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과학기술 현장의 문제와 정책
새로운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과학기술 현장의 문제와 정책
  • 송치성 한국기계연구원 책임연구원
  • 승인 2017.05.1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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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조직의 안정과 책임자의 업무안정이 보장되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시대를 맞았다. 대한민국은 이념적으로 우파와 좌파, 보수와 진보로 양분되어 있으나 과학기술 발전에 대해서는 한목소리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도 모든 대통령 후보가 과학기술 발전을 강조해 왔고 다양한 정책을 제시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0일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임종석 신임비서실장이 배석한 가운데 제1호 업무지시로 '일자리위원회 설치 및 운영방안'을 하당하고 있다. / 연합

이제는 새로운 대통령이 등장한 후에도 공약이 실행될 것인지 지켜봐야 한다. 이전 선거에서도 후보들은 대부분 과학기술 분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책적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대통령이 되고나면 과학기술 분야는 국가정책 후순위로 밀려나는 고질적인 문제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측면에서는 과학기술계 자체의 리더십 부재로 인한 현장의 나태함과 정부와 연구소간의 수직적인 위계질서, 연구 현장 연구자들의 자율성 부족이 과학기술 분야를 정체시키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 관료는 과학기술에 대한 전문성과 이해 부족 때문에 연구 현장의 일부 전문가들이 연구 과제를 기획평가하지만 운용은 정부가 하고 폴리페서 등에 정책형성과정이 포획되는 기이한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정책적 측면에서, 과거 모든 정부가 과학기술 예산을 증가시켜 왔으나 기대만큼의 결과가 없다는 비판이 있다. 반면 연구 현장에서는 정부의 간섭이 심하고 정권마다 정책이 바뀌기 때문에 좋은 연구 결과가 나오지 못한다는 푸념도 나온다.

필자는 정부 측의 비판이나 연구 현장의 반박 모두가 맞는 말이라고 본다. 그 원인은 과학기술이란 동일한 분야에 근무하는 연구자들조차 평가를 하기 어렵고 행정학에서 평가하는 방식으로 비용과 경제적인 효용의 결과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평가지표가 활용되지만 기초연구의 경우 경제성과는 관련이 없고 당대에는 비판을 받다가 100년 후에 평가를 받는 일도 과학사에는 많이 등장한다. 반면 출연연구소에서 기술개발이란 기초연구 결과를 활용해서 시장지향적인 연구를 하지만 실패를 하는 과정에서 기술력이 축적되는 것인데 평가 기간 동안 축적된 결과가 나타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그동안 정부와 과학기술계는 선진국의 기술을 모방해 산업화시키는 전략을 정책적으로 추구해 왔으나 현실은 선진국의 환경과 토양이 우리와는 다르다. 이제는 모방이 아닌 창조와 창의적인 연구 결과가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요구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연구 인력의 수월성이 선행되어야 하고 연구 수행을 위한 시설 구축과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수월성이나 연구 결과를 평가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정부가 일률적인 지원을 하고 공공적인 기술개발을 장려할 때 비효율은 필연적이지만 대안이 없다. 더구나 정권만 바뀌면 조직이 바뀌고 기관장이 바뀌면서 정치적인 능력이 없으면 직을 수행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연구 환경 개선이나 과학기술자들의 예우는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기관장의 안정적인 임기를 보좌해야 하는 행정직들의 득세가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생산성보다 정치적인 능력이 기관장의 경영 능력으로 연계되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해 차기 대통령이 꼭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정리해본다. 이는 현장과 정책전문가 정부 관료와 정치권이 협조해야 하고 정부와 커뮤니티 시장의 요구를 반영해 대통령이 결단할 때 가능한 것이다.

▲ 정권만 바뀌면 조직이 바뀌고 기관장이 바뀌면서 정치적 능력이 없으면 직을 수행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연구환경 개선이나 과학기술자들에 대한 예우는 소홀해 지기 마련이다. / 11일 오전 서울 SRT 수서역에서 시민들이 열차에서 내리고 있다. / 연합

 1. 조직의 안정

과거 정부에서 과학기술과 관련된 정부조직 개편이 지나치게 자주 있었으나 백년대계를 바라볼 수 있는 정책을 차기 정부에서 만들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조직 측면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더라도 과학기술 분야의 정부 관료와 R&D 관리기관이 축적한 경험과 지식을 잘 활용하도록 전문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부처 간 역할 분담도 명확히 해 갈등이 최소화되도록 과학기술 분야는 창구를 단일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려운 고질적인 문제이다.

