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한국' 이름 뒤에 숨은 뜻
'미래한국' 이름 뒤에 숨은 뜻
  • 미래한국
  • 승인 2017.05.18 10: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경옥 前 미래한국신문 부사장

제가 이곳 미국에 온 지도 8년이나 되었습니다. 그 동안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서울 생활을 되새겨보며 표현력이 부족하여 내 무딘 필설로 다 표현하지 못한다 해도 마지막까지 함께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슬픔으로 이 글을 바치며 달래 봅니다.

저는 1‧4후퇴 때 원산 부두에서 LST라는 큰 화물선을 타고 가족과 함께 남하한 이른바 피난민이었습니다. 10살도 안 된 나이에 남쪽으로 피난을 왔습니다. 그 때부터 전쟁의 공포와 이산가족의 슬픔을 잘 알았기에 통일에 대한 열망은 그 누구보다 컸고 자연스럽게 애국하는 마음이 가슴속 깊이 잠재된 것 같습니다. 이런 소원이 김 회장님과 만나서 활동할 수 있었던 근본 이유였고 만남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첫 만남

어느 날 저를 잘 아는 여자 목사님께서 탈북난민을 돕는 좋은 분을 소개하겠다면서 김 회장님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셨습니다. 나는 그 때 사단법인 교육복지연구원에서 통일에 대비해 여성 지도자를 교육하는 ‘통일준비 여성지도자회’라는 프로그램에서 회장직을 맡고 있을 때였습니다.

김 회장님과의 첫 만남부터 뜻과 생각이 같으니 물 만난 고기인양 김 회장님이 하시는 일에는 크고 작은 일 가리지 않고 같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저와는 비교 조차할 수 없는 하늘에 우뚝 솟은 큰 산과 같은 분이셨지만 함께 일하는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를 알 수 없는 따뜻함과 크리스천으로서의 겸손함에 머리가 절로 숙여지는 참으로 존경스럽고 소중한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김 회장님과의 만남은 제 일생에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 회장님이 하시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밑바탕으로 해서 그 사랑의 실천을 하는 일이었기에 회장님을 따르는 그 많은 사람들에게 한 결 같이 따뜻한 사랑으로 대하셨습니다. 나이를 떠나 존경하는 스승과 철없는 제자 같은 마음으로 모든 일을 함께 생각하며 의논하는 제 멘토셨습니다.

‘미래한국’의 이름 뒤에 숨겨진 큰 뜻

물론 김 회장님은 저를 만나기 전부터 좋은 일들을 많이 구상하고 계셨겠지만 저를 만난 후 계획하신 미래한국신문 창간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 벅찬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대적 소명과 미래를 밝히 보시는 김 회장님의 영안이 미래한국신문을 탄생시킨 근원적인 이유인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사무실에서 신문 발행에 대한 계획을 말씀하시며 발간할 신문의 이름이 어떤 것이 좋은지 몇 가지 이름 중에서 골라 보라고 하시기에 저는 서슴없이 ‘미래’ 라는 이름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한국의 미래를 밝혀 줄 수 있는 등불이 돼 달라는 큰 뜻과 투철한 애국심을 알기에 ‘미래’라는 단어가 적절한 표현인 것 같아 좋았습니다.

물론 그 후에도 주위에 계신 여러분들과 상의해 지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김 회장님과 일하면서 느낀 것은 회장님의 주위에는 숨은 보석 같은 분들이 하나 같이 소리 없이 회장님의 뜻을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이 신기하고도 놀라웠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회장님의 탁월한 리더십과 사심 없이 정의를 위해 과감히 앞장서는 살신성인의 모습을 몸소 실천하시는 김 회장님 의지의 산물인 것 같았습니다.

김 회장님의 또 하나의 강점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독단적으로 처리하시는 일이 없고 저처럼 보잘 것 없는 사람의 의견이라도 존중하면서 의사결정을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그동안 크고 작은 사회단체 활동에 참여해 봤습니다. 그 경험에 비춰볼 때 회장님이 큰 산과 같은 리더십에 조약돌만한 자기 모습도 나타내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감탄을 금할 길 없었습니다. 지금 하늘 아래 계시지 않고 높고 높은 하늘 위에 계시니 그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미래한국신문 창간… 그 뜨거운 열정

신문 이름이 ‘미래한국’으로 정해지고 난 후부터 본격적인 자금 모으는 일 즉, 주주 모시기에 돌입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제 주위에 주주 될 만한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해 놓고 한 명씩 전화로 혹은 직접 만나 미래한국신문 창간 취지와 당위성을 설명하며 주주 모집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이에 회사 운영에 필요한 자금과 이사 등기 등 일사천리로 일이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이런 준비 과정에서 나는 이 신문의 창간 취지를 전국적으로 알려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주옥같은 글을 싣는 신문을 만든다 해도 잘 읽어줄 독자가 없으면 사상누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신문 발행 전에 신문 홍보를 위해 지방 대도시 몇 군데만이라도 순회해서 강연회라도 열자고 제안했더니 회장님이 흔쾌히 동의해서 저를 포함한 임원 몇 분과 함께 지방 도시 강연회를 다니게 됐습니다.

