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체제와 역사속의 국민저항권
2017체제와 역사속의 국민저항권
  • 이주천 원광대 사학과 교수·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7.03.08 09: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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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참가자들이나 촛불 참가자들 모두 탄핵 결과가 바라는 대로 나지 않으면, 국민저항권을 발동하겠다고 외친다. 탄핵이 기각되면 촛불세력 쪽에서, 탄핵이 인용되면 태극기 쪽에서 국민저항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해방정국의 찬탁 반탁,  찬탄 반탄으로 재현

지난해 가을, 언론에 의해서 무지비하고도 무차별적으로 제기된 최순실국정농단 의혹은 급기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로 이어졌고, 헌재의 결정만을 남겨두고 있다. 수용과 기각 여부는 3월 13일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이하 대행)의 퇴임 이전에 결판이 날 것으로 예상한다.

이정미 대행의 서두르는 모습이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여파로 태극기세력은 극도로 긴장하고 있다. 헌재의 통진당 해산결정에는 1년 이상의 긴 시간을 소모했던 것에 비교하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 여부는 너무 서둔다는 인상이 역력하다.

정유년 봄은 가까이 다가왔지만 헌재의 수용, 기각 여부를 놓고 몸집을 불린 태극기세력과 국회탄핵소추를 이끌어내 여유가 생긴 촛불세력의 힘겨루기 양상이 더 심해지면서 양측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마치 해방정국에서 신탁통치안을 놓고 찬탁(贊託) 대 반탁(反託)의 국론분열이 다시 찬탄(贊彈) 대 반탄(反彈)으로 재생된 느낌이다.

▲ 탄핵이 기각되면 촛불세력 쪽에서, 탄핵이 인용되면 태극기 쪽에서 '국민저항권'을 행사하겠다고 한다. 마치 해방정국에서 신탁통치안을 놓고 '찬탁 대 반탁'의 국논분열이 다시 '찬탄 대 반탄'으로 재생된 느낌이다. / 백요셉 미래한국 기자

태극기세력은 몇 차례의 집회에서 “만약 수용이 되면, 국민저항권 발동을 불사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편 국회의 탄핵소추로 1차 판정승을 거둔 촛불세력은 헌재가 기각해도 이번 대선은 ‘필승’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기에 태극기세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세적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역시 ‘시민혁명’ 운운과 국민저항권 불사를 언급했다. 이런 살벌한 분위기에 헌재 재판관들과 수사 기간 동안 특검팀들은 경찰병력의 신변 보호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저항권은 이미 태극기세력에 의해 가동되었다. 작년 겨울 최순실사태 이후 태극기집회에 모인 ‘탄핵 기각’ ‘국회 해산’이란 시민들의 함성과 길거리 행진 등을 우익논객들이 ‘의병’이란 명칭으로 언급했던 것에서 조짐이 나타났다. 의병은 임진왜란이나 일제시대 때 일본군에 대항한 비정규군으로, 지배권력 또는 외부의 위협세력에 대항하는 것이니 ‘관군이 붕괴되었을 때 민간인이 무기를 들고 거병하여 구국 또는 독립전쟁을 할 자유권 내지 저항권’을 말한다.

최근 사례로, 첫째, 올해 1월 중순 태극기세력이 방통심의위(위원장 박효종)를 방문하여 ‘언란(言亂)’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점을 항의하여 점거농성한 사건이고, 둘째로 기습적으로 시청앞 광장 텐트치기를 들 수 있다. 반정부 성토장이 된 광화문의 세월호 천막을 무한정 허용한 서울시에 항의해 세월호 천막을 철거하면 언제든지 시청앞 광장 텐트도 철거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모두 국민저항권의 본격적 사용을 위한 워밍업으로 이해할 수 있다. 탄기국은 현 시국을 고영태 일당에 의한 국가변란사태로 규정하여 ‘국민저항본부' (http://cafe.daum.net/baehojyh201702018)로 개칭하고 본격적으로 국민저항권을 언급했으니 다가온 헌재의 결정에 대한 절박한 심정을 알 수 있다.

개칭 이유는 헌재에 대한 압박카드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그 선언문(2.18)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를 위하여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죽으면 살리라’는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선포하노니, 2017년 2월 18일 오후 2시, 대한민국 헌법 정신에서 보장한 국민저항권을 발동할 것을 선포하고, 이에 국민저항본부를 발족한다.”

그렇다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된 국민저항권이란 무엇이며, 이것을 사용할 수 있는  역사적·헌법적 근거는 도대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가?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비상시국이나 긴박한 정세라고 판단되는 근거는 무엇인가? 또 어떤 수단이 있는가?

원래 저항권(Right of Resistance)은 인간의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탄압하는 독재체제에 대하여 항거하는 국민의 권리를 일컫는다. 우리나라의 헌법에는 저항권의 규정이 따로 없으며, 다만 헌법 전문(前文)에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문구를 삽입함으로써 저항권 명시를 대신하고 있다.

