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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 받고 떠난 오바마, 그가 남긴 상처들

이상민 미래한국 기자l승인2017.02.03l수정2017.02.0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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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미래한국 기자  proactive09@gmail.com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8년 동안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남긴 최대 유산(legacy)은 무엇일까? 오바마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높은 인기를 유지했고, 퇴임 고별연설에서도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8년 임기 중에 미국사회 안팎에 큰 영향을 미친 행적도 적지 않았다.

▲ 오바마 대통령은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 권익 보호를 과거 여성, 흑인들의 보호처럼 핍박받는 소수의 인권 보호차원에서 추진해왔다.

그가 남긴 다양한 국내외 정책들 가운데 미국사회와 국제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을 꼽으라면 미 국내적으로는 동성결혼 합법화, 국제적으로는 시리아 참사 악화시킨 중동 방치라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 중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 권익을 가장 적극적으로 보호, 증진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성결혼 선봉 지지국 된 미국

 그는 2009년 1월 취임 후 미 대통령 중 처음으로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를 백악관에 초대했다. 그해 10월에는 인종, 피부색, 출신국을 이유로 어떤 사람을 혐오해 피해주는 것을 금지하는 혐오방지법(차별금지법)에 성적 성향, 성 정체성을 추가해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에 대한 차별을 법으로 금지했다. 2011년에는 동성애자들이 군대에서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밝히지 못하게 한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 정책을 폐기했고 국제적으로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 권익을 위해 싸우라고 미국 외교관들에게 지시했다.

 2012년 5월 그는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동성결혼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해 7월 오바마 대통령이 속한 민주당은 결혼을 한 남자와 한 여자 간 결합이라고 정의한 연방법인 결혼보호법 폐지를 정강으로 채택했고 법무부는 이 결혼보호법이 합헌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철회했다. 2012년 대선 승리로 재임에 성공한 오바마 대통령은 2013년 1월 취임식에서 동성애자들이 동등한 권리를 받아야 한다며 동성애를 지지한다고 취임사에서 강조했다. 미 역대 대통령 중 취임사에서 동성애자 권익을 언급한 경우는 오바마 대통령이 처음이다.

 그는 당시 “동성애자 형제와 자매들이 법 아래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을 때까지 우리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정말 동등하게 창조되었다면 우리가 서로에게 약속하는 사랑 역시 동등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 권익 보호를 과거 여성, 흑인들의 권익 보호처럼 핍박받는 소수의 인권 보호 차원에서 추진해왔다. 그는 2013년 취임사에서 “우리 모두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이 자명한 진리는 지금도 우리를 안내하는 별”이라며 “그것은 세네카 폴스(Seneca Falls), 셀마(Selma), 스톤월(Stonewall)을 통해 우리의 선조들을 인도했던 것과 같다”고 말했다.

▲ 시리아 난민들

 세네카 폴스는 1848년 여성운동가들이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다는 선언문을 발표한 집회가 열렸던 뉴욕의 한 지명으로 이 선언문은 여성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셀마는 알라바마의 한 도시명으로 1965년 이곳에서 젊은 흑인 남자가 경찰에 사망하면서 흑인인종차별 철폐에 대한 전국적인 시위를 가져왔다. 스톤월은 뉴욕시의 한 게이 술집 이름으로 1969년 이곳을 습격한 경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면서 동성애자 권리 운동의 단초가 되었다.

‘남녀간 결합만을 인정한 결혼보호법은 위헌’

 오바마 대통령은 2013년 4월에는 프로농구(NBA) 선수 제이슨 콜린스가 현역 미국 프로운동선수 중 처음으로 자신이 게이(gay)라고 밝히자 그에게 전화해 ‘용기에 감명을 받았다’고 격려해 화제가 되었다. 그해 6월 연방대법원은 결혼을 한 남자와 한 여자 간 결합이라고 정의한 연방법인 ‘결혼보호법’을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의 숙원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판결 직후 뉴욕에 거주하는 에디스 윈저라는 레즈비언에게 전화했다. 당시 83세의 윈저는 결혼보호법이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한 장본인이다. 그녀는 42년 간 동거했던 자신의 파트너인 한 레즈비언이 2009년 사망하면서 부동산을 유산으로 받았다. 하지만 국세청(IRS)은 결혼보호법에 따라 윈저를 사망인의 배우자로 인정하지 않았고 유산에 대한 세금으로 36만3050달러를 부과했다.

 윈저는 이성결혼한 사람들은 배우자가 죽으면 배우자 세금감면 혜택으로 이 세금을 내지 않는다며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결혼보호법에 따른 차별이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연방대법원은 결혼보호법 때문에 이성결혼한 사람들이 누리는 감세 등의 혜택을 동성결혼한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것은 평등이라는 헌법 가치에 위배되는 차별이라며 결혼보호법을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윈저는 오바마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는 “누구세요? 오! 버락 오바마? 나는 당신에게 감사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커밍아웃(Coming-out; 동성결혼 공개지지)이 이 나라에 큰 차이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 합법을 판결한 2015년 6월 26일. 오바마 대통령은 이 판결을 두고 ‘미국의 승리’라고 환호하며 이날 백악관을 동성애자, 성전환자, 양성애자들을 상징하는 무지개색 조명으로 비추며 축하했다.

