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행을 피하라
음행을 피하라
  • 미래한국
  • 승인 2003.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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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종교가 신을 모시는 신전을 중히 여긴다. 신의 형상을 그 전에 모시고 있는 종교는 말할 것도 없고, 신의 형상을 그 안에 모시고 있지 않는 종교라도 신전은 중히 여긴다.

유대교도 절세의 화려한 신전을 자랑하던 종교였다. 지혜의 왕 솔로몬이 그 영화의 극을 다하여 그 신을 위하여 지었다는 신전이 그들에게 있었다. 그들이 자랑하던 그 신전이 무너진 이후에 에돔 사람 헤롯이 유대인 통치를 목적으로 46년에 걸쳐 신전을 지어주었다.

신전에 연연해 있던 유대인들에게 나사렛 사람 예수가 외친 한마디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일으키리라.” 그는 신성모독과 아울러 성전훼손 모의죄로 십자가 처형을 받았다.

초대 교회의 충직스러운 집사 스데반도 같은 혐의로 처형되었다. 그를 고소한 자들은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유리에게 전하여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고 외쳤다.

성전은 곧 그리스도 기독교는 아이러니한 종교다. 스데반을 처형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형이 집행되도록 주관했던 청년 사울이 후에 바울이 되어 자신이 대적하였던 그 도를 전하기 시작했다.

그의 전하는 가르침 중의 중요한 하나는 ‘몸이 성전’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신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그 시절에 몸이 성전이라니.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은 사람 손으로 지은 신전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행 17:24) 그에 의하면 유대인의 신전조차도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일 뿐이라는 것이다.

참 성전이신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에도 눈에 보이는 건물 신전에 연연해하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모독이요, 진리를 외면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 그 분이 성전이시며, 그에게 붙은 모든 성도가 성전이란다. 성도는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 안에 거하므로 부인할 수 없는 성전이란다.

성전다운 성결함 있어야 그 때로부터 200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다. 기독교의 진리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바뀌지 않았다면 지금도 여전히 그리스도가 참 성전이요, 그에게 붙은 자들인 성도들이 성전인 것이 분명하다. 건물을 가리켜 신전이라 말하지 않고, 사람을 가리켜 성전이라 하는 가르침에 영계를 향한 눈이 뜨인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신전을 출입하며 옷깃을 여미는 자들이 아니라, 신의 영을 모신 자들로 그 자체가 신의 전이다. 신의 전이라면 신의 전다운 성결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도는 외친다 - “거룩하라!”고. 온 시대가 음란의 물결에 휩쓸려 가던 고린도의 성도들을 향하여 “음행을 피하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고 외친다. 우리 시대에 잘 지은 예배당으로 책임을 다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예배당을 청결케 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인 줄 알고,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자신을 청결케 간직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요 책임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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