이 문구의 객관적 의미는 저항권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라고 보기 어려우나, 개헌안을 작성한 헌법학자들의 의도가 그 문구를 통해 저항권에 관한 완곡한 표현으로 양해했음을 상기할 때, 저항권에 관한 근거 규정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저항본부, ‘국민저항권’ 선포

이것은 국민의 저항권을 헌법 전문을 통해 보장하고 있다고 보는 것으로, 헌법학계의 다수설이다. 그러나 국민저항권에 관한 근거 규정일 수 없다고 보더라도 그러한 권리가 부인될 수는 없다. 그것은 애당초 자연법에 근거한 인간의 자연권이기 때문이다. 마치, 인권이 헌법에 규정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자연권으로 존재하는 것과 같이, 저항권도 그러한 인권이 있는 이상 그것을 수호하기 위한 자연권으로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고 보는 시각이 고래로부터 존재해 왔다.

자연권 사상을 처음으로 언급한 정치철학자는 로마의 탁월한 웅변가이며 변호사였던 키케로였다. 키케로는 이성의 존재를 긍정하고, 최고의 보편적인 자연의 법칙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 자연의 법칙은 이성 또는 신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으로 인간이 신에 접근할 수 있는 합리적, 그리고 사회적 본질로부터 추출된다는 것이었다. 자연법은 보편성이 있기에 일률적으로 모든 인간을 구속하며 인위법(人爲法)은 자연법의 표현물로서 그 적용이며, 그것은 자연법에서 추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법은 진정한 이성법이며 자연과 합치하는 것으로 모든 인간에 편재하는, 그리고 불가변적(不可變的)이며 영속적인 것이었다. 자연법 하에서 모든 인간은 비록 학식, 지식, 재산에 있어서 불평등하지만, 자연법적 이성을 동일하게 소유하기 때문에 차이가 없이 평등하다는 것이다.

키케로는 정의(상호적 의무의 자각)를 본질적으로 선한 것으로 파악했으며, 국가는 윤리적인 것으로 정의를 달성하기 위한 공동체로 존립하는 것이다. 키케로는 정부와 국가를 개념적으로 분리하였으며, 인민 전체의 궁극적 최고권과 정부의 제한적, 법적 최고권을 구별하였다. 국가 자체 및 그 법률은 언제든지 신법(神法) 또는 자연법에 복종한다는 것이다.

자연법은 인간적 선택이지만 인간에 의한 제도를 초월적 원칙이었다. 그에 있어서 국가권력은 부수적인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실정법의 영역인 시민법에 대하여 만민법이 발전되고, 만민법의 철학적 기초로서 자연법 개념이 확립되었다.

키케로의 자연법 사상은 17세기 후반부터 등장한 계몽사상으로 크게 발전했다. 계몽사상가들은 인간의 이성에 절대적인 신뢰를 가졌다. 그들은 자연법이 지배하는 완전한 사회를 추구해 불평등한 기존의 제도들은 ‘자연의 법’ 내지는 ‘자연의 상태’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타도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계몽사상의 선구자인 존 로크를 거치면서 자연권은 저항권으로 발전했다.

즉 로크는 인민의 권한을 군주에게 위탁했는데, 군주가 인민의 자연권을 유린했을 때, 이에 저항하는 것은 인민의 자연권에 속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로써 저항권이 절대왕정을 타도하는 무기로 활용되었고, 급기야 아메리카 혁명과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시민들의 혁명권 행사로서 역사적 공인을 받게 이르렀다. 즉 혁명권=저항권은 시민혁명 내지 민중봉기의 이데올로기가 된 것이다.

국민저항권 실행 방식은 다양

국민저항권은 19세기 시민혁명의 시대를 거쳐 20세기 초까지는 민중봉기로 인한 무장폭동-시민혁명으로 가는 대의명분을 제공했으나, 1차,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는 각국의 사정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폭력적 방법으로 단식, 자살, 무장폭동 등으로 혁명의 물꼬를 트는 가장 극단적인 수단 등이 있지만, 평화적 방법으로 집단 시위 및 농성, 납세 거부 등의 시민불복종운동이 있었다.

즉 시대가 흐름에 따라 저항권의 양태도 변해가면서 4.19처럼 반드시 힘의 행사로 나타나는 것만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권력에 대한 비판적 복종도 일종의 저항권 행사이다. 독일의 헌법학자 A. 카우프만은 정신적인 영역으로까지 저항권을 끌어들여서 “권력에 대한 비판적 복종을 통해 권력 행사를 수시로 통제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대부분의 헌법학자들은 저항권을 ‘법적 수단에 의해서는 제거할 수 없는 극단적인 불법에 대항할, 최후에 남겨진 자연법 상의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저항권 행사가 ‘법질서의 유지 또는 회복을 위한 헌법보장수단으로서만 인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보수적’이며, 기존의 헌법질서에 반하는 새로운 헌법질서의 창출을 위해서는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 시국을 보는 시각에 큰 차이

그렇다면 과연 현 시국은 국민저항권을 행사할 만큼 위중한 상황인가? 많은 법률전문가들은 국회의 탄핵소추의 절차와 방식에 대해 크게 대립하고 있지만, 국민저항권 행사에서만은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그들은 저항권 행사를 할 만큼의 비상시국은 아니라고 보고 있으며 헌재의 결정에 국민들이 겸허하게 받아들여서 법치주의의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애국시민들의 인식은 법률적 차원과는 다르다. 그 많은 국민들이 주말마다 태극기집회에 참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곤경에 처한 한 정치인을 구제하자는 차원을 넘어 나라가 처한 위기감에 대한 절박한 인식 때문이다.

