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한 통에서 시작된 기적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된 기적
  • 미래한국
  • 승인 2017.05.16 15: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영 前 탈북난민보호UN청원운동본부 봉사부장
천국 가신 본부장님을 기리며 지나온 시간을 더듬어 본다. 1999년 4월 첫 주간 어느 날 우리는 전화기 너머로 이런 대화를 나눴다.
 
“김상철 변호삽니다.”
“예, 안녕하세요.”
“정 전도사, 나를 좀 도와주세요.”
“제가요?”
 
의외의 제안에 어리둥절해져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126기도회에서 탈북자들을 위해 1000만 명 서명을 받아 UN에 난민신청 청원을 하기로 했어요.”
“네? 1000만 명을요? 가능할까요?”
“하나님이 해 주시면 됩니다.”
“그럼 제가 할 일은요?”
“봉사부장을 맡아 주세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산하에 탈북난민보호 UN청원운동본부를 두기로 했어요.”
 
얼떨결에 중책을 맡아 매일 한기총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육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 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잠언 24:11-12)
<아침 회의 전 묵상 때 주신 말씀>
 
우리는 프린터가 매일 고장이 나도록 문서를 만들어 서명지와 함께 전국 교회, 대학교, 기관에 발송하고 조를 만들어 서명지가 들어오는 대로 통계를 내고 1000만 명 계수에 들어갔다. 매일 저녁 5시 회의에서 지지부진한 통계 숫자에 희비가 엇갈리고 머리를 맞대 어떻게 하면 많은 서명을 빠른 시간에 받을 수 있을까를 놓고 스텝들은 고민했다. 부족한 경비를 충당하느라 때로는 십시일반으로 하기도 하고 주로 본부장님의 주머니가 매일 비어 나갔다.
 
한 번은 효창운동장에서 지역대항 체육대회가 크게 열린 적이 있다. 이 행사를 활용해 현수막을 치고 많은 피스를 만들어 서명하기 좋게 준비를 했다. 취지를 이해한 시민들이 우리를 격려하며 줄을 서서 서명에 응해줬다.
 
현대판 오병이어를 체험하다
 
여기서 좋은 실적을 거둔 우리는 개선장군이 된 기분으로 2차 거리 서명운동을 계획했다. 종로3가 탑골공원에서는 정식 운동본부 발대식을 겸한 서명운동으로 전개했다. 그런데 6‧25 사변을 겪은 우리 실버세대 어르신들이 본부장님을 에워싸고 삿대질을 하며 항변을 했다.
 
그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죄 없는 북한 주민들이 굶주림으로 탈북해 중국 땅을 국적 없이 배회하며 여자들은 성노예로 팔려가는 마당에 동족의 아픔을 그냥 볼 수 없지 아니한가? 저들이 UN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으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다고 설득을 시키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본부장님 내빈들이 도착했습니다.”
 
어르신들의 야유를 뒤로 하고 단상으로 가서 식이 진행되고 한쪽에서는 “할아버지 우리는 좋은 일 하려고 왔습니다. 우리를 이해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광경이 연출됐다. 그런데 어느 할아버지가 “그러면 뭔가 먹을 것을 가지고 와서 해 달라 해도 해 줄까 말까한데 그래! 빈손으로 왔어?”
 
“네! 그런데…”
 
그때였다. 웬 트럭 하나가 도시락을 탑골공원 우리 행사장 부근에 쏟아놓고 있었다. 이것은 기적이다! 한쪽에서는 발대식을 하는데 나는 어르신들과 도시락을 나누며 서명해 주셔야 드린다고 내가 도시락 주인인 것 같이 도시락 앞에 서명지를 먼저 내밀었다. 기회를 놓칠세라 한 줄로 늘어서서 서명을 하고 도시락을 나눠주는데 도시락이 모자라지 않았다는 사실. 우리가 경험한 것은 현대판 오병이어였다.
 
