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 13일 저녁. 저는 임신 8개월 된 만삭의 아내와 함께 워싱턴 DC 덜레스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미래한국신문 워싱턴 특파원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막중한 임무를 맡고 덜레스 공항을 나서면서 김상철 회장님이 떠올랐습니다.
2개월 전 저는 곧 태어날 첫 아들이 왼손이 없는 기형아라는 병원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크게 놀랐지만 저희 부부는 우리 아들을 이렇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 낳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에 가서 낳으면 좋겠다는 기도 제목이 생겼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시각과 처우가 한국보다 낫다는 미국에서 아이가 자라나면 좋겠다는 아비의 기대였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2달 전에는 미국에 가야 했기 때문에 한 달이라는 시간 밖에 없었고 당시 미국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저는 김 회장님을 찾아뵀습니다. 미래한국신문 창간 멤버 기자로 그동안 김 회장님의 엄하면서도 자상한 지도를 받아왔던 제게 김 회장님은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다며 걱정하지 말고 같이 기도하자고 하셨습니다.
한 달 뒤 김 회장님은 미래한국신문 워싱턴 특파원으로 가면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당시 감격하고 감사했던 마음 지금도 생생합니다. 한 달 간 정리한 뒤 저희 부부는 김 회장님이 사주신 비행기 표를 손에 쥐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2005년 3월 저희 부부는 왼손만 없는 건강한 사내아이 찬형이를 안았습니다.
미국에 온 지 1주일 만에 저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워싱턴 DC에 오신 김 회장님을 뵈었고 며칠 뒤 미래한국신문 미주판 발간 계획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미국 내 150만 한인들에게 미래한국신문을 보급한다는 계획이었고 제가 담당자로 실무를 맡으라고 회장님께서 지시하셨습니다.
미래한국신문 미주판을 미 전역으로 확대해 가는 김 회장님의 열정과 추진력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미국에 올 때마다 각 지역을 다니며 한인 인사들과 목회자들을 만나 미래한국신문 미주판을 소개하고 후원을 요청하셨습니다. 식사자리에서, 라디오 인터뷰, 강연회 등에서 한국의 시국 상황과 북핵 및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말씀을 하고 꼭 미래한국신문 미주판을 소개해 후원자와 독자를 확보하셨습니다.
늘 제게 전화해서는 누가 후원하기로 했으니 연락드리고 신문을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번은 버지니아의 한 대형교회 관계자들과 미래한국신문 미주판에 대한 재정 후원을 논의하는 저녁 모임이 있었습니다. 김 회장님은 이 저녁 모임을 위해 한국에서 오셨고 다음날 아침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 먼 거리를 말입니다. 회장님의 이 헌신을 토대로 미래한국신문 미주판은 2005년 3월부터 2009년 2월까지 4년 동안 최대 3만부까지 매주 발행돼 워싱턴 DC, 뉴욕, LA, 휴스턴, 시카고, 애틀랜타 등 미 주요 도시에 배포됐습니다.
김 회장님은 미국에 와서 미국 정계, 학계, 싱크탱크, 인권단체 요인들을 만나면 김정일 정권 종식만이 북핵과 북한인권 문제를 종국적으로 해결하는 길이라고 역설하셨습니다. 워싱턴 DC 내 한국 전문가들을 한데 모아 저녁식사를 하면서, 미국의 대표 보수싱크탱크인 미기업연구소(AEI)의 니콜라스 에버스타트 선임연구원과 샌드위치를 드시면서, 존 볼튼 전 UN 주재 미대사를 만나면서, 존 틸럴리 전 주한미군 사령관과 커피를 마시면서, 제임스 릴리 전 주한 미대사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김 회장님이 역설하신 주제는 김정일 정권 종식이었습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전 세계 폭정 종식을 미국의 대외정책기조로 삼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김 회장님은 전폭 지지하셨습니다.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
하지만 부시 대통령 재임 후반기에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하기 시작하자 김 회장님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부시 대통령이 속고 있다며 직접 부시 대통령을 만나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려고 했습니다. 2007년 말 당시 공화당 지도부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계신 한 분을 통해 부시 대통령을 만나려고 워싱턴 DC에 오셨습니다. 참가비를 준비해왔는데 독립자금을 모아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김 회장님은 부시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김정일 정권 종식 쪽으로 움직이도록 미국 각계 요인들을 만나고 부시 대통령까지 찾아가 만나는 김 회장님의 사명감과 추진력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김 회장님은 한국과 미국의 영적 동맹에 많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미래한국신문 미주판의 발행 법적 주체인 미래한미재단의 목적을 김 회장님은 다음과 같이 정하셨습니다. “미국과 한국이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시편 33:12) 나라라는 신앙고백 위에서 위 신앙을 양국 국민들에게 전파하고, 위 신앙을 실현하기 위한 활동, 특히 한미 양국의 영적 동맹 관계를 형성, 강화시킴을 목적으로 한다.”
김 회장님은 2007년 한미 영적 동맹 관계를 강조한 30분짜리 비디오 ‘Unite US in thy righteousness’를 홍의봉 감독을 통해 제작하셨습니다. 이 비디오 테이프는 회장님이 2007년 5월 11일 워싱턴 DC 외신기자 클럽에서 창립한 한국 통일을 위한 한미동맹협의회(UKA)에서 소개됐고 이후 미국 한국전 참전용사들에게 배포됐는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사실 저는 당시 김 회장님의 깊은 뜻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대한민국을 사랑했는지, 얼마나 북한 주민들을 보며 가슴아파했는지, 얼마나 김정일 정권을 미워했는지, 또 얼마나 한미동맹을 중요시 생각했는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했는지….
다만 회장님의 손과 발이 돼 충실하게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실 때면 항상 지갑에서 돈 얼마를 꺼내 제 손에 쥐어주고는 “찬형이 장난감 사줘”하며 떠나셨던 김 회장님. 책상머리에 앉아 기사만 썼지 숙맥이었던 제가 미래한국신문 미주판 지사장 역할을 잘 해낼까 의심할 때면 따끔한 말씀과 격려를 해주셨고 저는 해보자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렇게 저와 저희 가족을 사랑했던 김 회장님이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생전에 제가 받은 그 큰 사랑에 감사하다는 말씀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김상철 회장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 이곳 미국에서 회장님이 해주셨던 말씀들 가슴에 새기고 더 잘하겠습니다. 이제 천국에서 평안히 쉬십시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