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비욘드 뉴스(Beyond News) 지혜의 저널리즘
[서평] 비욘드 뉴스(Beyond News) 지혜의 저널리즘
  • 김민성 기자
  • 승인 2017.02.27 05: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널리즘은 왜 실패했나? 관점의 실패다. 대책안은 무엇인가? 해석과 분석이다. 무엇이 달라지나? 맥락을 뚫어라.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라

뉴스의 기본 플랫폼은 웹과 모바일로 넘어갔다. 온갖 매체에서 쉴 새 없이 ‘사실(fact)’이 쏟아진다. 저널리스트의 역할도 달라졌다. 사실만 따라다녀서는 경쟁력이 없다.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현명한 인식을 제공해야 한다.

사실, 뉴스는 출발부터 원래 그랬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활약하던 18세기, 초기 뉴스 전달자들은 사건의 맥락과 현명한 인식을 제공해 주는 것을 최대 경쟁 포인트로 삼았다. 대중 저널리즘이 본격화되기 전인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단순한 사실 보도는 기자들에게는 너무 저급한 일이란 인식이 팽배했을 정도였다. 

스티븐스는 사실 보도에 집착하는 전통 저널리즘에 대해 가차 없는 비판의 칼날을 휘두른다. 이 지점에서 『뉴스의 역사』를 쓴 저자의 내공이 발휘된다. 1950년대 미국을 강타한 매카시 선풍을 비롯한 수많은 부조리의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바로 그 아래에 관점과 맥락이 실종된 저널리즘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관행을 ‘맹목적 인용 저널리즘’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아예, 최근 수십 년 동안 미국 저널리즘이 실패한 건 ‘관점의 실패’였다고 꼬집는다. 사실을 쫓아다니기에 바쁜 기자들이 분석과 전망을 보여 주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인터넷 덕분에 또 다시, 사실 전달자 대신 뉴스에 대한 분석과 해석이 중요해졌다. 저자는 이렇게 달라진 지형도를 ‘지혜의 저널리즘(wisdom journalism)’이라 부르고 있다. 지혜의 저널리즘이란 세계를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을 한층 강화해 줄 수 있는 저널리즘을 의미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같은 전통적인 육하원칙의 중요성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대신 ‘왜’란 질문이 더 중요해졌다.

큰 사건이 발생할 경우, 신문이 배달되거나 저녁 뉴스를 할 때쯤이면 이미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다. 이때 기자들은 어떤 뉴스를 전해 줘야 할까? 어떻게 해야 독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 있을까? 어떻게 ‘지혜의 저널리스트’를 육성할 수 있을까? 이 책 『비욘드 뉴스, 지혜의 저널리즘』이 바로 이 질문들에 답한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