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는 어떻게 촛불을 이겼나
태극기는 어떻게 촛불을 이겼나
  • 박주연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7.01.31 10:3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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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자유애국진영의 태극기집회가 촛불을 넘어섰다. 2017년 새해 첫 주말 서울 강남 코엑스 일대에서 열린 태극기집회(탄핵반대 집회)는 경찰 추산 기준으로 촛불집회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등 박근혜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는 3만7000명, 광화문광장의 촛불집회는 2만4000명으로 집계됐다.

▲ 그동안 태극기 집회를 지속적으로 외면하고 있던 언론은 태극기 집회를 박사모 등 친박단체와 일부 보수단체들의 집회로 축소하기 바빴다. 이런 언론의 푸대접과는 달리 태극기 집회 참여 시민은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인터넷과 SNS듣에는 불편한 몸으로 집회에 참여해 태극기를 들고 탁핵반대 목소리를 낸 시민, 아이들이 참여한 감동적인 사연들이 넘쳤다. / 미래한국 백요셉 기자

대통령 탄핵정국에 분노해 들고 일어난 태극기 민심에 놀란 경찰은 그 다음 주말 대학로에서 영하의 강추위 속에서도 수많은 인파가 몰린 태극기집회부터 자체 추산 인원을 아예 언론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촛불을 의식한 공권력의 비루한 처세였다.

대통령 탄핵 찬반을 놓고 맞서고 있는 이른바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의 대규모 맞불 집회는 향후 정국을 가를 전망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이에 영향을 주는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 민심, 헌재는 과연 어떤 민의에 반응할까? 지금까지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의 전개 양상을 요약 정리해 본다. 이를 통해 촛불집회에 숨은 본질이 무엇인지 확인해 본다.

1차 촛불집회가 열린 날짜는 지난 해 10월 29일이었다. 초반에는 정략보다 최순실 사태에 분노한 민심이 크게 차지하는 것으로 보였다. 언론은 ‘최순실(60·최서원으로 개명) 게이트’ 혹은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명명하며 사전부터 여론에 불을 질렀다. <“朴대통령 퇴진” 성난 민심 주말 전국의 거리 뒤덮는다(한국일보)>, <‘박근혜 대통령 하야’ 시민 저항 확산...제2의 6월항쟁되나(위클리오늘)> 등의 기사로 촛불집회 시작 전부터 대규모 집회로 분위기를 몰아갔다. 이날 촛불집회는 주최 측 추산 최대 3만여 명, 경찰 추산 1만2000명으로 집계됐다. 광화문 사거리에 길로틴(단두대)이 등장했다.

▲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기 전에 박근혜대통령이 즉각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했고, 한편에선 이전 집회때와 달리 노조단체와 민중연합당 등이 '한상균, 이석기'석방과 '사드배치 철회'등 정치적 구호들을 쏟아냈다. 나중에는 광화문에 단두대와 박대통령이 참수된 모형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촛불집회의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최순실 구속하라, 박근혜는 퇴진하라, 가자 청와대로” 등의 문구가 등장한 가운데 집회에 참가한 이재명 성남시장은 “대통령이라는 존재가 국민이 맡긴 그 위대한 통치 권한을 근본도 알 수 없는 무당 가족에게, 그 이상한 사람들에게 통째로 던져버린 걸 우리는 용서할 수 없다”며 선동했다. 이날 촛불집회에 일부 언론은 “불법 집회 뒤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감사드린다’는 보도자료를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미화했다.

11월 5일 2차 촛불집회부터 주최 측은 본격적으로 참가 인원을 크게 부풀리기 시작했다.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 서울에서만 주최 측 추산 20만 명(경찰 추산 4만5000명), 전국 30만 명 규모로 커졌다고 보도했다. 언론은 시민들의 순수한 분노로 추켜세웠지만 이른바 좌파진영 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인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준)’ 등이 일찌감치 등장했다. ‘중고생혁명 추진위원회’, ‘중고생연대’, ‘전국중고등학교총학생회연합’ 소속 학생들의 “혁명정권 세워내자” 플래카드를 들고 참여했다. 조선일보 공식 페이스북은 이날 집회 소식을 전하며 “나가자 싸우자”며 이른바 ‘세로(‘세로쓰기’라는 뜻의 은어)을 쳐 크게 논란이 일었다.

