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저렇게 살려면 대통령 안 한다”
<특별기고> “저렇게 살려면 대통령 안 한다”
  • 미래한국
  • 승인 2002.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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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李根美/ 소설가·月刊朝鮮 기고가
이승만 내외, 물건 30년 이상 사용 알뜰 넘어 궁색박정희, 친인척은 물론 청와대 직원 재산 철저관리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뜨겁다. 우리나라에 차례로 패한 유럽 축구강국들은 誤審(오심)을 핑계대며 애써 우리나라의 약진을 폄하하려는 눈치다.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와의 경기 결과를 놓고 ‘쓰레기 같은 경기’라고 매도한 직후에 우리나라 대통령 아들의 구속사실을 보도했다. 대통령 아들이 부정부패에 연루되어 구속되는 나라이니 축구 경기도 심판을 매수해서 승리했을 거라는 식으로 비아냥댄 것이다.우리들의 영웅을 흠집내는 사건에 흥분하다가도 대통령 아들의 비리 카드가 등장하면 우리는 할 말을 잃게 된다. 우리 국민들이 축구에 이토록 열광하는 것은 정당한 노력으로 정당한 대가를 얻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로열 패밀리’들의 한심한 작태로 수치와 환멸을 느꼈던 대한민국 국민들은 비로소 축구 덕분에 ‘이 나라에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대통령 아들들과 주변 사람들의 비리를 볼 때면 새삼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의 청렴했던 삶이 떠오른다. 두 분의 정치역정에 대해서는 판단이 엇갈리지만 ‘부정하게 모은 돈이 없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月刊朝鮮 2001년 3월호에 ‘프란체스카 비화발굴, 내 남편 이승만은 이런 사람이었다’라는 기사를 기고한 일이 있다. 당시 여러 사람을 만나 인터뷰했는데 그 가운데서도 14년 간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 내외의 수발을 든 방재옥(72)씨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방씨는 대통령 내외가 알뜰의 경지를 넘어 궁색하게 살았다며 이렇게 말했다.“경무대 사람들이 ‘저렇게 살려면 우리는 대통령 안 한다’고 했었어요.”이승만 대통령 내외는 평소 나물 두 가지에 국 한가지로 식사를 했고 저녁 식사 때면 낮에 먹던 반찬을 그대로 먹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미장원에 가지 않고 실핀으로 머리를 감았다가 드라이로 말리는 게 고작이었다. 한번 산 옷은 30년 넘게 입었으며, 대개의 경우 천을 구입해와서 비서인 김신영 씨와 함께 만들어 입었다. 양말도 기워 신고 가루비누도 숟가락으로 재서 썼을 정도였다. 알뜰한 영부인은 남편 대통령에게도 기운 내복을 입혔다. 어느 날 이승만 대통령이 여기저기 기운 내복을 들고 방재옥 씨에게 “재옥아, 이 꿰맨 걸 나더러 또 입으라 그런다”며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고 한다.하와이와 오스트리아를 거쳐 이화장에서 양자 이인수 박사 부부와 함께 여생을 보낸 프란체스카 여사의 삶은 근검절약의 표본이 되고 있다. 국산양산을 30년 넘도록 사용하고 연료를 아끼기 위해 겨울이면 찬방에서 며느리와 부둥켜안고 잤다. 며느리 조혜자 씨는 “시어머니가 평생 돈 한번 마음놓고 써보지 못하고 가셨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고 얘기했다.프란체스카 여사는 영구 귀국한 뒤 항공료를 아끼기 위해 22년 동안 한번도 오스트리아에 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국제전화도 하지 않았다. 모든 연락은 편지로 했는데 항공우편 대신 가격이 훨씬 싼 배를 이용했을 정도였다. 18년 간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이유는 우리나라를 근대화시킨 것과 함께 부정축재한 재산이 없다는 점 때문이다. ‘박정희 인터넷 기념관’(www.516. co.kr) 운영자인 정용희(37·뉴페이지 사장)씨는 박정희 대통령이 근검절약에 철저했다며 알려지지 않은 일화를 공개했다. 박대통령은 아무리 더워도 집무실에 에어컨을 틀지 못하게 했다. 어느 날 날씨가 너무 더워 박대통령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보다못한 보좌관이 보일러 공조실 직원과 의논하여 더운 공기가 빠져나가도록 공기순환을 시켰고, 그제야 더위가 조금 가셨다. 그러자 저녁에 박근혜 씨가 보일러 관계자를 찾아와 “에어컨을 틀었느냐, 아버지가 걱정하신다”고 말했다. 직접 말하면 꾸중하는 게 될까봐 딸을 시켜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을 틀지 말라”는 얘기를 재차 전한 것이다.박대통령은 친인척은 물론 청와대 근무자들의 재산 상황도 철저히 관리했다. 박대통령의 운전기사가 그동안 모은 돈을 다 털어 당시로서는 변두리였던 양재동에 제법 큰집을 산 일이 있었다. “운전기사 월급으로 어떻게 그렇게 큰집을 샀느냐”는 얘기가 주변에 퍼져나갔고 급기야 박대통령 귀에도 들어갔다. 박대통령은 어느 날 지방에 다녀오면서 기사에게 양재동 쪽으로 가자고 해 자연스럽게 기사의 집을 방문했다. 박대통령이 보기에도 큰 집이었는지 “다른 데로 이사하지”라고 한 마디 했고 기사는 두말없이 집을 옮겼다. 이 일을 전해들은 청와대 사람들은 더욱 근신하였다고 한다.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부정부패에 연루되는 나라에 사는 일, 정말 피곤하다. 前琅職(전현직) 대통령의 세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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