현 대한민국이 처한 국가적 위기는 그야말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이다. 좌경언론의 일방적 횡포, 탄핵절차상의 오류, 특검의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국회에서 신문의 뉴스를 주요 증거 대상으로 삼아 서둘러 탄핵소추가 의결된 점, 특검의 블랙리스트에 대한 무리한 수사와 구속에서 보여준 수사권 남용 등에서 더 국민들은 분노한다.

외부로부터의 위기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이란 비대칭 전력의 절대적 열세에 처한 안보 위기이며, 내부적 위기는 좌경민주화의 광풍 속에서 암세포(종북좌익과 反체제세력)의 준동과 발호로 인해 국가의 핵심 진지가 그들에게 점령당해서 나라가 붉게 썩어 문드러진 결과 나라가 좌익정권→남북연방제→사회주의화→국가파탄 시나리오가 목전의 현실로 임박함으로 인한 위기 의식의 발로이다.

국민저항권은 ‘기존의 불법 상태를 제거하고 보다 나은 상태로 나아갈 수 있는 일반적인 전기(轉機)를 마련하기에 적합한 시도로 평가받을 수 있을 때’에만 정당화될 수 있고 성공의 가능성도 커지는 것이다. 저항권 행사가 성공해 법치국가적 질서가 회복되면 저항 행위는 소급해 유효한 것으로 정당화되기에 행위자는 무엇보다도 시대정신에 대한 남다른 투철한 역사 인식과 자신의 행위에 대한 각별한 책임감이 필요하다.

이번 국민저항권의 가장 큰 특징은 저항권 행사 대상이 다르다는 점이다. 과거 저항권 행사 대상은 역사적으로 절대왕정이나 행정부 수반 등 기성권력층이었다면, 이번의 경우 여론 보도를 담당한 언론(노조)와 법치주의의 근간을 이뤄야 할 사법부(검찰과 헌재)를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커다란 경종을 울리고 있다.

국민저항권 동원해야 하는 대한민국은 내우외환 상태
 
어쨌든 국민저항권 행사 여부는 태극기 주도세력의 시국관과 결단에 달려 있다. 만약 헌재의 결정이 기각이라면 태극기세력의 중심인 국민저항본부의 국민저항권 발동 의지를 감퇴시킬 수 있을 것인가? 격렬성에서 차이가 나겠지만 탄기국은 애국심의 물꼬를 튼 태극기세력의 여세를 중단시키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종북좌익에 대한 소탕작전이라고 할까 이탈리아 공산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언급한 빼앗긴 ‘진지’에 대한 탈환작전으로 나올 공산이 아주 크다. 그 공세는 좌편향에 찌든 노조에 장악된 언론방송과 전교조에 물든 교육 분야에 집중될 것이지만 태극기 행진에서 ‘국회해산’을 울부짖었듯이 점차 국회를 향한 정치개혁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만약 헌재의 수용 결정으로 분개한 태극기세력이 국민저항권을 행사한다면 그 방법은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 우선 탈법이나 불법이 아닌 헌법적 테두리 내에서 ‘시민불복종운동’ 전개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국민저항본부는 선언문에서 이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평화’적인 방법을 고수해왔지만, 그래서 경시되고 무시되어도 되는 분위기를 용서할 수 없어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완전히 다른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음을 천명한다.”

태극기세력은 87체제에서 착실하게 세금을 내면서 생업에만 종사해온 시민들이 대부분이기에 체계적인 투쟁 경험이 사실상 전무하다. 그러나 3.1운동에서 태극기를 든 한국인들의 비폭력저항운동은 후일 독립운동의 숭고한 씨앗이 되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애국심에 불타고 독이 오른 애국시민들의 헌재 결정에 대한 불만이 어디로 분출할지는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이미 정당정치가 국민적 신뢰를 상실, 붕괴되었고 길거리민심-광장정치가 휩쓰는 이 마당에서 국민저항권의 행사 여부가 대선 정국의 향방과 임박한 2017체제의 주도권 탈환 및 그 성격을 규정할 것은 분명하다.

아무쪼록 8인 헌재위원들의 현명한 판단력이 국민저항권의 구실을 상쇄시켜서 아스팔트의 유혈 참극을 미연에 방지하고 내란의 길목에서 허덕이는 대한민국을 구하는 최후의 버팀목이 될 것을 희망해 본다.

▲ 고려대 사학과, 미 인디어나대 대학원

조지타운대 방문교수, 미주리대 객원교수,

뉴라이트 전국연합 대표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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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2017-03-09 15:25:36
저들이 우리를 광장으로 끌어냇다 아니 우리를 광장으로 나오겠다 태극기는 멈출이유가 없다 우리는 진실을 바탕으로 승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