 2. 거버넌스 활성화

전통적인 관료사회에서 그들만의 칸막이가 존재하고 과학기술계는 그들끼리의 장벽이 존재하는 현실이다. 기술전문가들이 과학기술 정책 입안에 임기제 공무원으로 참여해서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정부 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대폭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계에 합리적인 질서를 위한 토론과 소통문화가 부재한 현상은 부처와 산하기관이라는 수직적인 행정체계를 수평적인 관계로 바꿀 때 해소가 가능하다. 이는 예산과 인력의 관할 때문인데 새 정부는 과학기술 분야만큼은 정부 부처를 거치지 않고 국회에서 직접 예산을 심의할 수 있도록 미국의 NASA와 같이 제도와 조직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3. 자율과 책임 강화

자율과 책임 강화라는 슬로건으로 출현했던 것이 성과주의예산제도(PBS제도)이다.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지금과 같이 70%의 인건비를 지원해주는 시스템에서 연구 현장은 PBS제도가 악용되는 측면도 있다. 연구원들에게 제공하는 자율이란 그들의 연구방식에 대한 자율성을 의미한다. 개인이 집단에서 자율을 빙자해 방종적인 개별행동을 한다 해도 PBS제도의 부작용으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면 오히려 해악이 더 크다. 수월성이 있는 과학자들을 존중하기 위한 자율이고 제도이지 지원부서나 행정직의 득세를 위한 자율이 아니다.

공공이라는 일률적인 개념을 벗어나 현장의 책임자들에게는 연구과제수행과 관련해서 개인 독재를 일부 허용할 필요가 있으며 자율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인력의 상시 충원과 퇴출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부의 법규정부터 손질할 필요가 있고 기관 특성에 맞는 자율을 부여하고 기관장의 인사와 경영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지금보다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4. 정책의 연속성과 일관성

새로운 정부는 새로운 과학 전담 거버넌스와 과학기술 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좀 더 세밀한 분석과 구체적인 방안을 보여주기 바란다. 녹색성장, 창조경제, 4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정책의 변화가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이 추진될 때 연구 성과는 창출되고 과학기술과 산업은 발전할 수 있다. 알파고가 뜨면 인공지능에 투자하고 포켓몬고가 뜨면 증강현실, 가상현실에 투자하는 정책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고 한 우물을 파는 정책이 필요하며 정책의 연속을 담보할 수 있도록 대통령이 직접 확인할 일이다.

 5. 기관장의 임기보장과 자율성

과학기술 관련 거버넌스와 정책은 유행이나 마케팅 전략으로 결정되어서도 안 되며 많은 전문가의 의견을 취합하고 면밀한 검토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 한번 결정된 과학기술 정책은 바꾸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과학기술 성과는 대통령 임기 5년 내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 그 다음 정부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하고 한 우물을 팔 수 있는 장기적 안목과 정책의 연속성이 추진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정부 출연연구소의 경우 기관장은 정치적인 영향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으며 정부의 외압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미국, 독일, 중국, 일본, 프랑스 등 과학기술 분야 수장들의 임기는 대부분 종신직이거나 10년 이상이 일반적이지만 정권만 바뀌면 수장들이 바뀌는 상황에서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의 외풍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신임 대통령이 직접 구축해주기를 바란다.

 6. 개방적인 생태계 구축

과학기술 분야에서 축적된 기술과 경험은 귀중한 자료이고 활용하기에 따라 경제성이 높은 분야이다. 위에서 언급한 거버넌스 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될 다음 정부에서는 연구소, 기업, 대학 모두가 실험과 탐색 과정에서 쌓인 경험이 효과적인 신제품 개발로 이어지며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일 것이다. 네트워크화된 정보와 지식이 주도해서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디지털 경제는 공급과 수요가 만나 시장을 형성할 때 거래비용과 탐색비용이 최소화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를 위해 데이터의 확보보다는 활용이 더 긴요하고 통합하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기반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 인력, 연구기획평가 등의 분야는 국가안보 등 특수분야를 제외하고는 민간과 해외에도 개방하고 비교우위에 있는 분야는 해외시장 진출을 적극 장려할 필요가 있다. R&D 재정지원은 무작정 늘리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산업발전전략과 국가 전체 R&D는 상호 연계 추진돼야 한다. 민간이 투자를 기피하고 실패가 일어날 수 있는 영역에 R&D를 집중해야 하고 정부가 아닌 민간 위주로 연구과제가 기획평가 되어야 한다. 이 경우 중소기업지원 기술개발자금의 누수가 예상되는 좀비기업이 퇴출되도록 강구할 필요가 있다.

