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 대북전략 ‘최대 압박과 개입’ 그 실체는?
트럼프 정부 대북전략 ‘최대 압박과 개입’ 그 실체는?
  •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17.05.1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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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개입’과 미국의 ‘개입’ 뉘앙스 큰 차이…지난 20년 美의 대중전략 봐야

1996년 美외교가를 휩쓴 단어 ‘봉쇄’와 ‘개입’

1921년 설립된 미국 외교협회(Council of Foreign Relations, CFR)는 미국 내외에서 “미국 외교정책을 좌우하는 곳”으로 일컬어진다. 1947년 조지 캐넌이 제창한 ‘냉전 질서’가 확산된 곳이 CFR이고, 이후 냉전 대립구도를 바탕으로 한 미국의 대외전략 기조가 대부분 이곳에서 나온 이론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국 CFR에서 논의되는 내용은 세계적인 무게를 지닌다. 1996년부터 약 4~5년 동안 ‘봉쇄’와 ‘개입’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CFR이 발간하는 계간지 포린어페어스만 보면 유행 정도가 아니라 휩쓰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 CFR 내외에서 봉쇄와 개입이라는 단어로 이리저리 재보던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덩샤오핑 집권 이후 경제 발전을 통한 중국식 사회주의 건설을 꿈꾸고 있었는데, 1993년 1월 들어선 클린턴 정부는 중국을 세계 자유무역질서에 편입시킬 것인지를 두고 고민 중이었다. 중국은 여전히 공산당 독재체제였고, 인민들에게는 자유가 없었다. 내수시장은 커녕 해외 수출에 필요한 기술, 설비, 자본도 없었다. 하지만 10억 명에 달하는 인구가 가진 ‘시장 잠재력’은 경기 침체와 재정적자로 고통 받던 당시 미 정부에게는 매력적인 대상이었다.

클린턴 정부는 국무부와 국가안전보장회의, 정보기관 등의 조언에도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자 싱크탱크들에게 답을 묻기 시작했다. 싱크탱크 가운데 외교 분야에서는 발군의 실력을 가진 CFR은 클린턴 정부가 고민하던 대중전략의 기조, 즉 봉쇄냐 개입이냐를 두고 소속 회원과 초빙 연구원들에게 자유롭게 의견을 내놓도록 유도했다.

당시 봉쇄를 주장한 사람들은 중국이 경제적 발전을 이루게 되면 무너진 소련 대신 새로운 미국의 라이벌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고 개입을 주장한 사람들은 중국이 경제적 발전을 이룬다면 그 영향 때문에 중국인들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봉쇄를 주장한 사람들은 같은 시기 유럽 지역에서 논란이 되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유럽 확장과 러시아의 반발 문제를 언급하며, 중국의 패권주의적 행동을 막기 위해 중국 주변에 있는 몽골, 중앙아시아, 남아시아(인도), 동남아시아, 한국과 일본 등을 친미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입을 주장한 사람들은 당시 중국 지도부가 요구하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승인하고, 중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세계의 공장’으로 만듦과 동시에 미국 시장을 개방해 중국 지도부에 대해 ‘시장의 힘’을 지렛대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외국계 기업과 자본들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근로기준과 회계 투명성, 중국 인재들에 대한 보상을 통해 자연스러운 사회적 변혁을 유도, 중공의 공산당 독재체제를 허물고,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CFR을 중심으로 시작된 ‘對中 봉쇄냐 개입이냐’ 하는 논의는 외환위기가 동아시아를 휩쓴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개입’이 더 우세했지만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나면서, 양 기조의 혼합적 성격으로 바뀌게 된다.

美 싱크탱크의 착각 “中 공산당은 우리 생각을 모를 것”

클린턴 정부와 그 참모들, CFR을 비롯한 미국 싱크탱크들은 당시 중국을 ‘우물 안의 개구리’로만 보고, 자신들이 논의하는 내용을 두고 중국 지도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큰 착각이었다.

중국은 1960년대 말 소련과 우수리 강 일대에서 충돌한 이후 소련이 공산권의 중심이라는 점에 대놓고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부의 주장이지만 중화사상과 공산주의를 결합해 통치이념으로 내세우는 중국 공산당은 1950년대 중반부터 제3세계론을 주장하며 소련을 대신하는 공산권 종주국이 되기를 희망했다. 중소 국경분쟁으로 그 실력 차이가 드러난 뒤에도 중국 지도부는 그 꿈을 버리지 않고, 1970년대 중반 캄보디아, 라오스의 공산혁명을 지원하고, 1979년에는 베트남까지 침공한다. 소련에 대한 반발심이 가득했던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1979년 1월 1일 미국과의 수교, 1980년 덩샤오핑의 집권을 통해 야심을 이룰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 미국과 소련의 대결이나 마찬가지였던 냉전 질서에서, 여기에 소외된 약소국가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여지를 찾아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였다. 10억 명이 넘는 인구를 가졌으나 최첨단 무기도 없었고, 핵무기 수도 미국이나 소련에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생활수준 격차 때문에 제3세계에도 큰 소리를 치기 어려웠다.

