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태의 변화편지 - 내가 탐관오리는 아닐까?
김용태의 변화편지 - 내가 탐관오리는 아닐까?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7.04.2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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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태연구소 소장 김용태

19세기 조선후기사회를 설명하는 단어 중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아마도 ‘탐관오리(貪官汚吏)’일 것이다. 백성들은 생활고에 허덕이는데 자기 배만 불리는 관료들을 탐관오리라고 불렀다.

그런데, 우리는 탐관오리라는 말을 너무 극단적인 예로만 생각한다. 즉, 변사또처럼 백성들을 학대하고 쥐어짜면서 사과박스 주고받는 파렴치한 모습만 상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드라마가 연출하는 상황일 뿐이지 실제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원칙에 따라 올바르게 처신하고 청렴결백하게 행동하는 좀비형 탐관오리도 존재하는 것이다. 탐관오리의 개념을 윤리도덕적 측면만 크게 부각하는 것은 우리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도덕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내가 혹시 현대판 탐관오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탐관오리를 도깨비뿔 달고 가렴주구하는 악당의 모습으로만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화적 역사관을 벗어나서 탐관오리의 개념을 현재의 상황에 대입해 본다면 탐관오리는 공무원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인이나 교수나 선생, 종교인 등이 될 수도 있고, 기득권과 제도 내에 안주하면서 자기 자리와 철밥통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포괄하는 것이다.

19세기, 전세계가 불확실성의 소용돌이 속에서 변화를 추진하고 있을 때, 뜻있는 인재들은 귀양보내면서 탐관오리들이 득세하고 어느 나라에 줄댈까 당쟁을 일삼던 조선사회가 결국 몰락했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사회는 200년 전 조선사회와 너무나도 닮아있다. 돈 쫓아다니는 졸부들이 판치고, 자기 몸보신에 급급한 창의성없는 탐관오리들이 변화에 저항하고 있고, 역사의식과 철학없는 정치배들의 공허한 언어들이 우리사회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우물에 가서 숭늉 찾지 말고 우리가 스스로 변화의 노력을 해야 된다. 이기주위와 과욕을 절제하고, 버리고 깨뜨리는 훈련을 통해 딱딱해짐을 경계해야 한다.

내가 탐관오리는 아닐까? 아침에 눈뜨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건 무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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