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 강제입원 방지 대책이 오히려 입원중인 환자 강제로 내쫓아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방지 대책이 오히려 입원중인 환자 강제로 내쫓아
  •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7.04.21 12: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월 30일 시행 앞두고 수용환자 대량 퇴거

노한규의 청진기

대통령 선거가 코앞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된 때문인지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대통령 선거에 쏠려 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정신이 온통 대통령 선거에 팔려 있는 지금 우리 사회의 한쪽에서는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병원에 입원 중인 정신질환자들이 많게는 수만 명이 대거 강제퇴원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현재 전국에는 20여만 명 남짓한 정신질환자 중에서 수많은 정신질환자가 2017년 5월 30일까지 한꺼번에 퇴원하게 되는 것이다.

개정 ‘정신건강보건법’은 ‘강제입원’ 조건 강화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입원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뚜렷한 시각이 있다. 하나는 환자의 인권을 우선해서 생각하는 입장이다. 이들은 입원치료의 경우에도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강제입원을 반대한다.

▲ 새로 바뀐 정신건강보건법은 강제입원의 대상이 반드시 ‘자신 또는 타인을 해칠 위험이 있는 경우’라고 규정했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번 정신건강보건법 개정안은 무지와 무책임의 결정체”라고 비판했다.

이와는 달리 환자가 아닌 사람의 인권을 우선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치료가 반드시 필요한데도 치료를 거부하는 정신질환자는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므로 이러한 환자를 강제로 입원시키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정신질환자 중 자발적으로 치료를 받으려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도 연간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약 20만명의 정신질환자 중 자신의 의지로 입원을 한 환자는 그 중 약 1/4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정신질환자의 관리를 규정한 정신건강보건법이 1995년 제정된 이래 강제입원에 대한 규정을 명시해왔다.

환자의 가족(보호의무자) 2인이 동의하고, 정신과 전문의가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환자 본인의 동의가 없더라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2013년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TV 프로그램에서 거액의 이혼소송 중 남편 측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을 당한 어느 여인의 이야기를 방영했다. 사람들은 “멀쩡한 사람도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환자의 가족, 즉 보호의무자에 의해 정신질환자를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도록 규정한 정신보건법 24조가 문제라는 지적이 자연스럽게 일었다.

즉, 비정신질환자라고 하더라도 보호의무자 2인(보호의무자가 1인인 경우에는 1인)이 정신과 의사 1명만 구워삶으면(?) 멀쩡한 사람도 강제 입원시킬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기존의 법률이 악용의 소지가 많다는 여론이 만들어진 것이다. 정치인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김춘진 민주당 의원이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대폭 강화하고 강제입원 규정을 까다롭게 만든 정신장애인복지지원등에관한법률안을 발의했다. 뒤이어 최동익 민주당 의원과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도 유사한 법안을 발의했다. 그런데 이러한 여론에 쐐기를 박는 일이 또 생겼다. 2016년 초에 악한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을 당한 어느 여주인공 이야기를 담은 영화 ‘날 보러와요’가 상영된 것이다.

의사들의 이유 있는 반대

영화 ‘날 보러와요’가 개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2016년 4월 18일, 마침내 정신건강보건법 중 강제입원의 조건을 규정한 제24조 1항이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게 되었다. 이에 정부와 국회는 기존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법안들과 새로운 정부안을 병합해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을 줄여서 ‘정신건강복지법 전부개정안’을 만들었다.

 

이 법안의 취지와 명칭은 언뜻 들으면 정신질환자의 복지를 개선하고,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강제입원 규정을 강화한 것으로 좋은 법으로 착각하기 쉽다. 국회의원들도 그랬던 것 같다. 이 법안은 재석의원 213명 중 210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 날은 2016년 5월 19일이었고 19대 국회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런데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입원 요건을 까다롭게 하고, 입원을 유지하는 것도 까다롭게 바꾼 이 법안의 내용이 알려지자 정신과(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강력히 반발했다.  반발 이유는 크게 턱없이 부족한 심사인력, 엉터리 졸속 심사, 강제입원 대상 축소 등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세부적으로 각각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턱없이 부족한 심사인력 

개정된 법에 의하면 모든 정신질환자는 입원 유지를 위해 입원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연간 약 13만~17만 명의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적정성을 심사하려면 많은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더구나 정부는 그 전문인력을 ‘국공립 정신의료기관 소속 또는 보건복지부장관이 지정하는 정신의료기관 소속으로 한정해 놓았다.

그런데 현재 국공립 정신병원은 전체 정신병원 중에서 3%에 불과하다. 따라서 입원의 필요성 여부를 판정할 국공립 정신병원 소속 정신과 전문의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인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정부는 그 해결책의 하나로 2017년 정신과 전문의 10명을 공중보건의로 배정받아 이들 모두를 4곳의 국립정신병원에 직권으로 배치해서 이 업무를 담당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존에는 정신과 전문의들이 대부분 군의관으로 가고, 2~3명만 공보의로 배치되었는데 이것을 대폭 조정한 것이다.

