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선택해 세운 사람
하늘이 선택해 세운 사람
  • 미래한국
  • 승인 2017.05.1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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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권 美 북한인권한인협의회 대표
지구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탈북자들이야말로 이 지구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도 이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간접적으로 지원해 오던 중 김상철 변호사의 간곡한 요청으로 LA에서 탈북자들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이 지구상에는 가난과 질병 그리고 정치적이나 종교적인 이유로 온갖 핍박과 고난을 받으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한국에서도 아프리카나 동남아 지역에 있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모금활동과 현지 구호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식량부족이 문제일 뿐 입을 옷이나 잠자리 문제는 별로 없고 궁핍하게 살아갈 뿐 자기 집에서 마음만은 편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탈북자들에게는 먹을 식량이 없음은 물론 한 몸을 숨길 공간이나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엄동설한에도 입을 옷이나 숙소가 없어 전전긍긍하면서 엄청난 고난을 당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더욱이 저들을 아프게 하고 있는 것은 언제 인신매매범들에게 끌려가서 성노예가 되거나 중국 공안당국에 잡혀 북송될지 몰라 불안과 공포 속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참혹한 현실이다.
 
한 끼 두 끼 굶는 것보다 언제 어떠한 비극이 엄습해 올지 몰라 불안과 공포 속에서 견디는 일은 더 참기 어려운 고통이 아닐 수 없다. 김상철 변호사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불쌍한 이러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하늘의 소명을 받고 한 몸을 던진 오늘날의 진정한 사마리아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중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한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는 말씀을 기억한다. 김상철 변호사는 분명히 고통 받는 탈북자를 위해 예수님이 선택해 세웠고 또 저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진정한 예수님의 친구라고 믿는다.
 
하늘의 소명을 받은 사마리아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에서는 2년에 한 번씩 해외에 있는 자문위원들을 본국으로 초청해 매번 3박 4일간의 수련회를 개최한다. 나도 1973년 근무 중이던 공직을 사임하고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를 한 후 LA지역에서 6차례에 걸쳐 평통자문위원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본국 수련회에 늘 참석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회의가 있는 동안에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개인적으로 나의 책임 하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국가와 민족 그리고 평화통일을 위해 매일 같이 새벽기도회를 개최했다.
 
솔직히 말해서 많은 정부의 고위직이나 관계자들이 나와서 강의를 하지만 새로운 것이나 들을 것은 별로 없고 언론에 보도된 것들을 재탕 삼탕하는 정도여서 나로서는 별로 흥미를 갖지 못했다. 그리고 새벽기도회를 개최한 이유는 사람의 생각과 계획이 아무리 훌륭하고 빈틈이 없다 할지라도 통일의 성취는 궁극적으로 하늘의 섭리 즉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 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이심”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세계 각 지역에 살고 있는 기독교 지도자들을 서울에 불러 모아 통일 기도회를 개최한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 및 비용이 들겠지만 이미 특정행사를 위해 세계 각 지역에서 모인 동포 지도자들과 함께 주최 측 행사 일정의 틈새를 이용해 새벽기도회를 갖는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새벽기도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일은 강사를 초청하는 일이었다. 강사의 지명도에 따라 기도회에 참석하는 인원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가능한 한 지명도가 있는 대형교회 목사님들이나 평신도들을 위주로 강사를 초청했다. 김삼환 목사, 옥한흠 목사, 김선도 목사, 김장환 목사, 전 서울시장 김상철 변호사, KAL 폭파범 김현희, 현 새누리당 대표 황우여 의원, 탈북여성 이애란 박사 등이 수고를 해 줬다. 새벽기도회는 평통회의에 참석하는 전체 인원 약 700명 중 적게는 100명 많게는 250명이 참석해 뜨겁게 진행됐다.
 
김영삼 대통령이 의외로 젊은 김상철 변호사를 서울 시장으로 임명했을 때 ‘김 대통령이 그를 후계자로 마음에 둔 것이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운동권 언론들의 과대선동과 집요한 공격으로 일찍 서울시장직을 물러나게 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갖고 있던 중 그가 ‘7일간의 서울시장’이란 간증 겸 회고록을 준비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리고 김상철 전 서울시장을 기도회에 초청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김 변호사와 연락을 한 결과 그의 대답은 “한 번도 간증을 해본 일이 없으며 동포 지도자들 앞에서 이야기할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이란 말로 정중히 사양했다. 김 변호사와는 언론을 통해 나의 대학교 후배란 사실을 알았을 뿐 한 번도 인사나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 사이였다.
 
