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인양 지연 의혹을 보도했다가 문재인 후보 측의 항의와 압력에 기사를 삭제하고 사과방송까지 한 SBS의 태도가 논란이 되고 있다.

명백한 오보가 아닌데도 그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은 차기 권력이 유력해 보이는 특정 정치세력의 눈치를 본 것으로, 언론 자유와 독립을 스스로 침해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SBS는 이번 보도와 관련해, 무려 3회에 걸쳐 문 후보 측에 사과를 했다. 전날 보도에 대해 3일 오전 <모닝와이드 1부>에서 ‘해수부를 비판하려던 기사 원래 취지를 보도에 충실히 담지 못해 논란을 일으킨 점을 사과한다’는 회사 차원의 입장을 표명했다.

이날 오후에는 보도본부장 명의로 사과문을 발표한데 이어, 저녁 <8시 뉴스>에서 보도본부장을 겸하고 있는 김성준 앵커는 “세월호 가족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그리고 시청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다시 사과했다.

김 앵커는 “복잡한 사실관계를 명료하게 분리해서 설명하지 못함으로써 (기자의) 발제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다. (해수부 공무원) 인터뷰의 일부 자극적인 표현이 특정 후보에게 근거 없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울 수 있는데도 여과 없이 방송된 점, (후보의) 반론을 싣지 못한 것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 앵커는 “이는 기사 작성과 편집 과정을 철저히 관리하지 못한 결과로서, 게이트키핑(뉴스 결정권자가 뉴스를 취사선택하는 과정) 문제다. 보도책임자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주목할 것은 김 앵커의 사과방송에는 SBS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한 대목이 없다는 점이다. 다만, 전체적인 맥락이 ‘특정 후보에 부정적으로 보도해서 사과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실제, 해당 뉴스를 취재한 SBS 기자는 일부 언론과의 통화에서 ‘해수부 공무원의 멘트는 직접 딴 게 맞느냐’는 질문에 ‘네’라고 답해, 해당 보도가 팩트임을 확인시켜줬다.

SBS 사과문은 지상파 방송사는 물론 조그만 인터넷 매체에서도 보기 드문 이례적인 사과다. 시간도 무려 5분 30초로, 사과방송이 이뤄졌다.

때문에 SBS의 이 같은 굴욕적 태도는 문재인 후보 측의 세월호 인양 지연 정치공작 의혹과 별개로 언론자유의 측면에서 파문이 계속해서 확산되는 형국이다.

SBS 초유의 사과 행보…“SBS 스스로 언론이 아니라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는 이와 관련해 “SBS가 경영 상속을 하는데 가짜 여론조사를 보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 같으니까 겁을 먹었다”고 쓴 소리를 했다.

홍 후보는 4일 오전 경북 안동 유세에서 “(기사 삭제는) SBS가 경영 상속을 해야 하는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 같으니 겁먹고 번복한 것”이라며 “대통령이 되기 전에 방송국을 공격하고, 또 ‘우리가 가짜 뉴스를 보도했다’고 하는 방송국은 정상이냐”라고 했다.

홍 후보는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그 언론사(SBS)도 각종 여론조사 지표가 문 후보가 된다고 판단을 하고 꼬리를 내린 것이라고 본다”며 “나는 그 언론이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건 언론정신, 기자정신에 반하고, 국민 정서에도 이건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SBS는 사장 이하 보도본부장 모두 사퇴를 하고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 조작에 가담한 인사들은 정계 은퇴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우택 상임중앙선대위원장도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당 회의에서 “SBS 의혹 보도 사건은 반드시 진실규명이 돼야 할 패륜적 행태고 정치적 공작”이라며 “어제 8시뉴스에서 무려 5분이 넘는 시간 동안 메인뉴스 앵커가 문 후보에 대해 사과하는 방송을 했다. 마치 권력 앞에 엎드려 용서를 구하는 호소, 정치보복 탄압을 두려워하는 굴종처럼 보였다”고 했다.

신상진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은 “SBS 보도본부장에게 확인한 결과 송영길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항의방문 전 그 뉴스가 나간 직후부터 문 후보 측 관계자들이 엄청 항의전화를 해댔다고 한다”며 “(SBS 측에서) 시청자들이 오해할 소지가 있는 것 같아 방송을 삭제했다 하는데 이해관계자가 항의하면 방송 다 내리냐고 말하니 말을 못하더라”고 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SBS 8뉴스의 ‘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의혹’ 보도에 대한 사과방송을 시청하고 난 뒤 “그러나 저는 지금도 그 중요한 뉴스를 데스크에서 그렇게 체크 했을까 의문”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박 대표는 같은 날 자신의 SNS를 통해 “정략적 이용을 말아 달라는 당부 말씀도 이해를 한다”면서도 “지금까지 지상파 방송 SBS보도에 대한 저의 신뢰성을 의심치 않기에 더욱 그럴 수 밖에(의심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SBS보도와 오거돈 문재인 후보 부산선대위 상임위원장·전 해수부 장관의 동영상과 딱 일치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하겠느냐”며 “이를 반박하고 저와 국민의당 의혹 제기에 인신공격으로 맞서는 민주당과 X빠들의 작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언론계의 비판도 이어졌다. 박한명 미디어펜 논설주간은 이와 관련한 4일자 칼럼에서 과거 김성준 앵커의 발언을 상기시키며, “(김 앵커는) 언론의 책무가 권력 감시라는 것을 강조했다. 언론이 그 책무를 다하지 않아 국정농단 사태의 경고음을 외면하고 소홀히 해, 국가 시스템이 침몰했다고 반성까지 그럴 듯하게 했다”며 “SBS 김 앵커의 반성이 진심이었다면 현재 불과 일주일도 남지 않은 뒤 새롭게 탄생할 정권의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유력 대선 후보를 철저하게 검증하는 것이야말로 국가 시스템 붕괴를 막는 길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 주간은 또한, “심각한 것은 SBS의 태도”라며 “과거 지금의 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이나 그 이전 한나라당 시절 SBS는 우익정당이 편파보도에 항의 좀 하면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무시하기 일쑤였다”면서 “작심하고 의혹을 제기한 것도 아니고 정부 비판한답시고 의혹을 추가한 것 가지고 민주당이 항의하자마자 기사를 삭제하고 사과를 받는 일은 우익정당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단 한 건의, 단 하나의 기사 때문에 문재인에 납작 엎드리고 자기를 부정한 SBS는 스스로 언론이 아니라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한편,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해당 보도와 관련해 SBS 관계자를 대상으로 보도 경위와 인터뷰에 응한 해수부 공무원 신원 등을 조사 중이라고 밝혀 또 다른 논란이 일 전망이다.

선관위는 SBS가 특정 후보와 SBS가 취재원으로 접촉한 해당 공무원이 특정 후보의 낙선을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말했을 가능성 등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선관위 측이 언론사 취재원을 조사하겠다는 대목은, 언론자유 침해 비판을 부를 가능성이 다분해 이를 두고도 파장이 예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