엉터리 심사

공중보건의 10명을 추가 배치한다고 해도 연간 십수만 건의 입원심사를 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더 심각한 것은 공중보건의사들이 입원심사를 맡게 된다면, 전문의 자격증을 갓 취득한 공중보건의사가 일선의 베테랑 전문의들이 결정한 입원 결정을 심사해야 한다는 난센스가 발생한다.

더욱이 입원심사는 대면진료를 통해 이뤄져야 하는데 대면진료가 불가하다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입원심사를 서류심사로 대신하게 되었다. 환자를 직접 진료한 베테랑 전문의가 ‘입원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을 환자를 진료하지 않은 제3의 의사, 심지어 전문의 자격증을 갓 받은 공중보건의가 심사를 하게 된 것이다.

정신보건법 개정안은 기본적으로 ‘1명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정신질환으로 입원한 환자에 대해 서로 다른 소속 기관 의사의 소견을 강제로 요구하는 경우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제도다.

강제입원 대상 축소

 새로 바뀐 정신건강보건법은 강제입원의 대상에 반드시 ‘자신 또는 타인을 해칠 위험이 있는 경우’라고 규정해 놓았다. 이 조항은 심각한 무슨 문제가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김창윤 전문의는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정신건강복지법은 자해 또는 타해의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강제치료 요건이 된다고 규정하여 망상과 환청이 있고 이상한 행동을 해도 본인은 병이 없다고 생각하여 치료를 거부하면 치료를 시작할 방법이 없습니다. 문제는 실제로 강제입원의 대상이 되는 급성기 조현병, 조울병 환자들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본인이 병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단을 받기 위해 병원에 데려오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개정법에 따르면 경찰이나 구급대는 자해나 타해 우려가 있는 긴급한 상황이 아니면 개입할 수 없습니다. 병적으로 기분이 고양되어 돈을 탕진하고 위법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 발병 초기에 치료를 받으면 증상이 호전될 수 있지만 개정법상으로 증상이 악화되어 자해나 타해 위험성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치료적 개입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국회와 정부 그리고 일부 시민단체들은 의사들의 반발을 무시했다. 의사들이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수입 감소를 우려하기 때문’으로 치부해 버렸다.

입원 중인 정신질환자 한 달 내 한꺼번에 퇴원 예정

국회 본회의 통과를 이틀 앞둔 2016년 5월 17일 강남역에서 묻지마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가 조현병 환자로 알려지면서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 규정을 까다롭게 강화한 정신보건법 개정안 통과는 불투명해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2016년 5월 19일 이 법안은 재석의원 213명 중 210명의 압도적 찬성을 받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런데 사흘 후인 2016년 5월 22일 강남역 살인 사건의 피의자가 조현병(예전 명칭 ‘정신분열증’)을 앓았던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그리고 얼마 전 17세 소녀가 이웃집 8세 소녀를 유괴하여 살인한 후 시신을 훼손한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났고 곧이어 가해자인 17세 소녀가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그러나 선입견과 달리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에 비해 높지 않다.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에 대해 대규모로 장기간 추적 관찰한 결과들은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정신질환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라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필요는 없다. 문제는 정신질환자들이 입원에 대해 자기결정권이라는 권리만큼 또 다른 권리가 치료를 받을 권리, 그리고 올바른 치료를 받을 권리라는 점이다.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은 불과 한 달 후인 2017년 5월 30일 그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제 정신과 의사들은 새로운 규정에 맞추지 못한 환자들에 관해서는 5월 30일 이전에 모두 퇴원 조치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환자들이 강제로 퇴원조치를 당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에도 적극적으로 반대했지만, 법안이 국회를 통과된 후에는 더 큰 목소리로 이 법의 심각한 문제를 지적하는 동시에 법 개정을 요구했다. 정신과 의사들은 입원 전 사법부(또는 준사법 기관) 판단에 의한 입원 제도를 도입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라고 주장한다.

공권력의 도움을 받아 치료 거부 환자에 대한 개입이 용이해지고, 입원 기준이나 해석을 둘러싼 인권 침해 논란도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강제입원을 위한 보호자 요건을 까다롭게 할 이유도 없어진다고 주장한다.

즉 “정신질환 평가는 의사가 하고, 입원 결정은 ‘사법적 판단’으로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들은 “입원이 필요한 정도의 정신질환인지 평가는 의사가 하되 입원 결정은 사법적 판단으로 하는 것이 옳고, 이는 세계적 추세”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치권과 정부는 책임질 일을 하려 들지 않는다.

책임에 관한 것이라면 무조건 민간에게 떠넘기는 것이 대한민국 관료들의 주특기가 아닌가. 국회의원들과 정부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의 치료받을 권리와 인권 보호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그렇다면 국가가 그에 필요한 예산과 인력을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졸속 입법은 그 책임을 또다시 국민에게 미룬 법안이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번 정신건강보건법 개정안은 무지와 무책임의 결정체”라고 비판한다. 필자는 정신과 의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앞으로 할 일은 ‘잘못된 법을 고쳐달라’고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입원해 있던 수만 명의 정신질환자들이 퇴원함에 따른, 그리고 반드시 입원해 있어야 할 환자들이 퇴원함에 따라 발생하는 환자 자신 및 사회적 피해가 오로지 국회와 정부에 있음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바뀐다.” 씁쓸하고 마음 아픈 조언이 아닐 수 없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