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내게 남긴 생각들
그가 내게 남긴 생각들
  • 미래한국
  • 승인 2017.05.18 09: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정석 중앙대 명예교수 · 前 국제정치학회 회장

벌써 20여 년 전 김상철 변호사를 만났는데 그는 젊고 씩씩한 사람이었다. 그의 인상에서 풍기듯이 그는 일에 대해 강직하고 굳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올바른 일을 성취해 세상이 바르게 되기를 바라는 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서울법대 10여년 후배였지만 그의 사회적 성숙도나 정의감은 주변의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강한 감을 풍겼다.

개인적인 생활에 관해서는 별로 우리가 이야기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 신앙과 교회에 대한 믿음은 역시 강했다. 믿음을 기반으로 많은 행동을 하는 것 같이 보였다.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사회 정의 구현과 시민사회의 정의로운 삶을 바라는 마음이 컸다. 1980년대 새로운 민주사회가 시작되는 과정에서 그는 권위주의 사회 안에서 고통을 받은 이를 위해 법정에서 싸워준 변호사였다. 그의 법률적 도움과 정의감은 이 사회의 민권을 확립하는 한 기둥을 세웠다.

아무래도 그는 살아오며 사회적 변화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는 것을 감지한 듯싶었다. 1980년대 내가 살아온 길의 반대편에 서서 그는 사회 정의를 실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1990년대 들어 그는 야당 지도자인 김영삼 대통령이 국민에게 제시한 민주적 정치지도자를 세우는 일에 많은 힘을 보탰다. 그는 시민운동을 통해서 그 역할을 찾았다.

김상철 변호사는 1990년대 초반에 들어 우익을 규합하는 한미우호협회를 창설하고 한미 간의 관계 유지가 이 나라를 지키는 길이고 북한에서 조종하는 일부 좌익분자와 대결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김상철 변호사는 자신이 부모와 함께 남한으로 온 실향민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더 그런 감정을 가졌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의 지난 인생 여정에서 만난 많은 사회 인사를 규합하고 그들의 지원을 받아 10년 동안 한미우호협회 회장을 맡았다. 그의 탁월한 언변과 설득력은 시민사회 운동을 위한 많은 지원을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세력에 참여해 서울시장에 임명됐다.

 

어떤 경우에도 조국의 미래를 위해서만 마음을 쓰는 사람

 

서울시장으로 임명된 김상철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좌우 양진영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그의 정치적 입장이 변했다고 일부 시민단체에게 비쳐진 모양이다. 그가 서울시장으로 임명된 것이 발표되는 날 아침 나는 그와 함께 한미우호협회 간부 모임을 가졌는데 그의 이런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걱정을 많이 했다.

첫째는 김상철 변호사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말리고 싶었던 것이고 둘째로는 그에게는 한국 정치과정에서 좌·우 양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것이라고 일러주면서 사전 준비 없이 시장에 임명되는 것은 우려된다고 얘기했다. 결국 그에게 닥쳐 온 집요한 도전 때문에 7일 만에 김상철 변호사는 서울시장 자리를 사임했다. 그만큼 그는 정치적으로 순수하고 어떤 입장에서도 한국의 장래를 위해서만 마음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는 1990년대 중반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역할이 확대되고 세계화 추세로 가게 됨에 따라 새로운 시민단체를 하나 더 만들었다. 그것이 태평양아시아협회(PAS)이다. 한국의 젊은이를 운동권 농활이 아니라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후진국에 파견해 봉사하며 한국 젊은 대학생들이 국제적 경험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시민단체였다. 그의 시야를 다시 아시아지역으로 돌린 것이다. 그리고 젊은 세계적인 지도자를 양성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총 8,000여 명의 대학생을 동남아시아, 몽골, 그리고 중국에 파견해 봉사활동을 하는 역군을 키웠다.

한국 사회에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고 주변국가로부터 오는 노동자의 이민이 증가하는 과정에서 김상철 변호사가 예견했던 태평양아시아협회의 역할은 아직까지도 뚜렷하게 살아 있다. 그가 키워낸 젊은 역군들은 이제 수천 명을 넘는다.

그의 세계 인류에 대한 봉사정신은 강렬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북한의 난민을 보호하는 인권 문제와 관련해 이들의 규합을 위한 지원 단체를 만들었다. 1990년대 초 한국정치의 변화 과정에서 나는 그를 도와 한미우호협회의 점진적 발전을 기했으며 김상철 변호사 후임으로 2000년대 초 1년간 이 협회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20여 년간 김상철 변호사와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도왔으나 그는 끝내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철저하고 강인한 애국심은 존경스러웠다. 그의 인권운동은 인간의 근본을 보호하려는 것이었으며 결코 좌파와의 야합이 아닌 것으로 생각했다. 다만 여러모로 너무 분주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후원자들에 대한 배려가 소홀했던 점이 아쉽게 생각된다. 그러나 그의 업적을 생각해 보면 추모 사업은 계속돼야 하고 그의 애국적이고 기독교적인 사랑은 높이 사야 한다. 한때 그의 역할이 한국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 중요한 것이었다는 것을 모두 인식할 필요가 있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