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 간 선각자
시대를 앞서 간 선각자
  • 미래한국
  • 승인 2017.05.1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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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훈 월간 考試界‧考試界社 대표
일생 동안 사명과 소명으로 살아오신 김상철 변호사님이 작고하신 지 어느 덧 1주년이 되어가네요. 저는 故김상철 변호사님을 1984년부터 30년 가까이 보필하면서 대한민국의 정통 법률지인 월간 고시계(考試界)와 도서출판 고시계사(考試界社)를 2001년부터 대표로서 경영하고 있는 처조카입니다.
 
한편으로는 인척인 이모부님으로서, 한편으로는 평생을 자유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인간의 존엄, 그리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려 새벽부터 저녁까지 전부를 바쳐 오신 분으로서 김상철 변호사님을 곁에서 모실 수 있어서 저 개인으로서는 커다란 영광이었습니다.
 
김상철 변호사님이 작고하신 지 1주년이 돼 그 분의 구국운동과 애국정신을 살아 있는 후세들에게 널리 알리는󰡐김상철기념사업회󰡑가 출범해 추모집을 출간함에 있어 저 역시 추모의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김상철 변호사님은 1980년대 초 경영난에 허덕이는 월간 고시계를 인수해 현재까지 60여 년간 한 호의 결호도 없이 지탱해 오고 있습니다. 월간 고시계가 역사의 격랑 속에서도 면면히 오늘날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고인만이 가질 수 있었던 역사성과 시대정신의 결과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법률잡지로는 대한민국 최초로 ‘편집위원 제도’ 도입, 매달 일반교과서에 언급돼 있지 않은 법‧행정학적으로 이슈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특집’, 한 해 동안의 학회활동, 저서 출간, 학술논문 발표 등을 개재하는 ‘학계와 판례의 동향’, 사법시험 또는 행정고시 최종합격자 발표 후 2차 실제 채점위원 교수님들이 출제경향이나 채점기준 등을 게재하는 ‘채점평’ 등은 월간 고시계에서만 볼 수 있었던 테마였습니다.
 
또한 저명한 교수진 및 실무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현안 문제를 토의하는 ‘좌담회 제도’, 사법연수원생을 비롯한 고시합격자들이 제공하는 모범답안과 그에 대한 저명 교수님들의 강평을 부가해 매달 게재하는 ‘예상 답안과 강평’은 월간 고시계만의 독특한 존재 양식이었습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합격생들의 생생한 ‘합격기’ 또한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김상철 변호사님은 월간 고시계가 단순히 수험지의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법학 발전의 향도 역할을 수행하는 잡지가 되도록 헌신하셨습니다. 그 분은 1987년 11월 29일 100명이 넘는 동족을 공중분해 시킨 KAL기 폭파사건의 이야기를 담아 북한의 악랄함을 다시 일깨워 준 계기가 됐던 ‘김현희의 하느님(조갑제‧정호승)’ 단행본 출간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사회적 문제의식과 역사적 시대정신을 갖게 했습니다.
 
월간 고시계에 ‘통찰력’ 불어넣은 장본인
 
1990년대 초 고등고시, 특히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법대생들에게 정통 바이블로 통했던 ‘서동우‧오관석의 민법시리즈’와 여러 법학 시리즈는 수험가에서는 필독서로 통했고 ‘법은 누구 편인가(러셀 W 저/안경환 역)’, ‘입헌주의를 위한 변론(양건)’ 등을 출간해 많은 독자들에게 큰 지혜를 줬습니다.
 
김상철 변호사님의 1980년대 족적을 살펴보면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화신 그 자체셨습니다.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사건과 권인숙 성고문사건의 변호사로서 인권운동에 앞장섰고 6월 항쟁 때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장 활동으로 6‧29 민주화선언을 가능하게도 하셨습니다.
 
특히 2011년에 사망한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이 1985년 구금과 고문을 당할 당시 그를 변호해 승소한 이가 고인이셨습니다. 고인은 당시 법적 선례가 없던 고문 흔적에 대한 신체증거보전신청을 적용해 승소했고 이로 인해 이듬해인 1986년 국세청조사국 수십 명이 투입된 보복세무조사를 당한 사건은 법조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때에도 저는 고인의 곁에 있으면서 냉철한 법 논리와 헌신적인 사랑과 봉사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1999년 6월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탈북난민 유엔청원운동은 2001년 5월 1180만 명의 탈북난민보호 청원 서명을 받아 유엔에 전달하고 탈북민 1500명 이상을 구출해 대한민국에 입국하게 했으며 미 상하 양원에서 북한인권법과 유엔인권결의안이 통과되는 데 기여하는 등 대한민국 북한인권운동의 효시가 됐습니다. 저 또한 고인과 함께 유엔 청원의 서명을 받기 위해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찾아다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저는 월간 고시계‧도서출판 고시계사와 고인이 생전에 야심차게 추진하셨던 우리정의당 창당, 한미우호협회, 탈북난민보호운동, 태평양아시아협회 활동, 미래한국신문 창간 등을 미력하나마 고인 곁에서 함께 하며 인간과 역사에 대한 큰 의미를 알게 됐습니다. 다시금 김상철 변호사님의 명복을 빌며 그분의 고귀한 삶에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삼가 추모의 예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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