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기도의 우국지사
진정한 기도의 우국지사
  • 미래한국
  • 승인 2017.05.1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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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영 백석대 석좌교수 · 국가인권위원

김상철 선생이 너무나 아쉽게 우리 곁을 떠난 지 1년이 됐습니다. 비록 짧은 생애였지만 국가와 민족과 교회를 위한 그 분의 위대한 봉사와 헌신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봅니다.

내가 김상철 변호사님과 진정한 만남을 가진 것은 2002년 이 부족한 사람이 성결대 제4대 총장으로 사역을 감당하면서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김준곤 목사님이 창설하신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사역을 통해서도 일찍이 만난 일이 있습니다. 또한 변호사님께서 1993년 <7일간의 서울시장>이라는 ‘아픔의 책’을 내실 때 내 ‘위로의 시’를 책머리에 얹을 만큼 어떤 점에서 우리의 우정은 남달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신학교가 전신이었던 성결대학교가 정규 4년제 대학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에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셔서 성결교단과 학교 구성원들은 변호사님을 잊지 못합니다. 평소 변호사님이 성결대학교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던 것은 동갑내기인 나와의 개인적인 우정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내가 만난 김상철’을 굳이 2002년부터라고 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진정한 만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학총장 기도모임’을 통한 만남 때문입니다.

평소 남달리 철저하고도 깊은 기도생활을 해온 변호사님은 당시 ‘126기도운동’(시편 126편의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는 성구에 근거한 명칭)을 주도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운동의 멤버인 저에게 하루는 변호사님이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김 총장, 기도하는 총장들을 중심으로 정례적인 기도회를 하는 것이 어떨까요? 지금 나라가 어지럽고 사회기강과 기성세대의 윤리가 땅에 떨어지고 있으니 존경받는 지도자 계층인 총장님들이 모여 기도하면 다음 세대에 큰 희망과 모범이 될 것이오.”

이렇게 권유하면서 다음과 같은 단서(?)를 덧붙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캠퍼스에 갇혀 있는 학자들은 바깥 시류에 민감하지 못할 수 있으니 모일 때마다 1부 기도회가 끝나면 내가 시국에 대해 바른 판단을 도와드리기 위해 ‘10분 특강’을 하겠소.”

김상철 특유의 도전에 감동한 나는 즉시 평소 잘 아는 미션스쿨 총장들을 중심으로 ‘전국대학 총장 기도모임’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처음에 시작은 미션스쿨로 시작하지만 당시 일반 대학 총장들 중에도 크리스천들이 상당했기 때문에 머지않아 전국적인 기도모임이 될 것을 믿고 명칭을 거창(?)하게 ‘전국’이라고 붙인 것입니다. 다만 걸핏하면 무슨무슨 ‘협의회’ 등 ‘회(會)’자 돌림은 지양하고 소박하게 ‘모임’이라고 하자는 데 변호사님과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리인 만큼 ‘회장’도 필요 없고 해서 내가 ‘연락책’을 맡고 김 변호사님은 특별강사(?)를 맡아 2002년 가을학기부터 월례회로 시작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모이기 편리한 서울 시내 몇 호텔에서 조찬을 겸해 모였는데 예상대로 처음에는 미션스쿨 총장 중심으로 7~8명 정도가 참가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포항과 목포 등 그야말로 전국 각지에서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모일 때는 15명까지 총장들이 운집(?)한 일도 있었습니다.

계획했던 대로 1부 기도회를 마치면 변호사님의 특강으로 이어졌는데 참가 총장들은 기도도 좋지만 특강이 기다려진다고 할 만큼 명강의를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다보니 고무된 변호사님의 ‘10분 특강’은 20분도 되고 30분이 넘을 때도 있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때 우리 ‘상아탑에 갇힌 서생(書生)들’은 변호사님 덕분에 나라 돌아가는 시국에 크게 눈을 뜨게 됐던 것 같습니다.

기도에서 특강으로, 특강에서 봉사로

이처럼 총장기도모임이 짧은 시간에 널리 소문이 난 것은 당시 좌파 정권의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김상철’이라는 진정 용기 있는 애국자가 지식인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제시해 줬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는 기도모임을 제가 섬기던 성결대학교를 비롯해서 주요 회원대학 캠퍼스를 순례하면서 개최하게 됐습니다. 호텔에서 모이는 밥값을 아껴 몇 차례 불우이웃돕기에 몰래 동참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시대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지셨던 김상철 변호사님의 도전으로 시작된 총장기도모임은 제가 총장 임기를 마칠 때까지 4년 간 심부름을 하다가 그 후 모 대학 총장에게 지속적인 모임이 되도록 위임을 했습니다. 그 후에도 이 모임은 한동안 지속됐으며 변호사님도 바쁜 일정 중에도 이 사역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꾸준히 참석해 시론(時論)을 강의하신 것으로 압니다.

잊지 못할 김상철 변호사님과의 특별한 만남을 통해 내가 깨닫고 발견한 것은 김상철 변호사님은 분명 하나님께서 한 시대, 조국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특별히 보내신 시대적인 선각자요 사명자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점에서 그분의 만년은 불운한 것 같으나 하나님의 거대한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는 전혀 우리 인간의 판단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주님의 부름을 받기 전에 당한 고통은 어쩌면 우리 민족의 고난과도 비견될 수 있을 것입니다. 거창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인류의 구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없었다면 오늘의 역사가 없고 오늘의 우리도 없는 것 같이 투사 김상철의 외로운 투쟁과 고난이 없었다면 우리 역사의 어느 한 구석은 영원한 어둠과 고통에 묻혀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역사의 주관자는 한 인간이 이 땅에서 얼마나 큰일을 했느냐를 묻기 보다는 얼마나 정직하고 정의롭게, 그리고 얼마나 뜨거운 사랑으로 용기 있게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해 선한 싸움을 싸웠느냐를 더 중요하게 물으실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그리운 김상철의 일생은 참으로 위대한 것이었고, 아름답고 빛나는 것이었다고 믿습니다.

그가 못 다한 일은 남아 있는 우리의 몫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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