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냐 안철수냐
문재인이냐 안철수냐
  • 남시욱 화정평화재단 이사장
  • 승인 2017.04.1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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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표심이 결정할 대한민국의 운명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파면에 따라 조기 실시되는 19대 대통령선거는 과거에 보지 못하던 진귀한 상황들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박근혜 정권 당시 집권여당이던 새누리당의 붕괴로 그 후신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후보들의 지지도가 땅바닥까지 추락해 4월 10일 현재 두 후보의 지지도를 합해도 10% 미만으로 추락한 점이다.

박근혜 탄핵소추 이전의 새누리당 지지율이 30%를 초과한 점을 감안할 때 최소한 20%의 보수표가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그 원인은 당초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지지하던 보수표가 그의 사퇴로 더불어민주당의 안희정 예비후보로 향했다가 안희정이 당내 경선에서 문재인에게 패하자 그 표가 다시 안철수에게 가버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빈집처럼 되고 말았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이 때문에 이번 대선의 판세는 선거전 초반부터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독주로 나타나더니 이에 불안을 느낀 보수세력이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제2야당인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게 보수표가 이동하기 시작해 그의 지지세가 급상승했다.

▲ 19대 대선이 문재인 더불어 민주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의 양강구도로 흐르고 있다. 보수 표심이 대선의 향방을 결벙할 것으로 추측된다. 사진은 지난 4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회의를 마치고 나서는 두 후보의 모습 / 연합

그 결과 며칠 사이에 문재인의 대세론이 깨지고 19대 대선 판도는 문재인과 안철수 두 야당 후보의 양강구도라는 대선사상 전례 없는 모양으로 바뀌었다. 연합뉴스와 KBS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4월 8~9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다자구도(5당 후보)에서 안철수가  36.8%를 얻고 문재인은 32.7%를 기록해 안철수가 오차범위 내인 4.1% 포인트를 앞섰다.

그런가 하면 한국갤럽이 11~14일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는 안철수가 37%로 40%를 얻은 문재인에 비해 3% 뒤졌으나 오차범위 내 접전양상이어서 여전히 양강 구도가 유지되고 있다. 보수표가 안철수로 이동한다는 의미는 새누리당이 분열해 창당된 두 개의 후계정당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어느 쪽 후보도 당선 가능성을 보이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

이에 따라 문재인을 거부하는 보수 및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 스스로가 ‘차악’(次惡)의 후보인 안철수에게 전략적 투표를 하기로 마음을 정한 것을 의미한다. 지난 9년간 한국의 정치판을 주도해 온 보수우파세력이 최순실국정농단사건을 계기로 소수세력 신세로 변해 캐스팅 보트를 던지는 신세가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지난 3월 31일 자유한국당의 대선주자로 당선된 홍준표 후보는 “이번 대선은 4자구도가 되었다. 좌파(후보) 2명, 얼치기 좌파(후보) 1명, 그리고 나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얼치기 좌파’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양강구도의 한 축인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이다. 앞에서 설명한 연합뉴스와 KBS 공동여론조사에서는 홍준표 자신은 6.5%, 유승민은 1.5% 순이다.
 
스스로 대세론 꺾어지게 한 문재인

그 동안 박근혜 퇴진에 앞장서서 촛불시위의 기수 노릇을 했던 문재인은 국회의 박근혜 탄핵소추결의와 헌법재판소의 재판이 진행되는 기간에 사실상 ‘나홀로 선거운동’에 매진했다. 어떤 타당 후보는 이를 마라톤 경주에 비유해 “문재인은 이미 300미터 쯤 앞서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이 같은 문재인의 독주가 법에 위반되는 ‘사전선거운동’이 아니냐고 말하는 국민들도 없지 않았다. 문재인은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보수우파세력을 ‘가짜 보수’라고 부르면서 청산 대상이라고 역설했다. 문재인의 진보좌파 정권이 들어서는 날 한국은 내부적으로 큰 변화를 맞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수세력에게 인식되었다.

만약 이번에 그가 당선된다면 9년 만에 좌파세력이 정권을 되찾게 되는데 그 정권의 성격은 제2의 노무현정권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보수층의 인식이다. 이 때문에 보수층은 그를 위험한 인물로 간주해 그의 집권에 공포까지 느끼는 경향도 보였다. 이 같은 사태는 보수우파세력의 입장에서 보면-특히 박근혜 탄핵반대 시위현장에서 우파의 상징으로 굳어진 태극기물결을 감안한다면-대한민국의 향후 진로에 변화가 올 수 있는 중대한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보수층이 문재인을 위험시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의 외교안보정책이다. 그는 노무현 정권 당시 청와대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유엔에서의 북한인권결의안 토의 때 미리 북한 당국에 타진한 다음 기권표를 던지도록 결정한 사실이 송민순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으로 밝혀졌다.

문재인은 2012년 18대 대선 때 후보 당시 별안간 남북연방제 실시 방침을 밝혀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가 며칠이 안 되어 남북경제공동체를 제의해 국민들을 불안케 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는 아직 연방제는 끄집어 내지 않았지만 김종인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간곡하게 삭제를 주장했던 서해평화수역설정안을 여전히 당의 정책으로 고수하고 있다.