이때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경제성장전략이 위력을 발휘한다. 한국에서는 흑묘백묘론으로 알려져 있는, 그의 실용주의 경제성장전략은 냉전 속에서 소련의 위협을 강조하던 미국에게는 우군이 될 잠재성이 있는 세력으로 보였다. 특히 미국 민주당 정치인들은 중국이 충분히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될 수 있다고 보고, 시장경제 체제에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 클린턴 정권의 중국 WTO 가입 추진은 그 결과였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는 이렇게 벌어들인 달러를 무력 증강과 해외에서의 친중파 생성 공작에 들이붓기 시작한다. 겉모습은 시장경제 시스템이었지만, 대기업은 모두 공산당 또는 공산당원과 그 친인척 소유였고, 회계는 국제적인 기준을 무시한 불투명함의 집합이었다.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세수세출 통계는 달랐고, 외환보유고 또한 정확하지 않았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던 중국 지도부는 2011년 시진핑이 집권하면서부터 그 본색을 드러낸다. ‘중국몽’을 기치로 남중국해에서는 ‘도련선 전략’을, 한반도에 대해서는 ‘속주화 전략’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태평양을 중공의 내해로 만들겠다는 뜻도 자주 내비쳤다.

클린턴 정부가 시작해 부시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으로 정신을 못 차리며 방치하고, 오바마 정권이 8년 간 ‘인내’로만 대응하면서 미국 정부의 ‘대중 봉쇄와 실패 병행’은 실패로 드러났다.

 

클린턴 정부의 실패 반추한 트럼프 정부의 ‘압박과 개입’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클린턴 정부를 지근거리에서 계속 봐 왔다. 중국 지도부의 탐욕과 이중성도 사업을 하면서 체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중국과 북한, 동남아시아를 하나의 문제, 즉 중국 지도부의 문제로 봤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 참모들은 집권 직후부터 중국 지도부에게는 북한 문제를, 북한에게는 중국 지도부를, 동남아시아에는 중국과 일본을 ‘지렛대’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중국을 향해서는 무역 불균형과 환율 조작 등을 거론하면서 “북한 좀 어떻게 해보라”고 종용했고,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는 “미국은 남중국해의 안보를 위해서 일본 등 동맹국과 함께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항모 강습단과 전략 폭격기, 최신형 연안전투함(LCS) 등을 주변 지역에 투입해 빈말이 아님을 보여줬다.

북한에게는 협상의 손짓보다는 “계속 떠들어 보라, 그러면 한 대 맞을 것”이라는 식으로 대응했다. 과거 미국 정부가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군사력 사용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전략을 사용했던 것과는 달리 “자꾸 까불면 핵무기도 쓸 수 있다”고 위협했다. 북한 김씨 일가는 처음 보는 미 정부의 행동에 당황했다. ‘설마’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생존을 걸고 움직일 수는 없었다.

한국 정치권과 언론 또한 당황했다. 정전 이후 한국 정부가 “북한에 보복하겠다”고 할 때마다 말리던 미 정부가 아니었다. 만약 북한이 한국을 향해 무력도발을 한다면 “왜 대응을 하지 않느냐”고 다그칠 것 같았다. 국가안보를 모조리 미국에 기대고 경제적 이익만 취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한국의 구세대 정치인들은 충격을 받았다. 소위 진보라는 환상에 빠져 아무리 반미를 외쳐도 미국이 한국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한국 언론과 지식인들도 혼란에 빠졌다. “네 힘으로 적을 물리쳐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불안감을 더 키웠다.

트럼프 정부의 대외전략을 접한 동아시아 각국은 충격과 혼란에 빠졌지만 미 정부는 비교적 여유롭다. 이제는 게임의 룰을 미국이 잡게 됐기 때문이다. 게임의 룰이 변했다는 것을 깨닫고 가장 먼저 움직인 나라는 중국이었다.

중국 지도부는 처음에는 대북 압박을 하는 척만 하다 서방 진영 언론들이 “중국과 북한 간의 교역이 그대로”라거나 “북한 내 연료, 식량, 비료 등의 유통에 변동이 없다”는 보도를 내놓은 뒤 미 정부가 무역과 환율을 내세워 재차 압력을 가하자 황급히 행동을 시작했다.

