령 탄핵사태를 불러온 Jtbc의 태블릿 PC 게이트에 대해 ‘수사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꺼내 든 것은 ‘또 하나의 태블릿 PC’였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1월 19일 오전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이규철 특검보가 굳은 표정으로 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

최순실 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자신의 사적 회사를 이용해 동계스포츠 사업을 지원하는 국고 16억을 빼돌려 유용한 혐의를 수사하던 특검은 장시호 씨가 기억해낸 최순실 씨의 태블릿 PC를 임의제출 받았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그 태블릿 PC의 개통자와 소유자를 밝히지 않아 의혹을 덧씌웠다.

여기에 2008년 출시 모델인 삼성의 태블릿 PC를 가지고 최순실 씨가 2007년부터 사용했다는 모순적인 수사 발표로 인해 망신을 당했다. 특검의 대응은 자신들의 무리한 수사를 인정하는 대신, ‘삼성이 시제품을 최순실 씨에게 준 것’이라고 변명했지만, 삼성 측에서 ‘문제의 태블릿은 양산품이며 시제품을 준 적이 없다’고 발표해 다시 한번 수사의 목적을 의심케 했다. 특검이 2007년 최순실 씨의 태블릿 PC 사용을 주장했던 것은 삼성과 최순실 씨 간에 주고 받은 메일이 2007년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항간의 해석이 차라리 설득력을 갖는다.

특검은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출국금지하며 뇌물공여죄로 체포해 구속영장 신청을 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국의 주요 IT 거물들을 불러 리셉션을 하기로 한 전날이었으며,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를 대표해 외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초청받은 인사였다.

일본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에게 손정의 소프트방크 회장이 방문해 미국 내 투자와 고용창출을 약속했고, 중국은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방문해 미국의 중소기업에 투자하기로 선언한 터였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이미 미국 실리콘 밸리에 5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고 고용창출에 이바지한 바가 있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에 대한 선린 우호를 다짐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특검은 ‘경제보다 정의’를 공익으로 내세워 이재용 부회장의 출국을 막았다.

특검이 구속영장에 기재한 구속사유는 ‘도주’와 ‘증거인멸’이었다. 도대체 이재용 부회장이 도주한다면 어디로 도주하며, 증거를 인멸한다면 특검은 가지고 있는 증거가 없다는 말이었을까. 가진 증거도 없이 어떻게 대한민국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삼성전자의 실질적 경영총수를 기소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법원과 의견의 차이’라는 초법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성역은 없다’며 마치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울 것 같던 특검은 왜 법원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재용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신청하지 않는가. 하늘이 두 쪽나더라도 정의를 세워야 할 것 아닌가. 결국 특검이 말하는 정의는 포퓰리즘이라는 자기 고백에 불과하다.

특검도 국가의 이익에 복종해야

언론 플레이를 하면서 여론을 호도하고 그 여론에 힘입어 마구 수사의 칼날을 휘두르겠다는 발상은 우리가 역사에서 익히 보아온 것들이다. 프랑스 파리코뮌의 로비에스피에르가 그랬고 나치의 히틀러가 그랬다. 스탈린과 마오쩌둥이 그랬고 김일성이 그랬다.

특검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실패하자 이번에는 김기춘, 조윤선에 대한 블랙리스트 작성 책임을 물어 구속하겠다고 나섰다. 특검에게는 수사할 내용에 제한이 있다. 블랙리스트는 국회가 특검에게 부여한 수사 대상도 아니다. 하지만 특검은 이제 그런 제약은 필요없다는 식이다.

어느 국가든지,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주권의 보호를 위해 헌법적 가치에 도전하는 이들을 감시할 의무가 주어진다. 독일의 경우 우리 국정원에 해당하는 국가정보기구의 이름이 ‘헌법수호청(Bundesamt fur Verfassungsschutz; BfV)이라 불리는 이유도 그런 원칙을 반영하고 있다. 독일 헌법수호청은 체제를 부정하거나 주권에 위협이 되는 인사들에 대해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감청과 사찰을 실시한다. 헌법수호청은 평상시에도 좌파세력 등을 감시한다. 필요할 경우에는 감청, 금융계좌 추적도 한다. 여기에는 현직 연방 국회의원, 재벌 총수, 외국인도 예외가 없다.

실제로 2013년 초 독일의 유력한 시사지 슈피겔은 헌법수호청과 헌법보호청이 좌파 정치인들을 감시하는 데 대해 좌파 정당들이 공개 항의를 했음에도 내무부가 “감시를 그만둘 생각이 없다”고 밝힌 것을 보도한 바도 있다. 미국은 국가 안보와 관련된 부처들이 자체적으로 정보 수집과 사찰, 감청을 실시한다. 이스라엘 모사드는 반체제적 성향의 인사들을 함정으로 유인해 제거한다. 그러한 점에 비춰 보면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그저 정치성향에 있어서 반정부적 성향의 인사들을 명단 작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특검의 활동은 수사권의 남용을 막기 위해 통제되어야 한다. 그 주체는 대통령이어야 하나 피치 못하게 대통령에 대한 혐의가 있을 경우, 특검의 수사권 감시와 통제를 대법원장이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법치가 자유민주주의 미덕이라는 주장은 분명히 일리가 있지만, 법치란 사실 법의 권위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법의 권위란 정당하게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판결하는 사람 속에 있다. 따라서 통치와 법치의 본질은 인치(人治)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얼마나 자신의 직업적 양심에 충실할 수 있는가에 따라 법은 사람들을 살리기도 하고 죽일 수도 있다는 점을 특검은 지금이라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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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lee1940 2017-01-26 12:46:25
그냥 특검 해체하라.

나라사랑 2017-01-26 00:02:30
좋은 의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