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기자의 눈> 월드컵 축구에서 얻은 것
<외신기자의 눈> 월드컵 축구에서 얻은 것
  • 미래한국
  • 승인 2002.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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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오 요시스케 교토통신 서울특파원
▲ 야스오 요시스케 교토통신 서울특파원
열광적인 가두 응원은 문화적 에너지한국인의 자신감 상징 변화 원동력월드컵 축구에서 한국의 활약은 경탄할 대상이다. 아시아에서 처음 4강에 오른 그 힘에 세계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우리들이 취재하면서 더욱 놀란 것은 수백만명의 한국민의 열광적인 응원 모습이다. 이 거대한 응원이 한국대표(선수)의 활약에 커다란 원동력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한국인이 이토록 대군중이 하나가 되어 환희의 함성을 지른 것은 1945년 8월 15일의 해방 때 이후로는 처음있는 일이 아닐까이 열광적인 응원은 어떤 의미에선, 한국인의 의식을 크게 변화시킨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 요소로서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가 붉은 T셔츠, 둘째가 태극기의 패션화, 그리고 응원할 때 부르는 ‘대한민국’과 ‘COREA’ 끝으로 수백만명의 열렬한 가두 응원이다. 한국 전 국토를 붉게 물들인 T셔츠. 붉은색은 과거엔 한국에서 타부시 된 색이었다. 그것은 공산주의를 표상하는 색깔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축구 경기장을, 서울의 광화문을, 서울시청 앞을, 그리고 전국 각지의 큰 길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것이다. 서울 등 대도시의 큰 빌딩에는 커다란 붉은 현수막이 늘어져 있다. 정부종합청사도 그렇다. 하지만, 지금 한국인이 의식하고 있는 ‘붉은색’은 정치적인 색깔이 아니라 스포츠 응원을 위한 색깔이다. 이 붉은 색은 원래 붉은색이 갖는 정열, 열광, 환희, 그리고 태양의 빛남에 상징되는 개방성일 것이다. 붉은 색은 타부(금기)의 색에서 해방돼, 한 국민의 의식을 크게 바꾸는 색(色)으로 변화하였다. 또 한가지 태극기(?極旗)다. 한국에서 국기는 존엄한 것이었다. 그것이 젊은이들의 응원 스타일의 패션으로 화(化)한 것이다. 국가의 권위는 상실된 것이 아닐테지만,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변질하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응원할 때 부르는 ‘대한민국’, ‘COREA’의 합창은 어떤가. 한국의 정식국호인 대한민국. 사람들은 한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란데 과시(誇示)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위대한 한국’이라는 염원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 염원에는, 세계를 향하여 넘쳐흐르는 자신감을 나타내는 한국인의 ‘지금’이 있는 것이다. 일본에 의한 식민통치, 해방 후의 남북분단, 한국전쟁, 그리고 빈곤과 정치적인 암흑. 그 고뇌와 격동을 헤어나와 세계를 향해 그 힘을 보여주는 자신감 넘치는 한국민으로서 날개치고 있는 것 같다. ‘KOREA’가 아니라 ‘COREA’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 연장선상에 있는 일이다. 한국의 영어표기는 본시 ‘COREA’이었다고 한다. 그것이 ‘KOREA’로 바뀐 것은 일본의 식민통치 시대였다는 설(說)도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다만, ‘KOREA’ 보다는 ‘COREA’ 쪽이 뭔가 새로 거듭난 한국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끝으로 500만을 넘는 가두에서의 대응원. 그 열기는 지금까지의 월드컵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무시무시함을 느끼게 한다. 1998년 프랑스 대회에서 프랑스 대표가 우승했을 때는 파리 전체가 거대한 수효의 사람들의 환희로 감싸였다. 하지만 한국처럼 일체감(一體感)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파시즘과 비슷한 이상스럼을 느끼지 않는 바도 아니지만 현장에서 취재하고 있노라면 그런 것(파시즘)과는 전혀 무관, 무연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록음악 콘서트와도 같은 것이고 지극히 문화적인 대중이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봤을 때 스포츠를 통한 거대한 에너지의 방출이라고 하겠다. 그 에너지는 정치하고는 관계가 없는 문화적인 에너지다. 한국이 이처럼 거대한 문화적 에너지를 대방출시킨 것은 역사적으로는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정치와는 관계없었다는 것은 월드컵 기간 중 실시된 지방선거가 증명해주고 있다. 이 에너지는 정치를 향하지 않아서 지방선거는 사상최저의 투표율이었다. 한데 이 문화적인 에너지가 앞으로도 정치적으로 무관하기만 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문화적인 에너지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인의 자신감이 이제부터 모든 분야를 향하여 방출되어 나가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냉전 구도가 여전히 남아있는 한반도를 크게 바꾸는 원동력으로 변할 것이 아닐까.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여 열광하고 있는 대응원을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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