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하고 단호했던 그 목소리가 그립다
엄하고 단호했던 그 목소리가 그립다
  • 미래한국
  • 승인 2017.05.16 15: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창범 손과마음선교회 사무총장 · 前 북한구원운동 사무국장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상철 회장을 만난 것은 2006년 9월경이다. 구국기도회 모임에서 한 지인의 소개로 처음 인사를 나눴다. 그 무렵은 노무현 정권이 좌익의 본색을 드러내며 이 나라에 위기가 닥친 시점이었다.
 
북핵을 조장하고 심지어 국제사회에서 북한 정권의 입장을 대변하는 노무현의 태도에 뜻있는 국가 원로들은 비상시국이라는 일치된 시각을 갖기에 충분했다. 이 상황을 방치할 수만 없었던 김 회장은 ‘국가비상대책협의회(이하 국비협)’를 발족하기로 결정했고 기도 동지들의 간절한 구국기도가 함께 했다.
 
목회자로서 정치적 목적을 가진 단체에서 일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김 회장의 우국충정과 헌신에 감동한 나머지 부족한 나 역시 애국하는 일에 나서기로 했다. 내 직함은 사무처장이었고 국비협의 모든 홍보업무와 행정업무를 담당했다.
 
이듬해에는 탈북자 구출을 돕는 북한구원운동의 사무국장과 미래한국신문의 편집위원도 겸하면서 김 회장과 함께 동고동락의 시간을 가졌다. 서울 역삼동 사무실과 파주 미래한국 사옥으로 출근하며 만 4년 동안 김 회장의 곁을 지켰다.
 
2008년 12월 초 몹시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북한구원운동 기도회와 미래한국포럼 등 분주한 연말행사에 참석한 김 회장의 마지막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조금도 괴롭다는 표정을 짓지 않으며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최선을 다하던 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며 헌신적으로 우익운동에 앞장서서 한 시대를 끌어간 지도자의 면모가 그대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김 회장과 함께 한 이 시간들은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경험이고 또 한 시대의 역사적 소용돌이를 지켜보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김 회장의 첫 인상은 매우 강하게 다가왔다. 마치 산중에서 호랑이를 만나고 있다는 인상을 갖게 했다. 엄숙하고 분명한 어조에 형형한 눈빛을 가진 그의 풍모는 누구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그 단계를 넘어서면 의외로 부드럽고 친절한 태도에 감동되고 만다. 김 회장은 사실 매우 다정다감한 분이라는 생각을 지금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깊은 신앙심으로 하나님 앞에 늘 기도하던 모습은 그의 감추어진 자상한 인품을 느끼게 한다. 그를 가까이 만난 분들이라면 누구나 그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겸손과 친절이 몸에 밴 분이었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그가 결코 용납하지 못했던 것
 
그러나 오랜 법조계 생활을 통해, 또 하나님을 섬기는 진실한 신앙생활을 통해 얻어진 것이겠지만 김 회장에게는 스스로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 즉 불의에 대해 참지 못하는 것이다. 가정이든 사회든 또는 국가의 일이든 불의를 방치하는 일은 죄악이라고 생각했다.
 
판사 시절이나 변호사 시절은 물론이고 정의와 인권을 다루는 사회단체에서 활동해온 일들이 모두 이런 측면과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다. 그중에도 좌익 이념을 가진 지도층들에 대해 분노의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오늘날 종북세력으로 알려진 인사들에 대해 그러한 감정을 구태여 숨기지 않았다.
 
사적인 자리에서도 김 회장은 불의한 일을 용납하지 않아 철두철미한 원칙주의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김 회장은 어떤 일에도 적당한 타협을 용납하지 않았고, 이런 고집이 그 자신을 때때로 난처하고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시민단체들과 중요한 과제를 논의하거나 시급하게 행사를 계획하는 자리에서도 김 회장의 높은 언성을 가끔 들을 수 있었으며 참지 못해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오는 분들도 목격한 일이 있다. 그래서 사려 깊은 김 회장의 뜻과 생각을 읽지 못하고 반목했던 사람들로 인해 나름의 고통을 받기도 했다.
 
그때마다 김 회장은 늘 대범하게 이를 무시하려고 했고 새벽마다 하나님 전에 나아가 자신을 고백하며 그들을 위해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 김 회장의 판단은 옳았으며 그의 결정을 따르게 하는 설득력과 리더십으로 좌중을 이끌곤 했다. 그래서 최종적 결정은 늘 김 회장의 판단에 맡기곤 했다.
 
김 회장은 일을 예견하고 경영해나가는 남다른 지혜를 가졌다. 사물을 통찰하고 판단하는 예지의 능력이 그가 선지자적 안목을 가진 탁월한 지도자라는 강한 인상을 많은 사람들에게 안겨 줬다. 이제 와서 그의 빈자리를 아쉬워하는 것은 오늘날 이러한 지도력을 찾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좌우의 대결이 극심해지고 나라의 존망이 위태한 현재의 상황에서 누구보다 김 회장이 있어야 했다는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 나라의 종북세력을 향해, 반역세력들을 향해 조목조목 합리적 근거로 따지고 비판할 수 있는 역량을 누구보다 김 회장이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이야말로 국가적 위기를 넘어서게 하는 애국적 의분과 지혜를 가진 우리 시대의 정의로운 지도자였음을 다시 회고하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사무엘처럼, 이사야처럼 무너져가는 국가와 민족을 향해 하나님의 정의를 외쳤던 그의 목소리가 그립다.
 
산중에서 포효하는 호랑이보다 더 우렁찬 목소리로 우리 시대를 향해 호령하던 김 회장이 그립다. 혼란스럽기만 한 이 나라를 바라보며 역사를 꿰뚫는 그의 탁월한 식견이 그립고, 늘 엄하고 단호했던 그 목소리가 새삼 그립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