중국 지도부는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미국을 상대로 연 수천억 달러의 무역 이익을 얻는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라는 트럼프 정부의 경고에 ‘생존’을 위해 북한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미국 시장에서 얻는 무역 흑자가 급격히 감소하거나 사라지면, 빈부 격차로 인해 공산 독재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국 지도부 입장에서는 동아시아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해결사’ 북한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당장 정권과 체제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되자 북한 김씨 왕조를 무너뜨리고 한국에 친중 정권을 세운 뒤 한반도 전체를 친중 체제로 만든다는 전략으로 급선회한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 지도부의 전략 선회와 행동을 계속 주시하면서, 한 마디씩 툭툭 던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바른 상황이 조성된다면 김정은과 대화를 하겠다”거나 “10억 달러짜리 ‘사드’를 한국에 배치했는데 왜 그들은 돈은 내지 않느냐”는 등의 발언을 한 것은 한국 내 친중종북 세력과 중국 지도부를 동시에 노린 것이었다.

트럼프의 ‘최대의 압박과 개입’, 중국의 “대국은 소국 말 들어야”

앞서 언급한 내용들을 종합해볼 때 트럼프 정부가 새로 내놓은 대북전략 ‘최대의 압박과 개입’은 사실 ‘마피아 협상 전략’과 매우 비슷하다. 마피아 사이에서는 “한 손에는 권총을 들고 웃으면서 대화하는 것이 최고의 협상 기술”이라는 격언이 있다.

즉 트럼프 정부의 최대의 압박과 개입 대상은 북한만이 아니라 중국 지도부와 한국 내 친중종북 세력도 포함된다.

지금까지 외신에서 나온 보도를 종합해보면 여기서 말하는 압박은 부시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에서 사용하던 기법, 즉 금융·여행·무역 관련 제재와 암살, 납치 및 감금, 고문 등이 모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국 입국 비자가 현지 공항에서 갑자기 거절당한다거나 미국 또는 유럽, 동남아 여행 중에 교통사고 등을 당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물론 언론에는 관련 내용의 일부만 노출될 것으로 보인다.

개입의 경우 북한 김정은 정권에게 먼저 대화를 제안한다거나 6자회담 같은 느슨한 구조의 대화 체제를 통해 ‘회의를 위한 회의’만을 거듭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중국 지도부를 비롯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를 무시하고 북한과 거래를 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압력과 개입을 동시에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한국,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개입(Engagement)’이라는 단어가 ‘교전’으로도 사용된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북한의 외화벌이 수단을 차단하기 위한 비밀공작도 광범위하게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즉 김정은 정권을 위해 해외로 파견된 외화벌이 일꾼과 외교관들에 대한 포섭공작,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수뇌부와 북한 내부 기밀에 대한 거액의 현상금 제시, 정보기관을 통해 북한이 수입하는 ICT 기기와 고급 승용차 같은 사치품,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부품에 대한 조작, 김정은 측근들에 대한 납치 및 암살 공작이 일어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공작의 실행은 미국인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쳐 고용한 중국인 또는 동남아 화교 등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중공 국적자 또는 동남아 화교가 북한 고위층을 납치, 암살할 경우 중공과 북한 간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개입에는 이와 동시에 중국 지도부가 동아시아 패권 전략을 추진하면서 내뱉은 논리를 역이용하는 사례도 있을 것이다. 2016년 12월 하순 중국 공산당 외교부의 천하이 아주국 부국장은 한국 외교부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들어와 주요 정당의 대선 주자와 대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사드 배치에 반대하라”고 종용한 바 있다. 이때 천하이 부국장이 했던 “소국은 대국 말을 잘 따라야 한다”는 말을 트럼프 정부가 중국 지도부에 거꾸로 할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미국은 중국보다 훨씬 더 대국이다. 중국 외교부의 논리대로라면, 중국은 당연히 소국이므로 미국의 말을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될까.

트럼프 정부가 개입에 사용할 수 있는 옵션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스라엘이다. 중국이 아프리카와 남미 등에서 발언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의 협조 덕분이었다.

트럼프 정부가 이스라엘에 대한 원조를 대폭 증액하고, 예루살렘으로의 수도 이전을 지지하면서 대사관을 이전해주는 조건으로, 이스라엘 측에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 중국을 좀 움직여 달라”고 제안한다면 어떻게 될까. 1960년대 아프리카 곳곳에서 국가안전부(MSS) 요원 수백여 명이 이스라엘 모사드에 의해 암살당한 경험이 있는 중국은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트럼프 정부의 최대의 압박과 개입을 정치·외교적 공식 활동이나 국제기구를 통한 제재, 선제 타격 정도에서만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가진 카드는 한국 사회가 생각하는 수준 이상이다. 그 중에서도 개입의 경우에는 한국 정부가 잘못 판단하면 북한, 중국에 휩쓸려 같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수단들도 포함돼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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