▲ 미국인의 동성결혼 지지율 변화

 그는 동성애자, 성전환자, 양성애자들의 권리 확산을 위해 125차례 규제와 정책을 마련했고 공개적으로 동성애자, 성전환자, 양성애자라고 말한 250명을 연방공무원 자리에 앉힌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동성애자 권리운동의 단초가 된 뉴욕시 스톤월 게이 술집을 국가기념지로 지정했고 지난해 11월에는 1997년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코미디언 엘렌 드제너러스에게 그녀의 용기를 칭찬한다며 미국 민간인이 받는 최고의 훈장인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수여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런 적극적인 활약으로 그의 재임기간 중 동성결혼에 대한 대다수 미국인들의 시각은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동에서 미국의 발을 철저하게 뺌으로 시리아 비극을 악화시키며 중동에서 미국의 입지를 대폭 축소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종결하고 두 지역에서 미군을 철수시키는 것을 약속하고 대통령이 되었다. 2003년 이라크전을 시작으로 미국은 그동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1조6000억 달러를 지출했고 6900여 명의 미군이 사망했다. 이렇게 엄청난 투자를 하며 지난 15년 동안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했지만 지역 내 안정은 요원하고 이른바 ‘중동의 영원한 분쟁’을 해결하는 데 미국의 힘의 한계를 느끼며 그는 미 지상군을 중동에 파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만신창이 된 시리아 정책
 
그 가운데 2011년 3월 시리아 내전이 터졌다. 이른바 ‘아랍의 봄’ 연장선으로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독재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면서 시작된 것이다. 내전이 전개되면서 러시아, 이란, 헤즈볼라는 아사드 정권을 지원했고 반군 세력은 카타르, 사우디 아라비아 등의 지원을 받으며 내전은 이해 관계국들의 대리전 성격을 띠게 되었는데 이 때 오바마 대통령의 입장은 냉담한 중립이었다. 무고한 민간인들까지 죽이는 아사드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시리아 반군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컸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

 2012년 8월에 가서야 오바마 행정부는 시리아 반군 지원으로 방향을 잡고 통신시설, 인도적 물품 등 비군사적 지원을 결정했다. 그리고 당시 반군을 향해 화학무기를 쓰고 있다는 아사드 정권을 향해 화학무기를 사용하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화학무기 사용을 ‘금지선’(red line)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아사드 정권은  1년 뒤인 2013년 8월 21일  화학무기인 사린 독가스를 사용해 어린이 400여 명을 포함해 1400여 명의 시리아인들을 죽였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노발대발했다. 아사드 정권이 미국이 분명히 정한 금지선을 어기고 무고한 어린이까지 화학무기로 죽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책임을 물어 제한적인 군사공격을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당시 “독재자가 수백 명의 아이들을 죽였는데도 아무런 벌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메시지를 세계에 전달하겠는가? 미국은 다마스커스에서 일어난 것에 눈을 감을 수 없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지만 그 어떤 나라보다 이 책임을 지려고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군사 공격 결정권을 의회에 넘기는 의외의 조치를 내렸다. 당시 UN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한 제재가 러시아와 중국의 거부로 무산되고 영국 의회에서 시리아 정권에 대한 영국 군사력 사용이 거부당하고 미 국내 여론도 반대하는 분위기가 크자 흔들린 것이다. 의회는 엉겹결에 받은 시리아 공습안을 두고 의논을 시작하다 시리아가 모든 화학무기를 폐기하도록 하면 어떻겠느냐는 러시아의 중재를 오바마 행정부가 받아들이면서 아사드 정권에 대한 처벌적 군사공격은 없었던 일이 되어버렸다.

▲ 2015년 6월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이 나오자 동성애자들이 무지개색 조명이 비치는 백악관 앞에서 축하하고 있다.

 이 일로 세계경찰국이라는 미국의 이미지는 실추되었다. 오바마 대통령 밑에서 국방장관을 했던 리언 파네타는 “그것은 미국에 대한 신뢰도에 큰 타격이었다”며 “군최고통수권자로 대통령이 한계선을 그었으면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세계에 잘못된 메시지를 보냈다”고 회고록에서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3년 9월 미국은 더 이상 세계 경찰국가이 아니라며 중동에서 발을 뺀 이유를 밝혔다. 그 공백에 IS가 들어왔고 지금은 러시아가 들어왔으며 이란이 일어서고 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이 다시 나오고 있다는 것이 그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그 가운데 25만 명의 시리아인들이 죽었고 400만 명의 시리아인들은 집을 떠나 주변국인 터키, 레바논, 요르단 난민촌에 모여 살고 있다. 이들은 내전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야지 라는 기대를 갖고 나왔지만 내전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난민촌에 희망이 없자 유럽으로 떠나기 시작해 지금 유럽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난민 유입이라는 사태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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