당시 IMF를 맞아 직장을 잃은 가장들이 갈 곳이 없어 공원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이분들이 서명지를 들고 주변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아줬다. 도시락의 위력을 실감했는데 지금까지도 어느 교회에서 보낸 것인지 모른다. 도시락을 운반한 트럭기사는 교회에서 갖다 주라고 해서 가져온 것이라고만 했다. 예수님이 우리 행사를 위해 예비해주신 것이다. 고기 잡는 제자들을 위해 친히 아침식사를 준비하시고 제자들을 먹이신 주님이 생각났다. 주님께 지금도 감사한다. 행사를 마친 후에는 탑골공원 정문에서 오가는 행인들에게 서명을 받았다.
 
행인들이 서명 취지를 물으면 본부장님이 직접 설명했다. TV에서 본 사람들은 인권 변호사 김상철 씨라고 안다고 인사하며 얼마의 음료수 값까지 쥐여 주고 가기도 했다. 마침 그 날은 탤런트 정영숙 씨도 함께 서명을 받아 주셨다. 명동, 서울역, 잠실 롯데백화점 지하 광장, 동서울터미널, 한강변 수영장, 부산 해운대 백사장에서도 서명을 받았다. 옷을 벗고 물놀이하는 사람들에게 서명지를 내밀 때는 서로 어색하기는 해도 일일이 취지를 설명하며 정성스레 서명을 받았다. 서울역에서는 표를 사려고 기다리는 사람들 뒤에서 다가가 설명하며 받았다. 거리 서명 에피소드를 다 기록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우리 회사에 출장 온 이스라엘 기술자 한 사람은 유대민족이야말로 난민의 역사 주역이라며 친히 서명을 자청해 나와 본부장님을 감동시켰다. 그 날 저녁 식사는 남편 권오선 장로 몫이었다.
 
전국 교회에서 특히 장날(시골 5일장)은 서명하는 날로 정해놓고 받았다. 영주시민교회는 최흥호 목사님이 직접 가셔서 일일이 설명하며 서명을 받으셨다. 1주일 통계가 올라오면 본부장님이 직접 전화하셔서 격려하며 계속 힘써 주실 것을 부탁했다. 이 목사님이 단군상을 파괴하는 바람에 구속돼 한기총 간부들이 급파돼 사태 수습을 하고 목사님이 구속된 상황에서도 서명을 받아주셔서 새롭게 우리를 감동하게 했다. 시골교회에서 총 1만7609명이라는 많은 실적을 올렸다.
 
주요한 서명 실적을 보면 서울교회 68만5204명 여의도순복음교회 11만6045명 노량진교회 2만3035명 영주시민교회 1만7609명 등이었다. 본부장님은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시며 감사기도를 하고 계속 분발할 것을 당부하셨다.
 
은혜로 일궈낸 서명의 기적
 
서울교회 박순봉 권사님은 아침에 목욕부터 하고 하루 종일 지하철역에서 칸칸이 다니며 시민들에게서 서명을 받아 저녁에 본부 사무실에 건네주는 열성을 보이셨다. 총12만5302명을 받아 개인 실적 1위였다. 2위는 김세재 집사님 11만138명, 3위는 김인식 집사님 10만7,188명( 서울교회)이었다. 이 일은 우리로 하여금 힘이 나게 했다. 몇몇 숨은 봉사자들의 노력도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200만 명 집계 이후로는 실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본부장님은 기도원으로 가시고 스텝 중의 한 분은 금식기도를 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제일 힘든 일은 내부 갈등도 만만치가 않았다는 점이다. 그때마다 본부장님은 일일이 부드러운 미소로 하나하나 해결하셨다. 그래도 떠나가는 분들이 계셔서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본부장님은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다음날은 또 태양이 떠오른다는 사실에 감사하자”고 하셨다. 실적이 좋은 분들에게는 감사패도 전달하며 팀을 이끌어 가는 모습에서 불사조가 여기 계시다고 생각했다. 서로를 위로하며 기도에 집중했다. 한편으로 본부장님은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자치주에 탈북자 실태조사단을 파견해 중국 사정도 살피고 중국 여러 곳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에게 의견을 듣고 나누며 서명활동이 중국에 주는 영향력도 살피셨다.
 