<문재인이 이끄는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년 동안 박근혜 정권이 이룩했거나 추진해온 통일 안보 외교정책을 대폭 수정 내지 폐기할 기세를 보이고 있다. 언론에 보도되는 소위 ‘ABP’(Anything but Park Geun Hye), 즉 박근혜 외교안보정책은 모조리 폐기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3월 13일 열린 더불어민주당계의 한반도평화포럼에서 임동원 백낙청 정세현 등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외교 안보부처 브레인들은 “박근혜 탄핵은 박 정권이 추진해온 모든 정책의 탄핵을 의미한다. 탄핵된 정부의 정책은 즉시 멈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포럼은 기획위원회 명의의 긴급 논평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주도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 군사 작전하듯 사드 배치를 강행한 한민구 국방부 장관, 개성공단의 문을 닫아버린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그 뒤에서 이들을 조종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이들의 실정은 안보의 불안과 함께 경제의 파탄을 낳았다”고 비난하면서 현 정부의 각 부처 공무원들도 더 이상 ‘부역 행위’를 저지르지 말기를 당부한다”고 경고했다.

‘부역 행위’라는 단어는 박근혜 정부를 불법 정부로 간주하지 않는 한 정상적인 정당민주주의사회에서는 감히 쓸 수 없는 증오심 넘치는 적대적-그리고 한심한-표현이다.
만약 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 하의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 등 기왕의 결정을 유보하거나 폐기한다면 이로 인해 미국 일본 우방들과의 새로운 외교 마찰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 이런 초보적인 외교 상식을 알고 있다면 도저히 벌어질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 대한민국의 한심한 현실이다.

문재인은 지난 3월 11일에는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미국은 “친구”이며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의 근간”이라고 강조하면서도 “미국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사드 배치가 시작된 것을 거론하면서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겠다”며 “기정사실로 만들어 선거에서 정치적 이슈로 만들려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문재인은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해 “북한의 무자비한 독재체제를 싫어한다”면서도 “보다 덜 대결적인 방법(something less confrontational)도 시도해야 한다”고 말해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한 문제 해결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문재인은 “미국에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대목은 이날 회견에서 한 말이 아니라, 지난 1월 출간된 그의 책에서 한 말인 점이 밝혀져 뉴욕타임스가 나중에 ‘잘못된 문맥’이라면서 정정 보도를 했다). 문의 사드 반대 입장과 대선에서 당선되면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가겠다고 언명한 것이 미국 언론에서 특히 주목하고 있는 점이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의하면 미국의 분석가들은 유엔의 대북제재가 실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이 말하는 북한과의 대화는 더 위험하며 북핵 탄두 저장량이 증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대화는 그 대가가 더 비쌀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유엔 대사인 니키 R. 헤일리는 김정은과의 대화는 무의미하며 김정은은 이성적이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월스트리트저널은 문재인이 당선되는 경우 한미관계에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3월 10일자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정부는 차기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크게 걱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일부 관료들은 “차기 한국 정부가 등장할 경우,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완성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고 한국이 경제협력이나 경제지원을 통해 북한을 달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같은 이유로 한국의 차기 정부와 미국의 관계가 2000년대 초 부시 행정부와 노무현 정부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신문은 또한 부시 행정부에서 참모로 일했던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가 “좌측으로 기운 한국 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트럼프 정부와 의견을 다 같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정부는 선제타격론, 전술핵 재배치 등 대북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며 강경노선으로 선회했는데 이 신문은 문재인이 “미국보다는 북한을 먼저 가겠다”고 언급한 것을 소개하면서 대북 정책에 대한 한미 호흡이 잘 맞지 않을 수 있다고 시사했다.

문재인은 4월 초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자 사드 문제에 대해 “북한이 계속 핵 도발을 하고 고도화한다면 사드 배치가 강행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입장을 선회했다. 유승민이 비난한 것처럼 문재인의 이 같은 언행은 신뢰성을 크게 훼손한 것이다.

안철수 후보에 대한 보수의 불안감
 
그렇다면 다수의 보수적 유권자들이 문재인보다는 ‘차악의 후보’라고 인식하고 있는 안철수와 그의 국민의당은 어떤가. 안철수는 지난 4월 10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사드 배치 반대’로 정해져 있는 당론을 철회하도록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안철수가 한·미 양국이 사드 배치를 공식화한 작년에는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했었다고 비판했다.

국민투표 요건이 되지 않을 뿐더러 방어용 군 장비 배치를 국민투표에 부친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였다. 결국 두 달 뒤 “중국이 대북제재를 거부한다면 사드 배치 명분이 생긴다”면서 방향을 틀었고 작년 10월에야 ‘국가 간 합의 존중’이란 입장을 정했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여전히 사드 반대 당론을 유지하고 있다. 안철수는 지난 2월 당론 변경을 추진했다가 당내 햇볕론자들의 반대에 부딪쳐 주저앉고 말았다. 최근 안철수의 지지율 상승으로 집권 가능성이 보이자 국민의당은 다시 당론 변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안철수와 국민의당의 본 모습인지 아직 국민들은 확신을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민의당은 공식적인 정강정책을 보면 좌파정당이라고 하기보다는 중도성향이다. 이 당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의 양 날개로 사회통합을 이룩하여 국가의 중심, 사회의 중심, 국민의 중심을 새롭게 세운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성장과 번영을 위해 공정한 시장경제와 환경정의를 구현한다“고 했다.

안보에 대해서는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안보태세를 강화하여 한반도평화를 관리하고, 7·4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와 10·4선언을 이어받아 한반도의 교류와 협력을 추진하며 과정으로서의 통일과 평화외교를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민의당이 중도정당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이 당이 창당발기선언에서 “국민의당이 낡은 진보와 수구보수를 넘어선 합리적 개혁을 추구한다”고 밝힌 점이다.

이 같은 공식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국민의당이 여전히 과거의 퍼주기식 대북유화론을 옹호하는 햇볕론자들의 고정관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 때문에 보수 표심은 안철수로 쏠리면서도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가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보수세력의 지지를 받아 문재인을 이길지 국제적으로도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은 이번 대선이 주변국들에게도 큰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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