이날 중고등학생 단체를 이끈 B군은 옛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 청소년비상대책위원장과 청소년위원회 중앙운영위원을 거쳐 현재 중고생연대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는 이 학생들의 시위를 미화했다.

11월 12일 3차 촛불집회는 백남기 씨 사고 1주기에 맞춘 ‘민중총궐기’와 함께 진행됐다. 1500여 개 단체가 모인 ‘퇴진행동’이 주최 측으로 나서며 정치색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주최 측은 불과 세 번째 주말 집회만에 100만 명(경찰 추산 26만 명)으로 부풀렸다. 언론은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에 뿔난 100만 명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촛불을 들었다”고 흥분하면서 주최 측 추산 인원을 아무런 검증 없이 받아쓰기 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범야권이 일제히 참여했다. 집회 주최 측은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 주민센터까지 행진하겠다고 신고했지만 경찰은 금지했다. 반발한 주최 측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자 법원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중요하다”며 내자동 로터리까지 허용했다. 단두대가 다시 등장했고.

촛불 참가 인원수 부풀리기는 여론 조작

주최 측 주장 서울 60만 명(경찰 추산 17만 명) 등 전국 95만 명(경찰 추산 26만 명)이 모인 4차 촛불집회를 거쳐 11월 27일 5차 촛불집회에서 주최 측이 발표하는 촛불집회 참가자수는 서울 기준 거의 3배 가까이 늘었다. 이날 집회는 주최 측 주장 서울 150만 명(경찰 추산 27만 명). 지역 40만 명이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주 집회보다 거의 세 배가 늘었다는 주최 측 발표와 달리 경찰 추산에서 시위 참여자는 크게 늘지 않았다.

2차 촛불집회 이후 일베 등 커뮤니티사이트와 SNS를 중심으로 네티즌들은 촛불집회 숫자 부풀리기가 심하다는 지적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과거 대규모 군중집회와 비교해 촛불집회 참여 인원이 과장됐다는 논란이 확산됐다. 한편, 5차 집회부터 법원은 “평화적 시위”라며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행진, 즉 ‘청와대 포위행진’을 허용하며 촛불 민심에 부화뇌동했다. 죄수복을 입고 포승줄에 묶인 박 대통령 인형이 등장했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하퇴진행동) 촛불집회 주최 측의 시위 참가자 숫자 부풀리기 의혹은 12월 3일 6차 촛불집회에서 절정을 이뤘다. 주최 측은 서울 광화문광장 170만 명(경찰 추산 32만 명) 포함,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적으로 232만 명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즉각 퇴진”, “박근혜 구속” 등 구호가 난무했고, 드디어 횃불이 등장했다. 세월호 유가족이 등장해 세월호 침몰 사건 관련 퍼포먼스를 펼쳤다.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의 정치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촛불시위 참가자 수 부풀리기 의혹이 확산되는 가운데, 연합뉴스 등 언론사들의 보도사진은 촛불시위 현장 사진을 그래픽으로 처리하는 모습도 보였다.

주최 측의 과장에도 불구하고 촛불집회는 12월 10일 7차 집회를 기점으로 기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서울 80만 명 등 104만 명(경찰 추산 16만6000명)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전날인 9일 국회는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기 전에 박 대통령이 즉각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했고, 한편에선 이전 집회 때와 달리 각종 노조단체와 민중연합당 등이 ‘한상균·이석기 석방’과 ‘재벌해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철회’ 등 정치적 구호를 쏟아냈다. 촛불집회의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2월 17일 8차 촛불집회가 열린 가운데, 주최 측은 서울을 비롯해 이날 전국적으로 77만 명이 집회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집회 참석자를 서울 6만 명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7만7000명으로 추산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9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퇴진행동은 광화문광장에서 ‘끝까지 간다! 9차 범국민행동-박근혜 정권 즉각 퇴진·조기 탄핵·적폐 청산 행동의 날’ 촛불집회를 열었다. 확 줄어든 규모 때문인지 연예인 참여 소식도 들렸다. ‘퇴진콘서트 물러나쇼’에 마야 이한철 등 연예인이 참여해 공연했다.

