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삼성합병 찬성 부당했나? 정치 논리로 삼성·대통령 엮으려는 특검
국민연금, 삼성합병 찬성 부당했나? 정치 논리로 삼성·대통령 엮으려는 특검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7.02.04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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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찬성이 경제논리가 아니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특혜를 주고 대통령이 사익을 챙기려했다는 주장을 특검이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기업의 경영과 경제원리를 전혀 모르는 특검의 무리한 판단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가진 수사의 방향이 아닌가 의심을 자아내고 있다.

▲ 1997년 국제투기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를 설립한 폴 엘리엇 싱어 / http://www.wikiwand.com

2015년 5월 삼성이 합병 결정을 발표한 다음날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이 합병에 반대하며 반대세력을 결집했다. 삼성물산 지분을 7.12%까지 매집한 엘리엇은 합병을 막기 위해 합병결의금지 가처분신청까지 내기도 했다. 이후 양측 간의 일진일퇴 공방이 거듭된 후 7월 10일 국민연금의 찬성 결정으로 일단락된다. 표면적 양상은 엘리엇펀드의 ‘합병 반대’였지만, 엘리엇의 요구는 ‘합병을 하려면 합병비율을 조정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엘리엇은 1 대 0.35로 결정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공정’하게 산정됐다며 1 대 1.6의 합병 비율이 공정하다고 주장했다. 엘리엇은 그 근거로 한영회계법인이 계산했다는 자산가치 비교를 사용했다. 삼성물산의 주가가 제일모직에 비해 5배 정도나 ‘저평가’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합병을 무산시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문제는 한국 기업들이 합병 비율을 결정할 때 회계법인에서 산정한 자산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재량권이 있다면 엘리엇의 주장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국내법에서는 이런 재량권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었다. 당시 이 문제를 심도 있게 관찰했던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 교수는 “국내 기업들이 합병 비율을 정할 때는 자산가치를 사용하지 않는다. 시장가치만 적용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기업 인수합병은 합병 발표 1개월 전, 1주일 전, 하루 전의 3가지 종가를 산술평균해서 구하도록 되어 있다. 주식가격은 자산가치만이 아니라 기업의 성장성, 이익성 등의 여러 지표가 종합적으로 반영된 최종 결과물이니 이것이 기업 가치를 결정하는 데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 신장섭 교수의 설명이다. 따라서 자산가치만을 이유로 엘리엇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이 불공정하다는 주장은 기업의 인수합병 시장의 원리를 무시하는 요구였다고 할 수 있다.

엘리엇펀드의 부당한 합병비율 요구

엘리엇은 당시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의 이익이 침해됐다고 주장했지만, 그 근거는 정당한 것이 아니었다. 엘리엇은 당시 이미 상당한 주식 평가이익을 얻고 있었다. 엘리엇은 자신들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한 1 대 0.35 비율에 따라 합병하겠다는 발표만으로 55,300원에 머물러 있던 주가가 5월 26일 63,500원으로 뛰어올랐다. 주주들은 하루 만에 15% 가량의 수익을 올렸다. 신장섭 교수는 “제일모직의 실질적 지주회사 프리미엄에 삼성물산이 편승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삼성물산 주가는 엘리엇과 삼성 간의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6월 8일 최고치인 72,200원(30.5% 수익률)을 기록한 뒤, 삼성이 자사주 매각을 통해 합병 성사 가능성을 높이자 합병 발표 때의 수준으로 떨어졌다. 6월 29일 삼성물산 주가는 66,400원으로 주주들은 한 달 가량의 기간에 20.1%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엘리엇도 당시에 이미 1,000억 원이 넘는 시세 차익을 거둔 것으로 추산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엘리엇이 주장하는 ‘주주이익 침해’는 그 실체가 무엇이었을까. 엘리엇이 주장하는 주주이익이란 합병비율 1 대 1.6이 공정하니 삼성물산 주가가 합병 발표 전에 비해 5배가량은 올라야만 공정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자신들은 이 수익을 바라보고 투자했는데 겨우 15%만 올랐으니까 주주이익이 침해됐다는 주장이었다. 이 주장은 삼성물산이 고의로 주가를 저평가 시켰다는 근거가 있어야 정당성을 얻는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의 눈이 살아 있는 한국증권시장에서 그런 주가조작은 가능할 수 없다.

신장섭 교수는 엘리엇의 이러한 행태를 ‘알박기’로 정의한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에 장기투자하고 있던 주주가 아니었으며 2014년까지는 삼성물산의 주주명부에 등재되지 않았다. 엘리엇은 삼성그룹의 3세 승계 방향이 드러나면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의 합병 물밑 작업이 진행되던 2015년 3월경부터 삼성물산 주식을 매집했다. 합병계획 발표 직전까지 공시의무 지분율 5%에 살짝 미치지 못하는 4.95%를 갖고 있다가 합병 발표와 함께 지분율을 7.12%로 올리며 제3대 주주로 떠올랐다. 그리고 합병 반대 입장을 천명했던 점이 그 이유다.

“엘리엇은 처음부터 3세 승계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철학을 가진 주주가 아니었다. 그런 철학을 가진 펀드라면 삼성그룹 주식에 처음부터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다. 엘리엇은 오히려 삼성그룹의 승계 작업을 볼모로 삼는 ‘알박기’를 하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누구보다 빨리 하고 과감히 뛰어든 투자자라고 할 수 있다.” 신장섭 교수의 주장이다.