그러나 새벽기도회의 취지와 해외 동포들이 뜨거운 열정으로 기도회를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선배의 간곡한 부탁이란 사실 앞에 겸손하게 초청을 수락하고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 간결하면서도 맥이 있는 그의 간증과 나라를 염려하는 마음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큰 감동과 은혜를 받았다.
 
나는 김 변호사에게 ‘7일간의 서울시장’이 출간되면 미국으로 초청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 후 LA에서 100여명의 목사님들 및 평신도 지도자들과 함께 간증과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서로 도울 일이 있으면 기도하고 협력하기로 굳게 약속을 했다.
 
김상철 변호사의 부탁
 
나는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해로부터 과거 약 20년간 대통령을 위한 국가조찬기도회에 꾸준히 참석했다. 한 번은 기도회를 마치고 나오는데 호텔 로비에서 “장로님 오신 줄 알고 여기에서 기다렸습니다”하면서 김상철 변호사가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그리고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탈북자들의 UN난민 인정을 위한 서명운동에 동참해 줄 것과 미주에서 책임을 맡아 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개인적으로는 힘이 들고 희생이 따르겠지만 이웃을 위한 선한 일이기에 기꺼이 서명운동에 동참하기로 승낙하고 그 후부터 적극적으로 탈북자를 위한 지원운동을 했다. 그리고 이 운동을 하면서 특히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해 준 가족 특히 나의 큰 아들이다.
 
당시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을 하고 있던 큰 아들이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라면서 3만 달러의 수표와 백지 수표 2장을 보내 준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큰 아들의 성격이 불의를 미워하고 약자를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 것을 내 놓을 줄 아는 김상철 변호사의 성품과 비슷한 점이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미주에서는 처음으로 LA에서 탈북난민보호UN청원운동 남가주협의회를 조직하고 서명운동과 탈북자들의 참상을 동포사회와 미국사회에 알리는 일을 시작했다. 1000만 명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LA지역에서 있었던 서명운동 중 가장 많은 3만 명의 서명을 받아 보내는 한편 각종 세미나와 홍보물을 통해 탈북자들의 참상과 UN 난민 인정이 절실하다는 내용의 홍보를 했다. 이 운동을 하면서 특히 잊을 수 없는 몇 가지 일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그와 함께 만든 ‘잊을 수 없는 순간들’
 
첫 번째는 미 의회의 북한인권법 제정에 관한 일이다. 북한인권법 초안 작성과정에서 워싱턴 DC를 수차례 드나들면서 한인의 의견을 전하고 또 최종 초안이 의회에 제출되기 직전에 있던 기자회견에서 내가 한인을 대표해 인사말을 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의회 심의 과정에서 북한인권법 제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상원의 아태 담당 외교분과 위원장인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을 LA에 초청해 인권법 제정의 의의와 내용에 관한 세미나를 가졌다.
 
법안이 통과된 후에는 법안 통과를 위해 실무를 담당한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의 법률 보좌관인 Cean Woo 변호사를 LA에 초청해 홍보활동을 하기도 했다. 미 연방의회의 상원의원이 한인 타운을 방문하는 일은 선거 모금을 위해서 가끔 있을 뿐 특정한 사항과 관련한 단독 초청으로 방문한 것은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이 처음이었고 그 이후에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참석자들에게 그 분을 소개하기를 성경에서 사도 요한이 말한 것처럼 탈북자를 사랑하되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않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는 탈북자들의 진정한 친구요 우리의 친구라고 소개했다.
 
두 번째는 미국 정부에 의해 처음으로 탈북난민 인정을 받은 김순희 씨에 관한 일이다. 그녀가 멕시코를 거쳐 샌디에이고로 불법 입국하려다 체포돼 재판을 받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수차례에 걸쳐 그녀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그녀가 미국 법정에서 탈북자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증거나 증언이란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김상철 변호사가 LA를 방문했을 때 함께 그녀를 방문하고 대화를 나눈 결과 그녀가 함경북도 청진 출신이라는 심증을 얻었다. 그리고 김 변호사는 한국 변호사의 입장에서 또 탈북난민보호 UN청원운동 본부장이란 입장에서 그녀를 면담한 결과 탈북자임이 틀림없다는 의견서를 미 사법 당국에 제출했다.
 