주최 측은 서울 60만 명(경찰 추산 3만6000명)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퇴진행동 주최 측은 12월 마지막날인 31일 10차 촛불집회에서 서울 광화문광장에 100만 명, 지역에서는 10만4000명이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경찰 측은 광화문 광장 6만5000명, 전국적으로 8만3000명으로 집계했다. 경찰 추산 6만5000명을 100만 명으로 과장한 대목이 눈에 띈다. 주최 측이 기세가 꺾인 촛불집회의 숫자 부풀리기로 여론몰이를 계속했지만 언론은 문제삼지 않았다.

누명 탄핵, 태극기가 분노하기 시작했다

2017년 1월 7일 열린 11차 촛불집회에 대해 주최 측은 서울 광화문 일대에 60만 명(경찰 추산 2만4000명)이 모이는 등 전국에서 64만3000여 명의 시민이 참가했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생존한 단원고 학생이었던 생존자 9명이 단상에 오르는 등 세월호 1000일 추모 행사와 함께 진행됐다.

퇴진행동은 1월 14일 ‘즉각퇴진, 조기 탄핵, 공작정치 주범 및 재벌총수 구속 12차 범국민행동의 날’로 정하고 12차 촛불집회를 주최했다. 촛불집회의 정치집회 성격이 갈수록 뚜렷해진 것이다. 이들은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주범으로 거론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구속할 것을 촉구했다.

고(故) 박종철 사망 30주기를 맞아 그를 기리는 시간도 가졌다. 주최 측은 광화문 광장에 10만 명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경찰 측은 참가 인원 추산 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박 대통령 탄핵반대 기각을 주장하는 태극기집회가 경찰 추산 발표에서 촛불을 넘어서자 촛불집회 측의 압박 탓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에 젖어 있던 보수우파단체 및 일반 국민들이 본격적인 맞불 집회를 열고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해 11월 19일이었다. 서울역에서 이른바 태극기집회를 개최했다. 촛불집회 주도세력 등이 드러나면서 촛불 민심을 순수한 민심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자 위기감을 가진 이들은 거리로 쏟아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이 분노했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정작 실체가 없는 언론의 난(亂)임을 깨닫기 시작하면서다. 박 대통령에 대한 언론의 과잉 보도와 검찰의 과잉 수사가 불을 질렀다. 이날 참가 인원은 주최 측 추산 6만7000명, 경찰 추산 1만1000명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이 노인과 중장년 층이었고, 간간이 20~30대로 보이는 참가자도 발견되는 정도였다.

그러나 광장과 서울역사로 향하는 계단까지 가득 메운 시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난동세력 진압하라’ ‘강제 하야 절대 반대’ ‘우리 대통령 우리가 지킨다’ ‘법치주의 수호하자’ 등의 피켓을 들고 박 대통령 하야 반대 구호를 외쳤다. 보수는 엉덩이가 무겁다는 편견을 깨고 드디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1월 26일 궂은 날씨 속에서 ‘박근혜를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이하 박사모)을 중심으로 소수의 시민들이 서울역 광장에 모여 박근혜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를 열었다. 같은 장소 오후 7시부터는 국가기도연합 주관으로 미스바구국연합기도회가 열렸다. 언론의 편파보도 속에서 이들은 ‘탄핵 반대’ 피켓을 흔들며 찬양을 부르는 등 구국을 위한 모임을 이어갔다.

지상파 뿐만 아니라 종편 보도채널 인터넷 매체 등 언론의 외면 속에서 개최된 12월 3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집회에는 박 대통령 팬클럽뿐만 아니라 다수의 시민들이 참여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측은 이날 15만명이 집회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보수단체 회원들과 다수의 시민들은 한 손엔 태극기를 흔들며 다른 한 손에는 “아름다운 우리강산 지키고 바로 세우자”, “공정보도! 좌빨언론 OUT”, “진실부터 밝힌 후에 책임을 물어라”, “국회는 법대로 해라” “하야반대, 국회해산” “헌법 위반 국회해산” 등의 푯말을 들고 대통령 탄핵반대를 외쳤다.