엘리엇의 이러한 ‘알박기’ 투자 행태는 이미 악명이 높았다. 그래서 벌처펀드, 즉 썩은 고기를 먹는 약탈투자자라는 명칭을 갖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합병이 무산되었을 경우, 엘리엇은 취약한 삼성의 경영권을 노리고 합병무산으로 인한 실망매물로 쏟아지는 삼성물산의 주식을 대거 매집해 삼성전자에 대한 경영권 공격으로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당시 기관투자자들간에 대세였다. 삼성물산이 대량보유한 삼성전자의 주식 때문이었다.

실제로 채준구 국민연금 리서치팀장도 양사 합병에 대한 회의 시 “엘리엇 공시 이후 합병 성사 가능성이 100% 아닌 것으로 보여 제일모직을 일부 줄이고 삼성물산을 늘렸다”며 “합병 무산 시 지분 경쟁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삼성물산 주가가 강세를 보일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한 바 있다.

‘국제 알박기 펀드’ 엘리엇의 투자 행태

 엘리엇의 과거 투자 행태를 조사한 신장섭 교수는 ‘엘리엇이 해당 기업이나 나라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행동과는 거리가 크게 떨어져 있다’고 말한다. 엘리엇이 해외에서 큰돈을 번 여러 가지 사례들은 알박기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엘리엇이 벌처펀드라는 명칭을 얻게 된 곳은 페루였다. 1980년대 브래디 미 재무장관과 채권 은행, 중남미 국가들은 이 10년 가까운 산고(産苦) 끝에 ‘브래디 플랜(Brady Plan)’을 도출했다.

중남미 국가들의 부채를 탕감해주고 성장으로 복귀하도록 도와줘서 과실을 나눈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엘리엇은 1996년에 부도가 났던 액면가 2070만 달러 페루채권을 1140만 달러에 샀다. 그리고 페루가 그동안 내지 않은 이자까지 합쳐서 5800만 달러를 지급하지 않으면 브래디 플랜이 집행되지 못하도록 하는 소송을 냈다.

그런데 뉴욕 법원은 엘리엇의 손을 들어줬고 페루 정부는 전액을 물어줬다. 탐사보도전문기자인 그레그 팰러스트(Greg Palast)는 페루 정부가 돈을 내놓지 않으니까 엘리엇은 후지모리 대통령이 일본으로 도피할 때에 대통령 전용기를 붙잡아 놓고 페루 재무장관에게 전액을 지급하라는 대통령 지시를 얻어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엘리엇은 아르헨티나에서는 ‘알박기 판’을 더 크게 벌였다. 팰러스트에 따르면, 엘리엇은 액면가 6억3000만 달러 채권을 7% 정도 밖에 안 되는 4800만 달러에 매입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정부에게 이자까지 합쳐서 23억 달러(약 2조5000억 원)를 내놓으라고 소송을 했다.

뉴욕 법원은 아르헨티나가 16억 달러를 엘리엇에게 물어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아르헨티나가 지급을 거부하니까 전무후무한 실력 행사를 했다. 아프리카 가나의 해안에 들어온 아르헨티나 군함 ARA 리베르타드(ARA Libertad)를 압류하고 아르헨티나 정부가 돈을 내놓지 않으면 군함을 갖고 갖겠다고 협박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엘리엇뿐만 아니라 다른 펀드들까지 달려들어 국제기구나 선진국들이 기아(飢餓)나 용수(用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조해주는 돈마저도 채무 갚는 데 먼저 써야 한다며 지급을 중단시켰다. 해당국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원조금을 받기 위해 벌처펀드들의 요구를 들어줬다. 국제원조자금을 볼모로 삼은 ‘알박기’라고 할 수 있다. 팰러스트는 엘리엇이 콩고에서 이런 방법으로 2000만 달러에 산 부실채권으로 9000만 달러를 받아냈다고 지적한다.

엘리엇은 미국 내에서도 이런 ‘알박기’ 투자를 감행했다. 2008-9년 세계금융위기로 제너럴모터스(GM)가 파산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자회사였던 델파이(Delphi Automotive)를 헤지펀드 폴슨(Paulson & Co.) 및 서드포인트(Third Point)와 함께 헐값에 매집했다. 당시 미국 정부에서 GM회생작업을 총괄하던 스티브 래트너(Steve Rattner)는 이 펀드들이 델파이의 채무를 탕감해주고 자금을 지원해주지 않으면 “GM이 문을 닫게 만들겠다”고 압력을 넣었다고 회고한다.

델파이로부터의 안정적인 부품 공급 없이는 GM이 굴러갈 수 없다는 약점을 알고 GM 회생작업에 ‘알박기’를 했다고 할 수 있다. 팰러스트는 미국 정부와 GM이 헤지펀드들의 요구 사항을 거의 다 들어줬고, 엘리엇은 델파이를 재상장시켜서 12억9000만 달러(약 1조5000억 원)의 이익을 챙겼다고 말한다.

특검의 ‘삼성 특혜’ 주장은 삼성도 이러한 국제 알박기 투기펀드에게 그 경영권이든 무엇이든 넘겨줬어야 한다는 것과 같다. 삼성합병이 무산되었다면 그 다음 목표는 삼성전자의 경영권이라는 기관투자자들의 전망에 대해 특검과 같은 존재는 도저히 감도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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