 7. 감사제도와 기관평가의 개편

창조경제가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현실에 맞지 않는 불필요한 감사제도와 연구 현장의 무사안일한 사고가 큰 원인이라고 본다. IT기술이 발달해 있고 전자정부가 실행되는 나라에서 회계제도는 현행 회계사무소의 감사만으로 대체가 가능하고 투명하다. 감사의 목적 중 한 가지는 수행 업무의 목표와 결과를 감사에서 지적받아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있다. 즉 학습 효과가 있는 것인데 기관장을 표적으로 하여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 감사가 있었고 연구 현장과는 괴리된 감사기준을 가지고 실적 위주의 감사를 하는 경우가 있어 왔다.

기관평가의 경우, 모든 연구기관 특성이 다른데 거의 동일한 잣대로 경영성과지표와 실적을 평가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기관평가가 아닌 기관장을 평가하는 제도로 변질되었고 행정력 낭비를 심화시켰다. 이 결과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문제점을 은폐시키면서 실적을 부풀리기 마련이고 대부분의 행정력이 감사와 기관평가에 소모되고 있다. 오히려 비효율과 비능률만 초래하면서 창의와 창조와는 다른 무사안일한 경영을 만들었고 복지부동을 유도했다. 이런 원인은 연구 현장과 괴리된 전문성의 부재 때문이고 고질적인 관료주의의 폐해라고 본다.

 8. 능력주의(Meritocracy)의 정착

자유로운 생각에서 창의성이 나온다고 주장하지만 옛 과학자들은 절망적인 몸부림에서 창의성을 발휘했고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신기술이 실용화 되었던 역사도 기억해야 한다. 자기 앞에 주어진 과제 앞에서 절망적인 몸부림 때문에 창의성이 발휘된 예는 과학기술사에 수없이 많다.

인력과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연구개발 분야에 뭔가를 새롭게 시도하려다가 문제가 되기보다는 적당히 또는 감사에 지적받지 않으면 이상이 없는 현행 제도에는 문제점이 있다. 냉철한 이성과 윤리가 선행되어야 하는 과학기술계에 적당주의와 포퓰리즘이 존재하고 우리끼리 식의 폐쇄적인 칸막이가 존재하면서 나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사고가 있다면 강제적으로라도 개혁이 필요한 부분이다. 관치가 만든 부작용이고 공유지의 비극이기도 하다.

그 결과 적당히 나눠먹기가 존재하고 수월성이나 또는 다르게 일하는 사람들은 따돌림을 당하기 쉬운 현실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안정적인 직장 때문에 오히려 경쟁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게 된다. 반면 직업의 안정성이 흔들리면 자신의 입지를 위해 비윤리적인 행위와 성과를 위장할 수도 있고 연구원들의 평판을 무너뜨릴 수 있다.

대안으로 직업의 안정성과 기본급을 어느 정도 보장해주고 인센티브 시스템을 더 강화시킬 필요가 있으며 무능력자들이 최소한으로 퇴출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능력과 수월성에 따른 대우가 지금보다 더욱 더 차별화되어야 한다.

 9. 연구비 통합관리

각 부처마다 산재한 연구비 관련 집행기관을 통합 일원화시킬 필요가 있으며 서식을 간소화시켜야 한다. 연구소의 행정인력과 연구원들의 40% 업무가 연구비 예산과 감사, 신규과제 발굴에 노동력이 소모되고 있다면 구조적으로 심각한 문제이다. 인력, 예산의 낭비를 줄이고 효율을 높이기 위한 제도와 행정 개혁이 필요하다. 정부감사나 예산관리기관이 아닌 전문회계사무소에 일임해서 신속하고 투명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10. 관변단체 통폐합

과학기술진흥을 빙자해서 또한 창조경제를 내세워서 부처의 산하기관을 만들어 왔다. 그들은 정부의 관변단체 역할을 해왔지 연구기관이나 실질적인 지원기관이 아니다. 퇴직 관료들의 자리를 위한 역할이 크고 그들이 내세우는 구호만큼 사회적 역할을 다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이들 기관의 운영비는 과학기술 예산으로 지원되지만 현장의 연구와는 관련이 없다. NGO역할도 못하고 있고 과학기술인들의 권익을 위한 실적도 없으면서 과학기술인을 위한 단체인양 포장해 정책을 내세우는 단체들부터 폐지시킬 필요가 있다. 진정한 NGO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자생적이며 수요자와 시장지향적인 임무를 수행하도록 개편되어야 할 것이다.

송치성 한국기계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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