그 때 저는 언변보다는 뜨거운 열정 하나로 김 회장님 같은 애국자를 보지 못했노라고 진심 어린 열변을 토했던 것 같습니다. 생소한 대중 앞에서 김 회장님의 진정한 애국심과 또 길이 후세에 남을 정신적 유산으로 미래한국신문 발행이 최선의 길이라고 소리 높여 외쳤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열정이 용기를 이겼던 시간이었습니다.

진심은 어디서나 통한다 하던가요. 듣는 분들의 자세나 태도에서 긍정적인 반응과 인상을 받아 기쁜 마음으로 지방순회를 마쳤습니다. 인터넷 시대에 왜 이제 뒤늦게 신문 발행이냐는 우려와 의아한 눈길도 있었지만 김 회장님의 뜻을 믿고 따르는 이사들과 주주들의 의지는 확고했습니다.

김 회장님이 시중에 나와 있는 기존 미디어의 세계를 몰라서 신문 창간을 하셨겠습니까? 그 답은 지금 이 시대의 흐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래한국신문은 설립 목적에서부터 그 어떤 신문들과도 비교되기를 거부하는 신문이고 참신하고 신선한 청량음료 같은 한 차원 높은 신문임을 자부합니다. 영리 목적이 아니고 주주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이사들의 열정이 만들어낸 하나의 작품인 것을 어찌 세속적인 물질로 가치 판단을 할 수 있겠습니까?

김 회장님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하나님 말씀을 몸소 실천하시며 세상을 향해 의롭고 외로운 싸움을 싸우며 자신의 몸을 돌보는 일은 소홀히 했기에 돌아가신 지금 그 안타까움이 이렇게 가슴을 저며 옵니다.

“기도하고 나면 지혜의 글이 써집니다”

어느 날은 제가 가만히 물었습니다. 김 회장님은 어떻게 그런 주옥같은 글로 쓰시느냐고 했더니 “이 권사님, 내가 사설을 쓰려고 책상에 앉을 때까지 머릿속이 하얗고 아무 생각이 안나요. 그런데 기도하고 나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글이 잘 써집니다” 하고 말씀하시더군요. 김 회장님은 사람의 시선으로 볼 때는 전혀 부족함이 없는 모든 면에 뛰어나고 다 가진 분이었지만 늘 자신의 부족함을 하나님께 고백하며 하나님만 의지하고 경외하는 놀라운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탈북난민운동본부 주최로 탈북민을 국제법상 난민으로 인정해 달라는 1,000만 명 서명운동 당시 저희들이 일하고 있는 자리마다 지하철역이며 노상 어디든지 저희와 함께 하며 격려해 주시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상 기도와 철야기도 등 초인적인 열정을 보인 김 회장님 앞에 저희들은 그저 묵묵히 뒤를 따르는 것이 회장님을 돕는 최선의 길이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회장님의 건강이 걱정이 돼 손을 좀 펴 보시라고 했더니 손바닥을 보여 주시는데 손금 색깔이 갈색으로 보여 제가 말씀 드렸지요. “회장님 몸 좀 돌보셔야 해요. 더 큰 일들을 많이 하려면 건강부터 챙기셔야 해요.” 그랬더니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일이 이렇게 많은데 내 한 몸의 안일만 어찌 생각하겠습니까.”

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손금의 색깔이 갈색이면 몸이 피곤하다는 신호라는 사실을 제 어머니가 병원에 계실 때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최 권사님에게 말씀 드려 좀 더 적극적으로 말려서 쉬게 해 드리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마음 아픕니다.

저희와 뜻을 같이 하며 활동하던 류우익 교수님이 통일부 장관이 되셨을 때 꼭 장관 되실 분을 잘 뽑았다고 얼마나 마음 든든히 기뻤는지 모릅니다. 류 장관님 뒤에는 탈북난민을 돕고 너무도 잘 알고 계신 김 회장님이 계신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김 회장님을 알아가면서 회장님이 이렇게 많은 일들을 어떻게 해가며 가정을 돌보실까 궁금했는데 최원자 권사님을 만나고 나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항상 밝은 미소로 잔잔한 내조를 소리 없이 하는 최 권사님이 회장님 곁에 계셨기에 회장님이 뜻하신 일을 다 성취하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최 권사님의 훌륭한 내조는 같은 여성으로 정말 본받을 만하며 이런 말 하는 것조차 최 권사님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지금도 하늘의 일꾼 되어계실 김상철 회장님!

지금 여기에 쓴 글은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식의 표현 밖에는 안 되고 김 회장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다 알 수도 없었고 또 저의 무딘 필치로 여기에 기록할 수는 없지만 김 회장님과 같은 훌륭한 뜻이 있는 분을 만나 함께 일할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제 생애 크나큰 영광이고 축복이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빌려 지난 날 활동에 함께 동참해 주신 미래한국신문 주주 여러분들과 편집에 참여하고 수고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리며 탈북난민운동본부 여러분, PAS 여러분들께 뒤늦게나마 고맙다는 인사드립니다.

김 회장님은 비록 지금 안 계시지만 미래한국과 회장님이 하시던 모든 일들은 회장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 훌륭히 뜻을 이어나가 세상의 큰 빛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삼가 김 회장님의 영전에 이 글을 바칩니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