이날 집회는 이른바 동대문대첩으로 불린다. 특히 대통령 탄핵반대 여론을 의도적으로 축소하는 언론의 불공정 보도 속에서도 수많은 인파가 모여 많은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12월 10일 광화문 청계천 소라광장 탄핵반대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32만 명이 참여했고, 12월 17일 헌법재판소 인근 종로구 안국역 앞 삼일대로 일대에서 집회를 열었다. 주최 측은 이날 참여 인원을 100만 명이라고 했고, 경찰 추산은 3만 명이었다.

집회 측은 무대 앞에 박한철 헌재 소장의 사진과 함께 ‘역사에 길이 남을 정의로운 심판하라’고 쓴 펼침막을 붙인 채 “탄핵 무효” 등 구호를 외쳤다. 그러면서 “좌파 세력들은 헌재 협박을 당장 멈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탄핵반대 탄핵무효 집회에 김진태 의원 등 새누리당 의원이 다수 참여한 가운데 이우현 의원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태극기집회가 본격적으로 여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모양새였다. 이 의원은 “탄핵을 못 막아서 이 자리에 왔다”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더 많은 비리가 있는데 그때 대통령을 탄핵했느냐”고 박 대통령 탄핵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Jtbc 태블릿 PC 의혹과 관련한 구호도 빠지지 않았다.

그동안 태극기집회를 외면하던 언론은 12월 24일 서울시청 덕수궁 대한문 앞 집회 전후로 차츰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부분 친박단체, 보수단체 등의 집회로 의미를 축소하기 바빴다. 언론의 푸대접과 달리 태극기집회 참여 시민은 갈수록 늘었다. 탄기국과 새로운한국을위한국민운동 등 청계광장에 10만 명이, 대한문 앞에는 160만 명이 모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1만5000명으로 추산했다. 일각에서는 촛불을 의식한 경찰의 의도적 축소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대통령 탄핵반대를 규탄하는 태극기 민심은 12월 31일에도 서울시청 앞 덕수궁 대한문 일대를 가득 메웠다. 끝이 보이지 않는 행렬이 이어졌다. 주최 측 추산 72만 명이 모여 대통령 탄핵 반대와 진상 규명을 외쳤다. SNS 등에는 몸이 불편한데도 집회에 참여해 태극기를 들고 탄핵반대 목소리를 낸 시민, 아이와 함께 참여한 사연 등 감동 사연도 넘쳤다.

언론의 외면 속에서 대통령 탄핵 부당성을 절규하듯 외쳤던 시민들의 목소리는 1월 7일 강남 무역센터 일대 집회에서 절정을 이뤘다. 이날 8차 태극기집회에 주최 측은 120만 명이 모였다고 밝혔다. 경찰 추산은 3만7000명이었다. 같은 날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11차 촛불집회는 경찰 추산 2만4000명이었다. 경찰 추산으로 태극기집회가 처음으로 촛불집회를 넘어섰다. 이후 경찰은 촛불집회 진영의 압력으로 집계를 발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태극기집회에 대한 언론의 철저한 외면 속에서도 언론과 검찰 특검 국회가 주도한 대통령 탄핵소추에 분노한 시민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경이로운 기록이었다. 초반에 노년층 위주의 집회에서 젊은 층과 여성이 대폭 늘어나 진정한 대중 집회의 면모를 띠기 시작했다는 점도 특이점이다.

강추위가 기승을 떨쳤던 1월 14일에도 대학로 일대에서 열린 태극기집회 시민들의 애국 열기는 감출 수 없었다. 주최 측은 120만 명이 모였다고 발표했다. 태극기집회가 촛불집회를 압도하기 시작하면서 <체감온도 영하 13도, 촛불도 태극기도 뜨거웠다(머니투데이)>, <한파가 몰아쳐도 태극기, 촛불 모두 열기 뜨겁다(에너지경제)> 등 언론의 태도도 조금씩 달라질 기미를 보였다.

대통령 탄핵정국이 끝날 때까지 태극기와 촛불의 대결 구도는 이어질 전망이다. 태극기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면서 촛불을 끈 형국이다. 꺼져가는 촛불집회에선 정치 구호가 커지는 반면 태극기집회에선 체제 수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초반 기세를 역전한 태극기 민심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촛불 여론을 극복해 민심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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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국민 2017-02-12 09:09:12
로동신문과 별다를 바 없는 개솔 집어쳐라

2017-02-04 18:22:21
? 개소리도 정성껏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