그 이후 한국 탈북자동지회의 장인숙 부회장이 LA를 방문했을 때에도 김순희 씨를 방문해 면담한 결과 그녀가 탈북자임이 확실하다는 심증을 굳히고 탈북자의 입장에서 또 탈북자단체 회장의 입장에서 볼 때 그녀가 탈북자임이 확실하다는 의견서를 작성해 미 사법 당국에 제출했다. 결국 미국 법원으로부터 탈북자로서는 제1호 탈북난민으로 망명을 허가 받게 됐다.
 
세 번째는 LA 주재 중국 총영사관 앞에서 행한 데모로서 2000년 1월에 있었던 일이다. 중국정부가 UN난민 고등판무관실에서 난민 지위를 부여하고 또 한국 영사관이 한국 입국비자를 발급한 탈북자 7명을 북한으로 강제 송환한 사건이 발생하자 한국과 해외에서 거센 항의 집회가 일어났다.
 
이는 분명히 중국정부가 국제법과 인도주의를 무시한 위법한 처사라는 것이다. 그래서 LA에서도 김상철 변호사를 초청해 언론을 통해 홍보하는 한편 데모하기 전날 주일에 LA의 대형 한인교회 10여개를 순회하면서 홍보한 결과 250여명이 모인 LA에서는 볼 수 없는 대형 집회가 됐고 LA 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주류 언론에서도 많은 취재와 보도가 있었다.
 
네 번째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에 독일인 의사 노베르트 폴러첸을 초청해 가진 행사이다. 행사 1주일을 앞두고 한국의 유명한 탤런트인 노사모의 명계남 씨가 우리의 행사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분위기가 있는 좋은 장소에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면서 무료로 시국강연회를 하니 많이 참여해 달라는 광고를 쏟아 부으며 물량공세를 하기 시작했다.
 
일부에서는 노무현 정권이 계획적으로 우리의 행사를 방해하기 위해 꾸민 행사이니 손을 써야 한다고 열을 올리기도 했지만 집회와 언론의 자유가 철저하게 보장된 미국에서 누가 무슨 의도로 집회를 하든 문제를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승부는 행사에 얼마의 동포들이 참석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임으로 열심히 준비한 결과 그 다음날 신문은 우리의 모임에는 500여명이 모였고 명계남 씨의 모임에는 겨우 50명이 모였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행사에서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참석 인원을 보증했을 텐데 50여명 밖에 참석하지 못한 행사에서 명계남 씨는 얼마나 많은 돈을 낭비했으며 그 돈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씁쓸하기만 하다.
 
마지막으로 황장엽 씨의 미국 방문에 관한 일이다. 황장엽 씨가 미국을 방문하기 전에 황장엽 씨 측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해 그를 한 번 만나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로서는 황장엽 씨를 만나본 일도 없고 또 그분이 나를 만나야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해 거절했다.
 
그러나 계속해 연락이 오면서 하는 말이 미국을 방문하게 되면 대사관이나 경호원들이 안내를 잘하겠지만 그래도 동포들 중에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는 있는 믿을 만한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찾고 있는 중에 몇 사람으로부터 나를 추천 받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에 가서 황장엽 씨를 방문하고 대화를 나눈 후 돌아오는 길에 나를 안내한 사람으로부터 황장엽 씨가 머물 호텔은 비밀이지만 며칠 전에 알려줄 테니 그 분이 워싱턴 DC에 도착하는 날로부터 떠나는 날까지 같은 호텔에 머물러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값비싼 고급 호텔에서 1주일을 있으면서 황장엽 씨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을 잊을 수 없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쏟았던 그 사랑
 
나는 성경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 “내가 주렸을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힐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
 
이 시대에 진실로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는 누구일까? 그들은 바로 탈북자들이며 이들을 위해 사랑과 헌신을 한 김상철 변호사와의 만남을 통해 내 자신이 조금이나마 저들을 도울 수 있게 된 것을 이 시간 감사하게 생각한다.
 
탈북자들이 국제법에 의해 난민으로 인정을 받고 자유와 평안을 누리면서 인간답게 사는 그날에 남북통일도 이루어지리라 믿고, 그날이 어서 오도록 하나님이 선택해 세운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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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2017-05-21 09:28:29
육값떨고 앉았네~!!!! 박사모스러운 극우개독교것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