서울교회에서 어느 날 집사님 한분이 본부장님을 찾아와 서명을 받아주면 학교 봉사활동 확인을 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본부장님으로부터 이 말씀을 듣고 나는 이 일이 하나님의 기도 응답으로 알고 그 집사님에게 흔쾌히 승낙을 했다. 학생 4명을 데리고 탑골공원 정문 앞에서 거리 서명에 들어갔다. 한 장에 30명씩 5장의 서명을 받는 시간을 확인해 시간 계산을 했다.
 
150명 서명에 8시간을 사인해 주기로 학생들과 약속을 했다. 이것을 토대로 전국 1,861개중고등학교에 공문을 발송했다. 이것이 1000만 명 서명을 달성에 큰 기여를 했다. 1000명 이상 서명한 학교가 910개 학교이다.
서명 현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총 11,800,495명
1,857개 교회 : 1000명 이상 서명 117개 교회
1,861개 학교 : 1000명 이상 서명 910개 학교
268개 단체 : 1000명 이상 서명 57개 단체
1,701명 개인 : 100명 이상 571명, 500명 이상 168명, 1000명 이상 86명, 10,000명 이상 17명 100,000명 이상 3명
서명지 총1,700,000장 비용 26,000,000원
서명한 용지 총 3.2톤, 1톤 트럭 4대분
서명용지(보관용) 복사비 16,000,000원
 
학생들이 집에서 친척, 아빠 직장, 형제 직장, 가게, 골목, 시장, 야구장에서 받는 등 전국에서 받은 서명지가 몰려왔다. 본부장님의 변호사 사무실까지 집계하는 장소로 사용해 밤을 지새우며 계수했다. 한편에서는 중복 서명을 걸러내는 작업을 하느라 많은 사람이 밤샘을 하며 때를 거르고 결국 병원 신세까지 지는 진풍경도 연출했다.
18-30명에 달하는 계수 인력이 약 14개월을 집계했다. 한양대와 한세대 학생 600명이 참여해 CD 69장을 DVD 9장(120만 페이지)으로 만들어 UN 제출용으로 간편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우리의 수고를 덜어줬다.
 
이 서명은 우리 본부가 한 것이 아니고 전 국민 나라 전체가 한 것이다. 아니 하나님이 하셨다. 본부장님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신 하나님이 북한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현대판 모세로 세우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무렵부터 탈북난민보호 UN청원운동본부에 여성위원회를 둬 지금까지 미력하나마 기도하고 헌금하는 아주 작은 위원회가 사모님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정화 총무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활짝 웃는 사진 속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가나안땅에 들이지 아니하신 하나님. 본부장님의 사역은 여기까지인지 너무나 안타깝게 통일을 위해 첫발을 내디디기도 전에….
장례를 마친 후에 댁을 방문했는데 활짝 웃으시는 사진하나 덩그러니 우리를 맞아줬다. 국민훈장모란장이 본부장님을 지키고 있었다. 혼자 있기 싫으셨나 보다. 남달리 부부애를 가지신 분이 어떻게 혼자 가실 수 있는지, 사무실 가족들은 어찌하고, 함께 일하던 동지들은 어쩌시고, 사랑스러운 손자들을 외면하실 수 있으신지….
 
탈북자들을 위해 내 형제같이 사랑하신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그 정신은 기독교 세계관이 심령 깊은 곳을 차지하고 있는 진정 하나님의 사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피니언 리더로서 한미우호관계, 사회 지도층, 보수 진보 모두를 어우르시며 시간 물질 몸과 마음을 다 바쳐 건강까지 해치셨다. 병상에서의 4년이 그의 유일한 휴식 기간이셨다. 일생을 하나님을 사랑하며 나라와 민족, 교회에 헌신하신 하나님의 사람아!
 
당신의 행적은 하늘나라 책에 풍성히 기록돼 남아 있으리라.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